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염철호 신부의 복음묵상]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하느님 나라로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
입력일 2017-09-26 수정일 2017-09-26 발행일 2017-10-01 제 3064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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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 (마태 18,1-5)

어느 신부님께서 돌아가시며 유언처럼 남기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신부가 너무 큰 사람 되려 하면 안 돼.” 오늘은 신부님의 유언이 기억나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대축일입니다.

데레사 성녀는 소화, 곧 ‘작은 꽃’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데 일생을 조그만 일에 최선을 다해 살다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분입니다. 성녀는 15살에 수녀원에 들어가 24살까지 10여 년가량 주방 일과 청소, 빨래와 바느질을 하며 사셨습니다. 그렇게 10여 년을 낮은 일만 도맡아 하셨지만 성녀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하셨습니다. 그러다 병이 들어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성녀께서 돌아가시기 전 원장 수녀님은 수녀님 자신의 이야기를 일기로 적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수녀님의 일기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의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일상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평범하고 하찮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면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어 맡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일을 기꺼이 살아내신 수녀님의 모범은 평범함보다 특별함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이 됩니다. 성녀께서는 성인이 되는 길이 특별함을 찾는 데 있지 않고, 평범함 속에 있음을 알려주신 분입니다.

데레사 성녀의 축일을 맞아 봉독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이들이 더욱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고자 하며 더욱 힘 있는 자가 되려 하지만,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다른 이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린이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이 이야기하는 어린이란 데레사 성녀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불평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어 맡기며 의탁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걸어오던 길, 위를 향해서 높이 올라가려 하는 길에서 벗어나 내려가는 길, 자신을 낮추는 길, 하느님과 이웃 앞에 겸손하게 살아가는 길로 돌아서라는 말입니다. 그래야지 우리는 데레사 성녀처럼 어린이가 되어 자신의 일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은 이런 어린이 하나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보면 어린이, 작은 이란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약자를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 25,31-46에서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 곧 형제들 가운데 가장 작은 이들에게 해 준 것이 당신에게 해 준 것이고, 그들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당신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신 듯합니다.

이렇게 보니 오늘 복음은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면서, 어린이와 같이 약한 이들을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오늘 기념하는 데레사 성녀는 오늘 복음의 가르침을 가장 잘 실천했던 분이 분명합니다. 성녀께서는 평범한 일상의 삶 안에서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봉쇄 수녀원 안에 계셨지만 세상의 작은 이들, 특히 죄인들을 위해 기도했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과 편지를 통해 영적으로 통교했습니다. 이를 통해 성녀는 자신의 머물던 공간 전체를 하느님의 거룩한 장소, 기도의 장소, 성전, 곧 하느님의 나라로 바꾸셨습니다.

데레사 성녀 축일을 맞아 우리도 성녀의 모범을 본받아 일상을 하느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합시다. 그리고 성녀처럼 세상 곳곳에 있는 작은 이들, 어린이들을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 추석 연휴로 이번 호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은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10월 1일)과 연중 제27주일(10월 8일) 복음 내용을 함께 싣습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