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군인주일 르포] 판문점 JSA성당을 가다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7-09-26 수정일 2017-09-27 발행일 2017-10-01 제 3064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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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선의 긴장감… 미사가 시작되자 평온해졌다

성당 입구에 세워진 성모상.

9월 23일, 이재혁 신부(군종교구 육군 제1보병사단 전진본당 주임)와 군종병 홍정기(나타나엘) 일병을 태운 차량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 JSA) 입구에 도착하자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권총을 찬 경비병이 무표정하게 차를 세웠다. 매주 JSA성당에서 봉헌되는 주일미사를 위한 방문이지만 검문에는 예외가 없었다.

JSA경비병들의 날카로운 시선 때문인지 부대 입구 검문을 통과한 후에도 긴장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후 3시 미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마음에 평온함이 깃드는 듯했다.

■ JSA성당으로 향하는 힘찬 시동

올해 7월 1일 군종장교로 임관해 군종신부 생활 3개월째인 이 신부는 간식과 병사에게 줄 선물, 제의 등을 준비해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무렵이면 전진성당에서 21㎞ 거리에 있는 JSA를 향해 출발한다.

“요즘 군에 온 젊은이들은 신앙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군종장교인 저는 신자 군인들뿐만 아니라 비신자나 다른 종교를 가진 장병들도 정신교육이나 부대 위문을 하면서 만나야 하는데 미사 때 다시 낯익은 얼굴들을 보면 무척 반갑습니다.”

전국의 많은 군부대, 그 중에서도 최전방 병사들과의 만남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군종신부가 되고 1사단 지역과 JSA에 처음 와 봤습니다. 장병들 한 명 한 명과의 만남이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흔히 북한군과 인접한 지역을 ‘최전방’이라고 표현하지만 이 신부가 토요일마다 주일미사를 봉헌하는 JSA는 휴전선 155마일 구간 중 한국군과 미군으로 구성된 유엔군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 UNC)가 경비대대를 구성해 북한군과 공동으로 구역을 관할하는 유일한 장소다.

북한군과 한국군, 미군이 매 순간 서로에게 날선 감시의 눈초리를 던지고 있어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분단의 상징인 동시에 평화의 염원이 더욱 뜨거워지는 화해의 땅이 돼야 하는 곳이다.

판문점 JSA성당 안내 입간판.

1958년 6월 준공 후 건물 노후로 신축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JSA성당.

■ 단 한 명의 군인 신자가 있는 곳이라면

JSA에도 군인 신자들이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군인들이 청춘을 바쳐 힘겹게 군복무 하고 있지만 JSA 소속 군인들의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은 각별한 위로를 필요로 한다. 이 신부가 JSA성당을 향해 매주 아름다운 질주를 하는 것도 그들에게 영신적 양식을 줘야 한다는 갈급함이 있기 때문이다. “군인 신자들을 위로하면서 저도 위로를 받습니다.”

이 신부를 태운 승합차는 전진성당을 나와 30분가량 달려 임진강 위에 놓인 통일대교 입구에서 멈췄다. 통일대교를 건너면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통일대교 입구 바리케이드에서 1차 검문이 이뤄졌다. 경계병이 차량 탑승자 신분을 일일이 확인한 뒤 검문대를 통과시켰다.

통일대교를 건너 5분 남짓 더 달리자 ‘캠프 보니파스 JSA 경비대대’라는 부대 안내판이 보이면서 JSA 경비병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부대 입구 벽에는 ‘In Front of Them All’(모든 이들 앞에)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JSA가 어떤 곳인지 피부로 실감할 수 있게 한다.

승합차는 JSA성당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멈춰섰다. 왼쪽 팔에 ‘헌병 MP’나 ‘JOINT SECURITY AREA 판문점 헌병’이 새겨진 완장을 찬 병사들이 삼삼오오 성당으로 들어왔다.

계단을 유심히 보면 한 계단마다 수직면에 대문자 영어 단어가 하나씩 써 있다. 단어를 밑에서 위로 연결하면 ‘O MY GOD, I TRUST IN THEE. LET ME NOT BE ASHAMED. LET NOT MY ENEMIES TRIUMPH OVER ME’라는 문장이 된다. 성경 시편 25장 2절 ‘저의 하느님 당신께 의지하니 제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제 원수들이 저를 두고 기뻐 날뛰지 못하게 하소서’를 영어 번역본으로 옮긴 것이다.

이재혁 신부(왼쪽)가 병사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있다.

■ ‘평화와 통일’의 성당으로

JSA성당을 외부에서 보면 JSA라는 군사적 특수성만큼이나 건축 양식도 이국적이다. 아담한 단층 건물로 외벽 하단부는 모양이 제각각인 돌을 쌓았고 그 위 외벽은 하얀 페인트칠을 했다.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한 듯 벗겨진 곳이 많다. 지붕은 짙은 보라색이다. 조그마한 종탑에는 녹슨 종이 달려 있어 지어진 지 오래된 성당임을 알게 한다.

1958년 6월 1일 준공된 JSA성당은 처음부터 성당 건물이 아니었다. 미군이 2004년까지 성당 겸 개신교회로 쓰던 것을 JSA 한국군 경비대대가 관리를 인수해 역시 미사와 예배를 번갈아 드리는 어색한 동거를 계속했다. 미사 때는 십자고상을 붙였다가 예배 때는 십자고상을 떼고 개신교용 십자가를 붙여야 했다.

JSA성당이 온전히 성당으로만 기능하게 된 것은 2010년 9월 15일 제3대 군종교구장으로 착좌한 유수일 주교가 ‘불편한 동거’를 해결하기 위해 육군 1사단, 개신교회와 협의를 거쳐 착좌 후 첫 군인주일이던 같은 해 10월 3일 JSA를 방문해 ‘JSA성당’ 축복식을 주례하면서부터다. 개신교회는 JSA부지 안에 별도의 건물을 짓고 이전했다.

작지만 아름답고 오랜 역사를 간직한 JSA성당에서 미사가 시작됐다. JSA소속 한국군 경비병과 1사단 헌병 50여 명이 성당을 가득 메웠다. 여느 성당과는 다른 차이점이 하나 눈에 띄었다. 마이크는 물론 음향기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성당 내부가 좁기도 하지만 건물이 오래돼 습기가 차면서 전기 기기가 쉽게 부식되거나 고장이 나다 보니 육성으로만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미사 곡 반주는 군종병이 곡을 다운받아 소형 기기로 해결한다.

이날 미사를 봉헌한 JSA경비대대 통역병 배은식(요한) 일병은 “북한군과 지근거리에 있는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마음이 더 신실해지고 하느님의 보호 아래 놓여 있다는 걸 깨닫곤 한다”고 말했다. 김상목 상병은 “전역한 천주교 신자 선임병을 따라 JSA성당에 나오기 시작해 매주 꼭 미사를 드린다”며 “JSA성당에 다니는 동안 세례를 받고 싶다”고 밝혔다.

이재혁 신부가 9월 23일 오후 판문점 JSA성당 미사에서 병사들에게 성체를 나눠주고 있다. 북한군이 지근거리에 있어 병사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한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