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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복음살이] 우울한 현대인, 웃음으로 치유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7-07-11 수정일 2017-07-12 발행일 2017-07-16 제 3053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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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신문에 비친 세상
행복해서 웃는다? 웃기에 행복해진다

현대인은 우울하다. 4명 중 1명이 현대 사회의 각박함과 고도 경쟁 속에서 평생 1번 이상의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우울한 현대인들은 웃음을 잃었다. 웃음이 주는 치유의 힘을 살펴보고, 참된 웃음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 절망을 극복하는 웃음, 풍자와 해학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특히 민초들의 삶과 문화를 설명할 때, 풍자와 해학을 빼놓을 수 없다.

풍자는 불합리한 현실을 다른 것에 빗대어 희화해 드러낸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에서 말뚝이는 양반의 허세와 비리를 거침없이 폭로한다. 관객은 박장대소하면서 마음속 한을 풀어내고, 현실을 견뎌낼 힘을 얻는다. 해학은 현실을 드러낸다는 면에서 풍자와 비슷하지만, 대상에 대한 비판보다는 호감과 연민을 자아내는 익살스러운 웃음을 동반한다. 한 예로, 흥부는 먹을 것을 얻으러 형 놀부 집에 갔다가 주걱으로 뺨을 맞는다. 비참한 상황이지만, 그는 도리어 주걱에 붙은 밥알을 떼어 먹으며 다른 뺨을 내민다. 풍자와 해학은 모두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웃음을 매개로 한다.

상담심리전문가 황미구 원장(비아·헬로스마일 심리상담센터장)은 “우리의 전통 놀이 문화 안에 배어 있는 풍자와 해학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해주었다”고 설명했다. 황 원장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웃음치유 역시 “고통스러운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서 억지로 웃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긍정심리학’의 입장에서, “자신 안에 공존하는 부정·긍정적 정서 중에서, 긍정적 정서를 이끌어내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는 의지적 행위”라고 강조했다.

■ 웃음을 잃어버린 현대인들

복잡다단한 사회 속 현대인들이 겪는 심리적 좌절과 긴장, 스트레스는 풀어내기가 어려워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2001년부터 5년 주기로 ‘전국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를 실시해왔다. 그중 2016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은 평생 1번 이상 정신질환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우울증은 알코올과 니코틴 관련 질환을 제외하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미소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례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미소 우울증’이란 겉으로는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극도의 우울감을 느끼는 상황을 말한다. 대중적 인기에 민감한 연예인, 고객을 항상 접해야 하는 콜센터 직원이나 세일즈맨, 성과 경쟁에 내몰린 직장인들이 주로 겪는 증상이다.

홍성남 신부(서울대교구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는 현대인들, 특히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도무지 웃을 일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정치 불안, 경기침체, 취업난, 고용불안, 양극화 등으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힐링 산업’이 발전한 것도 현대인들의 이러한 정신적 위기를 드러낸다.

■ 웃음은 만병통치?

‘우울한’, 그래서 웃음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웃음치유’다.

웃음치유의 임상학적 효과는 이미 전문적인 검증을 거쳐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윌리엄 플라이 교수는 연구 결과, “웃음은 심장병 예방과 치유에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암 전문 존스 홉킨스 병원의 「정신 건강」 소책자에서는 웃음을 ‘내적 조깅’(internal jogging)이라고 정의한다. 이어 웃음이 순환기를 청소하고, 소화기를 자극하며, 혈액 순환을 돕고, 혈압을 내려주며, 근육 긴장을 완화하고, 엔돌핀 분비를 늘려, 스트레스와 긴장, 근심을 해소해주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미국 UCLA에서 75세까지 웃음과 건강에 대해 연구한 노만 카슨스 교수는 웃음을 통해 자신의 ‘강직성 척수염’을 치유했다. 이후 카슨스 교수는 웃음의 치유 효과를 연구, 「질병의 해부」(Anatomy of an Illness)라는 책도 펴냈다.

이처럼 웃음치유의 임상 효과가 증명되면서 국내에도 많은 유관 기구들이 생겨났고, 일부 대학교는 유머·웃음치유 석사학위 과정까지 개설했다.

■ 예수는 웃었을까?

성경 속에서는 예수가 미소를 지었다거나 폭소를 터뜨렸다는 표현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속성을 지니고 지상에서 사셨던 예수는 분명히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울고, 웃고, 한탄도 했을 것이다.

예수는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루카 6,21)이라며 위로와 격려를 전했다. 심지어 예수는 유다 지도자들에게서 “먹고 마시기만 한다”(루카 5,33)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웃음이 넘치는 잔치와 축제에 너그러웠다.

프랑스의 작가 디디에 드코앵은 성경 구절 하나하나를 뒤져 예수의 웃음을 찾아내고 「예수의 웃음」(Jesus le Dieu qui riait)이라는 책을 썼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복원한 ‘예수의 웃음’이지만, 전후 맥락의 타당성도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다.

실제 성경 속 예수에 관한 일화들을 곱씹어보면 풍자와 해학, 비유와 은유, 역설적인 유머가 풍부한 것을 알 수 있다. 제자들이 누가 위인가를 다툴 때, “으뜸이 꼴찌가 되리라”는 말씀, 빠질 것을 뻔히 알면서 베드로더러 물위를 걸으라고 하신 짓궂음, 간음한 여인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 하고 딴청 피우듯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고 있던 모습 등은 웃음을 자아낼 만한 장면들이다.

「웃음의 신학」을 저술한 미국 오블라띠회 리처드 G. 코트 신부는 “하느님의 유머 감각을 재인식하고, 하느님의 속성에 유머 감각을 포함시켜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웃음은 하느님의 선물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교 영성을 바탕으로 웃음치유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웃음치유사 이미숙 수녀(아가다·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는 웃음의 힘에 대한 체험을 담은 책 「그러니까 웃어요」를 통해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에 행복하다”고 전했다. 웃을 일이 있을 때만 웃는 것이 아니라, 웃다 보면 또 다른 웃음과 행복이 온다는 말이다.

인천교구 평신도 단체인 ‘예그리나 행복아카데미’ 부대표 김효철(그레고리오·64·서울 당산동본당)씨는 “나와 하느님의 참된 관계가 웃음 안에서 이루어지고, 서로의 기쁨을 나눔으로써 인간관계가 부드러워지기에 웃음은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특히 “부활의 영광이 우리 신앙의 목적지이기에 웃음과 기쁨은 없고 고통만 강조하는 신앙은 ‘반쪽’ 신앙”이라면서 “기쁨과 웃음의 미덕들이 신앙생활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남 신부는 그런 맥락에서 “전례를 포함한 신앙생활 전반에서 가톨릭교회는 지나치게 수난과 죽음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며 “신앙인들이 좀 더 복음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된 웃음은 희망을 간직한 이들에게만 가능하다. 웃음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은 부활의 영광과 환희를 향한다. ‘복음의 기쁨’을 드러내고 웃음을 생활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좌절하거나 절망에 빠지기 쉬운 시대에, 희망을 키우는 일이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