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최남순 수녀 교도소 일기] 67 가정파괴범은 누구인가 3

입력일 2017-06-26 수정일 2017-06-26 발행일 1993-01-31 제 1840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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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라는 말에 비판, 자살소동

그의 엽서는 계속 이어졌다. 『수녀님 제가 영세받을 적에 그 많은 수녀님들의 천사같은 아름다운 성가, 그때의 그 감격을 끝까지 간직했더라면 여기 있지는 않았을텐데요』

그는 83년 3월에 서울 형사지법 남부지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5월에는 고등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었고, 9월 13일 대법원에서 상고기각으로 사형이 결정되있다.

그는 한때 사형수라는 말이 몸서리치도록 싫어 자살을 실행하기도 했다. 의무과에서 감기약을 받아서 틈틈이 모아 두었다가 한꺼번에 복용한 것이 발견되어 앰블란스에 실려나갔다. 위세척을 하여 자살미수에 그치는 소동을 벌이게 된 것이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그는 많은 것을 체험하게 되었고 반대로 영적성장에 큰 발돋움을 하게 됐다. 그로 인해 자신이 어리석음을 알게 되었다.

『수녀님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낮에 있었던 일들…. 환희에 찬 맑은 모습들을 그려보면서 제 자신을 조용히 반성해 봅니다.「바로 두 해 전에 그런 기쁨을 뜨겁게 느끼면서 눈물이 솟구쳤던 내 자신이 이토록 변모되었을 줄이야」 하면서 생각을 하니 뻔뻔스러운 두 얼굴에 눈물방울이 흘러내립니다. 수녀님! 처지가 이렇듯 영어의 몸이지만 어렴풋이 주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맞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괴로웠던 지난날들보다 이제야 수녀님의 배려 속에서 생활하며 진실로 통회하고 뉘우침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허락하신다면 주님의 고통을 되뇌이면서 깨닫고 싶습니다.

수녀님 인사가 늦었지요. 어제 뵈었더니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 속에서 어머니 같은 포용력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난 참 염치가 없지요? 때론 실망도 안겨드린 제가 이렇게 지면상으로 말씀을 드리는 중에도 수녀님께선 핀잔의 말씀을 주시는 듯합니다. 제가 어리석었고 바보였다는 것을 부인치 않을 것입니다. 뒤를 돌아다보지 않고 묵묵히 순종하렵니다. 수녀님 건강하셔야 할 것 같아요. 수녀님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눈에 어리는 것 같군요.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셔 봅니다. 높으신 하느님의 배려라는 것을 느끼면서 헤매었던 어리석은 한 소년이 수녀님께 감히 제 마음을 털어 놓습니다. 제게 주셨던 말씀 중「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우리 인간들은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씀(요한 15, 5) 가슴 깊이 새겨 봅니다.

아침 일찌기 어디론가 떠나 길 잃은 신자들을 구원코자 노력하시는 수녀님께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빌어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