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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II] 사회악을 이기자 7 과다 혼수경쟁

최정근 기자
입력일 2017-08-18 수정일 2017-08-18 발행일 1994-08-14 제 1917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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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불화에서 자살까지 불러

남성 위주의 봉건적 풍토 원인
3천만 원어치의 혼수가 적다고 장인을 때린 박사과정의 사위사건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혼수 시비가 폭행 또는 자살행위 등 극단적인 감정 표출로 이어지고, 가정 파괴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혼수를 제대로 못해 간 여성이 가정에서 성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이 혼수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러한 혼수 관련문제는 저소득층보다는 상류층 사회에서 더욱 심하며 신랑감의 사회적 지위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개 혼수는 신랑감의 학벌, 직업, 직위, 가문 등 신랑감의 총체적 능력과 비례하는 것으로 혼수를 많이 받는 신랑감은 그렇지 못한 신랑감에 비해『잘난 사람』으로 간주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박사 자격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혼수를 받은 신랑감이 그 불만을 폭력으로 터뜨렸을지 모른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주장이다.

『나와 우리집을 뭘로 보고 그 따위 혼수를 해왔어』또는『나를 왜 우습게 보냐구』라는 불만이 장인과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큰 이유라는 것이다.

이러한 혼수문제의 심각성은 결국 시비의 주도권이 대부분 남자쪽(시댁, 시어머니, 신랑)이 쥐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다시 말해 신부 측은 혼수 피해자가 되어 심지어 장인이 사위에게 손찌검 당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들어보면 1억2천만 원의 혼수가 적다고 임신 중인 아내를 구타해 유산시킨 정신과 수련의 남편이 처가의 고발로 구속되는가 하면 결혼한 지 한 달도 못된 신부가 혼수문제로 부부싸움을 한 끝에 창틀에 목을 매 자살했다는 충격적 사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또 이러한 사례도 있다. 90년 3월 부산. 남편은 목을 매고, 아내는 약을 먹고 자살했다. 이들 부부는 13평 짜리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자녀 3명과 이씨가 개인택시로 버는 돈으로 그런 대로 살아왔는데 큰 딸의 혼수 비용을 마련하느라 얻어 쓴 빚(1천만 원)의 이자가 늘어나자(3년 만에 4천만 원으로) 신용을 잃지 않으려고 일수로 빚을 얻어 갚아오다가 생활고까지 겹쳐 곤란을 겪던 중 자살한 것이다.

이처럼 혼수문제는 가정 불화에서부터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가난한 자와 부유층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겪고 있는 혼수 시비문제. 신랑의 인격과 지위에 비례 혼수가 고급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결혼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할 때라고 관계자들은 촉구하고 있다.

혼수문제가 혼수의 많고 적음의 문제보다 사회가 구조적으로 남성 위주의 봉건주의적 경향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혼수를 적게 해가면 여자 측 집안 모두가 기가 죽어 사는 게 우리 결혼 풍습이다.

한편 이러한 문제가 대두되는 반면 요즘 신세대 젊은이들 가운데 검소하면서도 건전한 결혼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예단이나 혼수를 간소화하고 당장 사회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현실적인 것부터 해결하려는 젊은이들, 신랑 신부가 손을 잡고 함께 입장하며 부부의 동등함을 과시(?)하는 결혼 풍속도가 등장하면서 남여 평등으로부터 퇴폐적인 결혼 풍토를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그것이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가문과 가문이 결합하는 최대의 잔치다. 백년해로를 기약하고 험한 세상을 헤집고 살려는 이들에게 보다 현실적이고 건전한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당사자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결혼에 대한 인식의 변환이 요구된다.

최정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