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레지오는 나의 모든 것 -「인꼴라마리애」문태준 단장의 활동 체험기] 18 앵커리지에서의「인꼴라」활동-동가식서가숙

입력일 2017-07-12 수정일 2017-07-12 발행일 1994-12-11 제 1933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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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 창고서 숙식… 마음은 행복
헐리 대주교 헌신에 “감동…감사”
■92년 6월 28일

수어드의 바다의 별 쁘레시디움을 순방했다(앵커리지에서 3백20km 지점). 오늘이 여름 휴가 시작 전 마지막 주회라고 해서 방문했으나 주회가 없없다(레지오 주회는 연중무휴다. 여름 휴가라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성당에 들어가 성체조배를 하고 인근의 한인 교우 정 가타리나 자매의 가게를 방문하여 쁘레시디움 단원으로 입단을 권유하고 신앙상담을 하고 솔도트나로 갔다.

솔도트나에 도착하니 오후 9시였다. 저녁 식사를 하고 영원한 도움의 어머니 쁘레시디움 부단장 요안나 자매님 댁으로 가서 하룻밤 나그네로서 신세를 졌다.

요안나 자매의 댁은 알래스카의 아주 작은 농촌 마을 외딴집이었다. 지하실이라고는 하나 차라리 창고였다. 해 묵은 낡은 침대 위에 집사람이 눕고 나는 바지를 입고 신발을 신은 채 긴 응접 의자에 털썩 누었다. 30여 년은 된 듯한 낡은 의자는 푹-꺼지면서 허리가 꺾인다.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무더운 밤이다. 그러나 야릇한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나는 지금 세속적인 목적으로 여기에 와 있지 않고「성모님의 나그네」로서 주님의 일로 출장 와 하룻밤 이국의 어떤 자매 댁에서 신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앵커리지를 떠나기 전 주일미사 때 봉독했던 복음 말씀을 기억하고 묵상하니 더욱 뿌듯한 마음이었다.『하늘을 나는 새도 새끼 틀 둥지가 있고 여우도 굴이 있는데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이 없구나!』하시며 탄식하신 동가식서가숙의 예수님을 그려보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묵주알을 굴리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92년 6월 29일

영원한 도움의 어머니 쁘레시디움을 순방하고 주회에 참관했다. 단원 수는 적지만 (5명) 진지한 회합과 열띤 활동 보고에 감명이 컸다. 멀리까지 찾아와 준 우리 일행(문 바오로, 이 비르짖다, 강 헬레나) 3명을 환영해 주고 주 성모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서 레지오의 관심사를 나누며 사랑에 넘친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었다.

호머에 있는 한인 교우 두 가정을 방문했다.

육향숙(엘리사벳) 자매 댁과 안영환(알로이시오) 형제 댁이었다. 요즈음 제철을 만나 사업에 바빠서 주일미사도 궐한다는 두 가정의 형제자매를 만나서 바쁜 시간을 쪼개어 대화했다. 적어도 주일미사만은 꼭 참여하도록 권고하고 돌아왔다.

■92년 6월 30일

윤옥금(안젤라)인 Mrs. Guzman과 만나 2시간 동안 신앙상담을 했다. 레지오에 입단할 것을 권유했다. 레지오에 입단함으로써 단원 생활로써 더욱 풍요로운 여생이 되도록 인도했다.

오후 7시 30분 한인성당의 은총의 모후 쁘레디시움을 순방하고 주회에 참관했다. 대체적으로 모범적인 쁘레시디움 운영을 하고 있으며 어려운 여건에서도 많은 활동과 열성적인 단원생활을 하고 있어 감사했다.

문 바오로ㆍ이 비르짖다 인꼴라 마리애 단원은 금일부로 이 쁘레시디움에 전입, 등록하고 활동 보고를 했다.

■92년 7월 1일

오후 7시 30분 사도들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순방하고 주회에 참관했다. 제5차 주회의 신설 쁘레시디움으로서 단원 수도 상당히 확보되었고 주회 운영 요령도 양호했으며 전반적으로 진지한 주회였다. 활동 보고를 좀 더 자세히 하였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발전 가능성이 충분한 쁘레시디움으로서 모퉁이의 주춧돌이 되기를 빈다.

골수암 환자인 우OO 자매 댁을 방문했다. 남편과 아들, 딸(비신자)이 함께 한 자리하여「말씀의 전례」를 통한 뜨거운 기도와 위로를 하고 비신자 자녀들과도 신앙 얘기를 나누며 씨를 뿌렸다. 환자 부부와는 더욱더 사랑의 친교를 나누고 힘차게 병마와 싸우도록 격려했다.

■92년 7월 5일

오후 6시 30분 한인성당의 순교자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순방하고 주회에 참관했다. 모범적으로 쁘레시디움을 운영하고 있었고 활동 보고 사항도 양호했다. 다년간 풍부한 활동 경험이 있는 단장이므로 초년병 간부들을 잘 이끌며 의욕적으로 하고 있었다.

알래스카 대교구의 교구장 프랜시스 T. 헐리 대주교님과 대세 환자 권 마리아 막달레나 자매를 나는 오늘 특별히 기억한다. 금년 2월 27일~3월 1일 알래스카 앵커리지 대교구 한인 남성 제1차 꾸르실료를 실시하던 중에 헐리 대주교님께서 교육 현장을 격려차 방문하셨다. 또 내가 한인 공동체의 꾸르실료와 레지오 때문에 앵커리지에 두 번째 방문했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면담을 요청하시어 3월 3일 주교관으로 방문했었다. 1시간 가량 면담한 것이 인연이 되었는데 나흘 후인 3월 7일에 내가 대세를 주어 입교한 위급 환자에게 다섯 차례나 대주교님께서 직접 봉성체를 영해 주셨다는 얘기를 듣고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병 들어 신음하며 고통 속에서 소외되고 잊혀져 가는 자신을 비관하며 울고 있는 환자. 그것도 대세 환자인데도 불구하고 가난한 동네, 이동용 조립식 주택가(Mo-bil Home)까지 친히 성체를 모시고 찾아가 주신 헐리 대주교님! 가난하고 버림 받은 어린 양들을 돌보시러 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그대로 재현시켜 보여주신 대주교님께 환자 자신이나 나는 함께 같은 감사를 드렸다.

오늘 나는 또 한 번 이 대세 환자 권 마리아 막달레나(태련) 자매의 봉성체 봉사에 협조한 후,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가 넉 달 전에 있었던 대세 예식 때를 기억하며 고마워하는 그분을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