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굶주리는 이들 위해 식량 마련
오늘날까지 교황들이 사용하는 ‘하느님의 종들의 종’ 칭호를 처음 사용한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재위 590-604)은 즉위하자마자 굶주리는 이들을 위해 식량과 생필품을 마련하는 등 사회가 겪는 어려움에 적극 함께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부터 시칠리아, 달마티아, 갈리아, 또 북아프리카에까지 이르는 광대한 교황청의 토지를 다시 정리하는 법령, 즉 베드로 세습령(Patrimonium Petri)을 시행했다. 이 같은 부동산의 재정비는 후일 교황령의 기초가 됐고 중세 때 교황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교황이 된 590년 당시 로마와 이탈리아는 롬바르드족의 약탈로 경제가 거의 마비 상태였다. 로마 시내는 피난민들로 넘쳐났다. 그레고리오 1세는 성직자, 수도자들에게 가난한 사람을 적극 찾아갈 것을 요청했다. 또 가난한 이들이 상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구호소 설치를 지시했다.
매월 구호품 지원을 지속했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구호 식량을 받으러 가기가 여의치 않은 이들에게는 수도자들이 매일 아침 음식을 가져다주도록 했다. 이들이 먼저 식량을 받기 전에는 먼저 식사하는 법도 없었다. 또 식사 때는 12명의 빈민들을 초대해 함께 밥을 먹었다. 그때 이용한 대형 식탁은 지금까지 보존돼 있다. 그가 작성한 서신에서 어려운 이들에 대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주님께서는 나를 당신 대리자로 삼으시어 힘겨워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책임을 맡기셨다.’
혼란한 시대가 요구하는 소명을 훌륭하게 완수하면서 ‘대(Magnus)’라는 칭호를 얻은 그레고리오 1세는 수도자로서는 최초의 교황이다. 성직자들의 생활을 개혁하기 위해 ‘사목지침서’ 4권을 저술했다. 또 미사 전례곡들과 성무일도에 사용된 시편 등을 전례력에 맞춰 정리한 그레고리오 성가집을 편찬했다. 중세 교황권뿐만 아니라 교황사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