특집

[선교지에서 온 편지 - 남수단] 사제관 앞에서 시장이 열리다

이상권 신부rn
입력일 2017-09-26 수정일 2018-01-22 발행일 2017-10-01 제 3064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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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 일어나고 사제관 컴파운드에서 마을 사람들과 동거동락한지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갑니다. 더 이상 싸움이나 약탈은 없는 듯한데, 사람들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다만 몇몇 여자들과 아이들만 있는 가정은 집으로 돌아가 사제관이 조금 한가해졌습니다. 이들 문화에서 여자와 아이들은 복수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로 성인 남자들과 조금 큰 소년들 그리고 남자 청년들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아강그리알을 떠났습니다. 주로 외부 출신들입니다. 그 중 가장 안타까운 일은 한만삼 신부님께서 사목하시던 때부터 사무장이자 관리장 역할을 하며 우리를 도와주었던 피터 공이 떠난 일입니다. 피터 공은 이번에 아강그리알을 공격한 ‘아비에이촉’ 출신입니다. 그래서 이번 공격이 있은 후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가족들을 데리고 고향 마을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정’보다는 ‘피’인가 봅니다. 피터 공이 비록 아비에이촉 출신이긴 하나, 오랜 세월 아강그리알에 살면서 가정도 꾸리고 신부들을 도와 교회는 물론 아강그리알을 위해서도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싸움이 벌어지니 또 다른 복수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서 빨리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하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사람들이 학교와 병원, 사제관 컴파운드에 모여지내다보니 아강그리알의 중심이 사제관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아무도 기존 마켓지역에 가지 않으니, 사제관 앞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차를 팔고 만다지를 만들어 팝니다. 상황은 어수선하지만 이렇듯 사람들은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강그리알 사람들이 부족간 싸움을 피해 사제관 컴파운드에서 생활하다보니, 마을의 중심이 사제관 앞으로 옮겨졌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사제관 앞에서 차와 만다지를 팔기도 한다.

지난 주, 드디어 아강그리알 콤보니 초등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그만큼 상황이 좋아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졸업반인 8학년 학생은 세 명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마저 아직 돌아오지 않아,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진 않고 있습니다.

돌아온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며 열심히 학교 청소를 합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교실에서 지내고, 어떤 교실은 염소를 지키기 위해 사용하기도해서 너무 지저분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오랜만에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감격스러웠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기분입니다. 하지만 아직 평일미사는 사제관 컴파운드 안에 있는 경당에서 봉헌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른 아침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아직 무서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상황이 길어지면서 조금은 귀찮고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이들이 제 삶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저 또한 그들의 삶에 가까이 있기에 그들의 삶을 잘 알고 이해하게 됩니다.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주님의 도우심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지금 내 앞에 벌어진 상황들이 어쩌면 주님을 만나고 성령의 보호를 체험하는 소중한 순간들이라는 생각이듭니다. 그래서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외치면서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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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권 신부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