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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복음화 학교 교장 정치우 안드레아

정리 최유주 기자
입력일 2017-07-25 수정일 2017-07-27 발행일 2017-07-30 제 3055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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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선포, 그리스도 통해 변화돼야만 가능”

정치우 교장은 복음화가 곧 하느님 구원사업의 핵심이고 교회 성패도 복음화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복음화’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1990년대 초, ‘세계 복음화 2000년’이라는 화두를 한국교회에 던진 이가 있었다. 바로 복음화 학교 정치우(안드레아·66·서울 혜화동본당) 교장이 그 주인공. 30년 가까이 ‘복음화’에 헌신하고 있는 정 교장을 본지 장병일 편집국장이 만났다.

■ 대담 : 장병일 편집국장

■ 일시 : 2017년 7월 20일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 정 교장께서는 오랫동안 복음화와 관련한 봉사자의 삶을 살아 오셨습니다. 어떻게 복음화 관련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정치우 교장(이하 정 교장) : 1980년대 중반 미국에 가서 ‘계약 공동체’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공부를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당시 서울 중곡동본당 주임 박용일 신부(현 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께서 ‘새로운 복음화’ 운동을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고 제 일생에 중요한 결정이었는데, 박 신부님께서 바로 결정해 달라고 하셔서 신부님의 기도 방에 들어가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항상 함께 했고, 이끌어줬는데 왜 자꾸 두려워하느냐’라고 응답해주셨습니다. 시작하기로 했지만, 신부님도 저도 모르는 것이 많아 ‘로마에 가서 공부하고 오겠다’라고 말씀드리고 그 길로 ‘세계 복음화 2000’ 본부가 있는 로마에서 연수를 받았습니다.

▲장 국장 : 본격적인 복음화 사업은 로마에서 귀국한 뒤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정 교장 : 복음화라는 말조차 생소한 시절이었는데, 박용일 신부님께서 학교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운영할 교육과정과 교재를 제가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복음화 학교의 1단계 교재였습니다. 중곡동본당 신자들을 대상으로 두 번 정도 1단계 과정을 실시한 후 본당차원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명동으로 무작정 나왔습니다. 교육할 장소와 사무실이 없어서 전진상 교육관 강당을 2시간씩 빌렸습니다. 처음에는 참가자가 한두 명이었죠. 1단계 과정으로는 지속적인 복음화 교육이 안 될 것 같아 8년에 걸쳐 총 5단계 과정을 만들었습니다.

▲장 국장 : 우리가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 잘 모르는 것이 ‘복음화’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정 교장 : 우리나라에서는 ‘복음화’라는 말의 개념정립이 안 되어 있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이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이 198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그 때 ‘선교’라는 말 대신 ‘복음화’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식민지 시대에는 선교라는 단어가 약탈과 침략을 상징했기 때문에 바꾼 것 같습니다. 복음화 개념 안에는 선교 만이 아니라 ‘재복음화’ ‘복음 선포’ ‘복음적 삶의 증거’ 이런 다양한 요소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화라는 명제를 조금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하느님 구원사업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교회의 성패는 복음화에 달려있습니다.

▲장 국장 : 한국교회가 크게 발전한 것 같지만, 발전 그늘에 가려진 부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비근한 예로, 신자 수는 대폭 늘었지만, 냉담교우 수도 그에 비례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오랫동안 평신도 봉사자로서 느낀 한국교회 전반의 문제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가능하다면,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도 듣고 싶습니다.

-정 교장 : 1970년대 이후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교회에 입문했습니다. 통계를 보면 신자 550만 명 중에서 80~90%는 대부분 70년대 이후에 세례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을 끊임없이 양산해왔고, 그러다보니 신앙의 뿌리를 든든하게 하는 조처가 미흡했습니다. 쉽게 입교를 시킨 것은 나름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지속적인 관리와 교육의 소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한 원인이라고 판단합니다. 성사 잘 보고 교무금 잘 내고 미사 봉헌 잘 하는 것이 신자 생활의 전부인 양 생각해 왔습니다. 이는 우리 삶과 연결돼 있는 ‘복음화의 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죠. 지금이라도 신자들을 지속적으로 복음화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복음화 학교가 그런 역할을 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할 예정입니다.

▲장 국장 : 교장께서는 “복음화는 일상이고 습성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요.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복음화’에 대해 어떤 기준이나 가치관을 지녀야 하는지요.

-정 교장 :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모든 기준의 가치를 ‘그리스도’에 둬야 합니다. 그리스도적인 가치를 가지려면 먼저 그리스도 삶 안에 젖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하고 기도 생활도 함께 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관계 속에서 변화된 내가 있어야지만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선포하게 됩니다.

▲장 국장 : 가톨릭신문도 종이신문과 e신문(전자신문) 등으로 주님 복음화 사업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정 교장 : 한국교회 최초의 신문인 ‘가톨릭신문’이 교회와 사회에 끼친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동향뿐만 아니라 신자들이 알아야 할 상식들이 신문 안에 가득 담겨 있습니다. 복음화 학교의 과정 안에도 가톨릭신문을 반드시 보게 하는 강의가 있습니다. 신자들이 무지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이 가톨릭신문이며 한국교회 전체 움직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신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가톨릭신문의 의미와 사명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모바일 시대입니다. 가톨릭신문이 더욱 발전하려면 멀티미디어 시대에 모바일 앱을 개발하는 등 좀 더 발전적인 구상을 해야 합니다.

▲장 국장 : 지나온 삶의 여정과 관련, 소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 교장 : 주님께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립니다. 한국교회 안에서 이렇게 한 평생을 살아온 평신도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성령의 이끄심이 놀라움 따름입니다. 사실 한국교회에서는 평신도가 설 자리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악물고 매진해 왔습니다. 제가 실패하면 제 뒤를 따라올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새로운 평신도 모델을 만들어 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장 국장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정 교장 : 복음화 학교를 졸업한 400여 명의 사람들과 계약 공동체를 하고 있는데, 이 공동체가 올해 25주년을 맞았습니다. 재작년부터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사업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한국에 와 있는 이주민들을 주님 품으로 끌어오고 있고, 아울러 탈북자들도 돕고 있습니다. 또한 베트남, 캄보디아 등 해외선교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 정치우 교장은…

1970년대 중반부터 서울대교구 산하 성령쇄신봉사회에서 전국 총무로 활동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성령쇄신 리더십 트레이닝 과정을 거치고, 계약 공동체 ‘찬미의 백성’(People of Praise)에서 공부 했다. 1990년 이탈리아 로마의 ‘세계 복음화 2000’ 본부에서 연수한 후 귀국해 1991년 복음화 학교를 설립했다.

정치우 복음화 학교 교장과 장병일 본지 편집국장(오른쪽)이 한국교회 복음화의 위기 상황과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정리 최유주 기자 yuj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