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긴급진단] 흉악 범죄의 원인과 처방

노길명·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입력일 2017-08-02 수정일 2017-08-02 발행일 1994-10-09 제 1924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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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만연은 사회구조 모순과 밀접

「졸부문화」…계층 간의 위화감 증폭
복지정책 강화 가진 자의 나눔 절실
기존 교리교육 신자 재교육 근본적인 재검토 필요
큰 사건만 터지면 그러하듯,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의 진단과 처방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그 내용들이 예전의 것들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그 하나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 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흉악 범죄의 원인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며,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한 범행자들의 인격 파탄이나 가정환경에서 문제의 핵심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범행자들이 소위「가진 자」들을 증오했다고 해서 이들의 행위를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관련시켜 해석하는 것은 자칫 이들의 자기 합리화에 이끌려들어갈 위험성이 있다고 비판하면서, 엄중한 처벌만이 최상책이라고 강조한다.

◆정권 비도덕성도 원인

흉악범죄의 원인을 사회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우리 사회의 구조적 특성과 관련돼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사건들은 근원적으로는 우리나라 자본주의의 성격과 관련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서구사회의 자본주의가 자본가들의 근면과 절약정신에서 성장했으며, 그러한 자본주의 정신은 그리스도교의 노동관과 물질관에 토대하고 있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의 경제 성장은 출발부터 그러한 윤리나 정신과는 애당초 거리를 갖고 있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집권세력들은 성장과 발전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정권의 정당성을 보장받고자 했으며,「조국의 근대화」를 위해서라면「3선 개헌」이나「유신독재」와 같은 비도덕적인 방법까지도 얼마든지 동원했던 것이다.

수단적 가치의 중요성을 도외시하는 부도덕적, 비도덕적 경제성장정책은 차관 배정과 재정 및 금융정책에서의 정경유착으로 연결되는 한편, 저임금과 저곡가 정책에 토대한 수출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구체화 됨으로써 부의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키고 계층 간의 갈등을 확대 재생산시켰다.

여기에 덧붙여, 일부 계층의 투기와 한탕주의 그리고 부정부패 또한 불로소득 구조의 정착을 가속화시켰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는 부의 축적이 미덕으로 간주되는 서구사회에서와는 달리, 기득권층의 권력과 부가 일반인들로부터 정당성을 인정 받지 못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증오의 대상이 되기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급속히 부를 축적한 자들도 자신이 소유한 물질을 과시하거나 퇴폐, 향락 등과 같은 소위「졸부문화」를 창출하여 우리나라의 자본주의를 천민 자본주의로 만드는 한편, 계층 간의 위화감을 보다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균형 소득분배 급선무

이번 사건의 범행자들이 감수성이 예민한 20대 초반의 청년들로서 빈곤 가정 출신이었다는 점이나, 그들의 공격 목표가 소비 지출이 많은 상류계층이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이 지난 30여 년간 누적시켜온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관련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건이 재발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잠복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러한 사건들에 대한 예방책은 불로소득 구조를 차단시키고 호화 사치생활을 억제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함께, 계층 간의 갈등을 완화시키는 복지정책의 강화와「가진 자」들의 나눔 실천이 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인간성 회복이나 도덕성 회복 또는 공동체 의식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교육의 강화와 시민운동의 전개를 제안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처방은 타당하다. 그러나 인간성이나 도덕성의 회복은 구호나 캠페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왜 인간이 존엄하며 왜 인간 생명은 고귀한가 하는 점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이 전제돼야만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고귀함이 확실시될 때 인간성과 도덕성이 회복의 당위성은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사회정의나 공동선에 대한 신념도 그만큼 확고해질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상이나 종교가 근본적으로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이념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간 존엄성 회복 긴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성 회복이나 도덕성 회복의 과제는 결국 종교의 문제와 관련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예를 들면,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인식이나 모든 인간의 심성에는 불성이 내재돼 있다는 신념이 전제될 때, 타인에 대한 사랑과 자선행위는 보다 적극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오늘의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된 것에는 종교인의 책임 또한 막중하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전 국민의 반 수 이상이 종교인이며 크리스챤이 일천만 명을 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성과 도덕성의 회복을 외쳐야 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나라의 종교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존귀함을 제대로 인식시키지 못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신앙인들의 반성 계기

따라서 종교인들의 철저한 자기 반성과 참회가 있어야 할 것이다. 실상, 가톨릭 신자들의 70% 이상이 낙태를 지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나, 가톨릭 신자들의 낙태 경험률이 타 종교 신자들보다도 오히려 높다는 조사 결과들은 교회의 가르침과 신자들의 신앙생활 간에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까지의 교리교육과 신자 재교육의 내용이나 방법에 대한 근원적인 재검토가 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흉악범죄의 만연이 사회문제로 일컬어지는 것은 그러한 범죄들이 사회구조의 모순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서는 건전한 사회, 건강한 사회에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그러한 사회에로의 회귀는 결국 인간성 회복이나 도덕성 회복 또는 공동체 의식의 회복에서 출발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것은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고귀함이라는 보다 궁극적이며 절대적인 명제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길명·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