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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세 300만 허와 실] 24. 혼인성사 3. 출산ㆍ양육

허남 기자
입력일 2017-06-12 수정일 2017-06-12 발행일 1992-06-21 제 1810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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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아이」4만 웃돌아
아이는 “하느님 선물” 깨달아야
자녀의 종교교육은 부모의 중대 의무
■ 가출청소년 2만명

보사부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영ㆍ육아시설(고아원)에 수용돼 있는 아이들이 2만3천여명이라고 한다. 또한 성장기의 청소년들중 가출해 떠돌이 상태로 있는 아이들이 2만여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고, 가출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만 집계해도 상당한 숫자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사회 공인 영ㆍ육아 시설에 수용돼 있는 아이들은 미아인 경우 즉시 찾아가고 있음을 감안할 때 99%가 버려지거나, 고아가 됐거나, 가출한 상태이거나 결손 가정에 따른 아이들이라고 한다.

교회내 아이 보호시설중 최대 규모로 사회사업을 하고 있는 「소년의 집」사무장 박우택씨는 『현재 소년의 집에 있는 아이들은 서울 2천3백여명, 부산 1천8백명 등 4천1백여명이 있다』면서 『이들 아이들의 거의가 기아(棄兒), 고아, 가출아, 가정에서 보호못하는 아이들』이라고 설명, 이런 통계를 뒤받침 해준다.

이같이 버려진 아이들이 많다. 또한 날로 흉포화되고 빈번해지는 청소년들의 사회 범죄 및 탈선을 생각할 때 가정교육에서 버려진 청소년들도 많다. 즉 가정의 따스함에서 벗어나는 아이들, 아니 내던져지고 있는 아이들이 이외로 많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 현실이 과연 천주교신자들과는 무관한 일반 사회의 현상이고, 천주교신자가정에는 해당되지 않는 문제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천주교신자 가정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는 정부의 통계, 종교와 거의 무관하게 우리나라 결혼부부 8쌍중 1쌍이 이혼한다(법외이혼모로 파괴된 가정까지 생각하면 6쌍중 1쌍이라고 한다)는 비슷한 분포를 나타내고 있는 것에서 이를 반증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이런 현실에서 우리자신의 신앙과 또 신자로서 받은 결혼시의 혼인성사의 의미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신체적, 사회적, 문화적, 교육뿐만 아니라 윤리적, 종교적 교육도 힘껏 돌보아야 할 가장 중대한 의무와 제1차적인 권리를 가진다』(교회법 1136조). 『혼인제도와 부부애는 본연의 성격상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로써 부부애는 절정에 달하고 흡사 월계관을 받아쓰는 셈이다』(사목헌장 48항).

■ 신앙교육에 무관심

교회의 가르침은 이처럼 혼인과 자녀출산, 자녀교육 성가정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혼인성사의 은총은 자녀의 올바른 교육을 지향하도록 이끌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교회는 특히 인간교육에는 「종교교육」이 필수적이며, 이를위해 부모가 정성을 쏟아 부어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더욱이 교회 혼인을 한 이들은 자녀의 출산과 양육의 의무를 성실히 하겠다는 것을 약속했음을 상기해야 할것이다.

그러나 최근 수원교구 평협에서 조사 발표한 「청소년들의 신앙실태 설문조사」는 이 같은 교회의 가르침이 얼마나 무색한 실정인가를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음을 알수 있다.

이 조사에서 부모의 자식에 대한 관심도가 학교성적, 개인문제, 신앙생활 순으로 나타났고, 73.5%가 부모님이 자식의 신앙생활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집계됐던 것.

종교교육에 대한 참담한 이런 통계는 사실 낙태와 관련된 조사와 비교하면 오히려 낫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태아에 대한 사랑모의 의식과 가치관, 가정생황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는 토대임을 감안할 때 심각하다고 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최근 정부에서 『낙태자가 1년에 무려 1백50만건에 이르고 있어 이들 모두를 처벌할 수 없는 입장임을 감안, 법이 있으되 적용되지 못하는 법이니만큼 사문화된 법이라고 규정, 사실상의 폐지화를 주창하고 나선 것』은 우리사회의 생명경시 풍조가 어느정도에 까지 와있는 지를 여실히 나타내 주고 있는 극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양심ㆍ행동 따로따로

생명이 있는 태아를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사고방식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게 올바른 교육, 올바른 가정형성, 종교교육을 기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라는 분석이다. 또한 이 같은 대열에 많은 신자들이 의식적이지는 않되, 즉 죄의식은 느끼되 함께 행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우리의 신앙고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반성부터 해야 할 것이라는 냉엄한 지적이다.

사실 젊은 남녀의 건전한 사귐과 결혼, 이어지는 임신, 육아, 아이교육, 청소년교육, 가정생활, 결혼 시키는 것들의 과정을 하나의 주기로 볼 때 주어진 생명경시 풍조, 버려지고 있는 아이들, 황폐화되고 있는 가정들의 해결고리는 어느한 부분에 대한 강조가 아니라 인생전반을 꿰뚫는 가치관의 확립, 신앙인들에게는 자신의 신앙 재정립의 토대 위에 각 부분에 대한 자신의 올바른 실천의지가 반영되어야만 주어질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해답이다.

간단히 말해서, 각자의 신앙에 따른 가치관도 실천하지 못할 만큼 사회도덕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어느 한 부분에 대한 회심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치유키 위해 다가서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대상의 가르침대로 지켜나가야 한다는 기본적인 확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후 각 순간, 각 분야에 따른 자기의식의 쇄신과 끊임없는 자기계발 및 가족, 이웃과의 연대와 협조 속에 개선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는 제시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자신의 혼인 특히「성사」의 은총을 받은 자신의 결혼을 깊이 있게 상기해야 할 당위성이 생기는 것이고, 이깊은 성찰을 통해 교회의 가르침을 자신의 가정에서 또 일상생활에서 생활화해야 하는 것이다.

■ 자녀는 하느님 선물

수많은 아이들이 버려지고 거기다 수많은 아이들이 가정에서 벗어 나고자 하는 현실에서 혼인성사의 은총을 받은 신자들은 정말 엄밀하게 교회에서 자녀에 대해 자칭하는 낱말인「하느님의 선물」이란 말을 숙고해야 한다.

아이가 결코 인위적으로 조성된 사물이 아니다는 것. 아이는 부부의 삶을 윤택하고 풍성하게 하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깊이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아이가 설혹 태아에서부터 지체부자유자로 판명되든 아니면 원치않은 임신이 됐든 그 아이가 바로 하느님의 선물임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이 전제되고, 체화(體化)되었을때만이 낙태가 없어질 것이며, 아이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행해지고 혼인성사에서 주어진「구세사의 장」이 실현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될 수 있을것이라는 풀이다.

『아이는 그대들을 거쳐서 왔으나 그대들에게서 온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그대들이 그들과 더불어 있다 하더라도 그대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아이에게 그대들의 사랑을 줄 수는 있으나 생각을 줄 수는 없다』(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

허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