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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학산책] 11 A. J.크로닌「천국의 열쇠」

조순애ㆍ시인ㆍ선일여고교사
입력일 2017-05-29 수정일 2017-05-29 발행일 1992-04-19 제 1801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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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셤 신부 통해 참된 인간 삶 그려
평화ㆍ참사랑이「하느님뜻」역설
타종교 폭넓게 수용, 개방된 신앙관 제시
“천국은 진실하게 사는 이에게 열려” 묘사
AㆍJㆍ크로닌의 (Archibaid Josepg Cronin) 천국의 열쇠(THE KEYS OF THE KINGDOM)가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학의 속성이 「감동과 재미」일 때 이 소설은 한마디로 완벽했다고 할 수 있다. 1941년 7월에 초판을 내고 같은 달에 여섯번 중판을 내고 계속된 중판은 그해말. 약 반년동안에 60만부를 매진시켰다. 그후 10여년 동안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 제1위를 차지한 이 작품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으로 물결처럼 퍼져 나갔다.

크로닌이「천국의 열쇠」를 펴낼 당시는 제2차세계대전중이었다. 일류상잔의 참상 속에서 전 인류는 한 형제라는걸 염두에 두고 써내려 간 작품이 바로 「천국의 열쇠」이다. 종교가 다르고 사상이 다른 민족들이라 해도. 아니 한 나라. 같은 이웃이라 해도 적대시하거나 대립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직 평화와 참사랑만이 하느님의 뜻이었던 것이다. 이런 크로닌의 깊은 생각은 소설 곳곳에서 나타난다.

『성신강림 축일에도 신부님은 신자들에게 「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바로 여러분의 손에 있습니다. 천국은 어디에나 존재하여 어디 있어도 좋은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구요. 슬리스 신부는 공책을 뒤적이며 검열관처럼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또 사순절에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셨지요. 「무신론자라 해서 모두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무신론자로서 지옥에 가지 않은 사람을 한 사람 알고 있습니다. 지옥은 하느님 얼굴에 침을 뱉은 자만이 가는 곳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하셨다지요. 공자(孔子)가 그리스도보다 유머가 풍부하다」고요?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안셀모」주교의 비서인 슬리스 신부가 70이 다된 치셤 신부를 찾아와서 (안셀모가 보내서)한 말이다.

이는 평소 치셤 신부의 신념이 어떠한가를 제삼자의 입을 통해서 증거하고 있는 결정적인 장면이다. 1938년 9월의 늦은 오후 성골롬반 성당 사제관을 눈앞에 그리며 독자들은 치셤 신부의 회고하는 시간속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60여년전 4월의 토요일로 말이다.

주인공 프랜치스 치셤은 아홉살 나던해 어느 봄날. 어이없게도 고아가 됨으로써 그의 불우한 소년시절은 시작되었다 서로 다른 두 종파(어머니의 부모들은 개신교신자였다) 사이에서 태어나 혼자 남겨진 어린 치셤으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엘리사벳의 아들은 내가 맡겠어요. 혈연관계가 있는 것은 우리들뿐이니까요』

치셤의 양친 장례식을 치르기 전날 밤에 「미세스 다니엘그레니」가 이 말을 한 의도는 치셤 신부의 부모가 남긴 유산이 탐이 난 것이다. 다만, 치셤에게 즐거움이 있다면 식구들은 외출하고 외할아버지 다니엘과 마주앉아 할아버지가 말 할 수 없이 기쁜 얼굴로 잠자코 성서의 책장을 넘기는 것을 지켜 보는 그 순간뿐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불행을 확대하기만 하는 비극 대신 작은 기쁨을 찾는 치셤 소년의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이런 생활에서 벗어 나기 위해 모았던 10실링 짜리 금화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외갓집이 있는「다로」 읍내를 떠나려던 기차역에서의 절망감. 치셤과 가장 친한 월리의 아버지 탈록 의사의 구출로 살아나지만 치셤은 늑막염에 시달린다.

폴리 숙모가 치셤을 자기집으로 데려가고 다시 만난 노라와 치셤사이에는 애정이 싹튼다.

폴리 숙모의 배려로 「흘리웰」 신학교에서 공부하게 된 치셤은 한 학기를 남겨 놓고 노라에게 편지를 쓴다.

『…… 그리운, 그리운 노라여! 내가 산모랄레스(신학교)행의 성스러운 급행열차의 차표를 손에 넣지 않는 진정한 이유는 너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노라는 사생아를 낳고. 피츠제랄드 신부를 찾은 치셤은 더욱 절망하게 될 뿐이다. 치셤은 성당지기가 문을 잠그고 마지막 불이 꺼졌을 때 신음하듯 기도 한다.

『아. 하느님.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실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기도란 이것 말고 또 무엇이 있는 것인가. 결혼을 하루 앞두고 노라마저 기차에서 떨어져 목숨을 버린 그날 밤 치셤은 성도미니꼬 성당에 자신도 의식 못하는 사이에 들어가 감실앞 빨간 성체불이 흔들리는 그 앞에서 비로소 자기는 어떻게 해서든지 사제가 되어야 할 사람임을 깊이깊이 느끼면서 결심을 굳게 한다.

이 소설 제3부의 제목처럼 「성공하지 못한 보좌신부」의 생활은 탄광 도시 세일즈리의 키저 신부와 더불어 시작된다.

정작 문제는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 속을 자전거로 달리는 고통이 아니라 아무리 열을 내서 지껄여대도 신자들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신자들은 거의가 냉담에 떨어져 신앙도 열의도 잊어버린지 오래였고. 아이들마저 되바라져서 사람을 골탕먹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프라치스셤은 이대로는 놔두지 않겠다는 결심을 마음속에 굳혀 나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키저 신부는 프란치스가 직면하고 있는 곤경을 바라보며 치셤 신부의 고결한 이상주의가 패배하여 자기의 현실적인 운영방침에 항복해 오기를 내심 기다린다.

마침내 조지경의 기증으로 레크레이션회관은 개관이 되고 개관축하의 밤 장내가 떠나갈듯한 박수갈채가 치셤신부를 향해 터졌다.

이날밤 키저 신부의 꺼칠한 음성이 치셤 신부의 등을 때린다.

『자네 일을 주교에게 보고 하겠네』 결국 그의 이상주의나 자유주의적 태도는 마찰을 일으킬 뿐이었다.

피츠제럴드 주임신부와 더불어 생활을 하면서도 치셤 신부는 그가 지닌 성실성과 인간양심의 핵심에서 일보의 물러섬도 없었다. 굳건하게 자기의 길을 갈 뿐이었다. 그러나 얄팍한 세상은 그를 백안시하기까지 한다. 치셤 신부는 그의 생활환경 속에서 얻게 된 개신교와의 융화된 사상때문에 본국에 있지 못하고 중국으로 떠나게 된다.

『우리 해외 포교단에서는 이제야 겨우 중국에 교구 설정을 하게 됐다네. 여러가지 수속이 완료되는 대로 그리고 자네 편에서 준비가 되는 대로 어떤가. 모험을 각오하고 최초의 선교사로 가볼 생각은 없나?』

러스티 맥 주교의 말에 한동안 프란치스 치셤은 대답을 못한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만족감이 서서히 온몸을 채우는 것이었다. 더듬거리며 그는 대답했다.

『네. 가겠습니다』.

드디어 중국으로 부임한 치셤 신부는 그곳에서 20년의 사제생활을 갖는다. 치셤 신부는 중국에 가서 그곳에 높은 도덕률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음을 보고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흡수해서 자기 안에 독자적인 참 신앙의 확립을 완성시키기에 이른다. 중국에서의 그의 선교는 감동적인 장면들의 연속이다. 타종교와 가톨릭. 그리고 개신교 사이에서 경직된 상태를 치셤신부는 삶을 통해 극복해 간다. 마침내 그는 이런 대립에서 생겨나는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관계를 융화케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잊었던 참신앙의 기쁨을 찾아 줌으로써 감동과 용기를 갖게 해 준다.

「마리아 베로니카」 수녀가 마침내 치셤 신부 앞에서 참회하는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베로니카 수녀는 낡아 허물어지기도 한 성당의 증축도 자신의 오빠에게 부탁하겠다고 자청한다.

『……전 지금까지 누구를 존경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부님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신 분입니다』

이렇게 말한 「마리아 베로니카」의 말은 독자들의 마음에 공명으로 다가온다.

중국의 생활에서 치셤 신부는 노동의 행복도 절감한다. 이론이 아닌 실행의 모습이다.

『…머리보다는 손으로. 마음을 다 쏟아 일할 때 느껴지는 기쁨. 대지의 상쾌한 숨결에 이렇게 호흡을 맞춰가며 소박하게 살아간다는 그것은 바로 「천국의 생활」』이라고 그는 여긴다.

여기서 우리는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허상에 매달리며 살아 가는가 하고 가슴을 치게 된다.

36년전 러스티 맥과의 회견을 기다리던 응접실에서 주교를 기다리는 치셤신부는 서글픈 듯 고개를 흔든다.

한 고향에서 함께 자랐고 동급생이었던 「안셀모 밀러」는 치셤과는 정반대인 사람이다. 학교에서는 반장 노릇을 하고 신부들의 신임을 독차지 하면서 요령있게 살아가던 그는 마침내 주교가 된것이다.

그는 중국에 있는 치셤 신부를 방문했던 적도 있는데 지금 주교의 신분으로 치셤 신부의 알현을 허락하고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치셤 신부는 옛친구 밀리 주교에게 청원을 하게 된다.

『트위드 사이드(옛고향)를 주지 않겠나. 안셀모. …나를 고향에 돌아 가도록 해주게』

치셤 신부는 자기도 모르게 음성이 떨려 나와 흠칫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가라 앉은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맥납 주교가 옛날에 약속한것이지. 만일 내가 귀국한다면 본당을 하나 주신겠다고….』

마침내 귀국하는 치셤 신부.

『하느님이 내게 중국을 떠나 이곳으로 오도록 한 것은… 그것은 오직 이 작은 아이 때문인 것이다』

오후 3시나 돼서야 트위드 사이드에 도착했다. 트위드 강가의 경사를 따라 인가가 모인 이 오래된 마을은 밝은 햇빛을 담북 받으며 자기가 어제 떠난것과 똑 같은. 그리고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아름답다

그러나 성실했고 충성된 하느님의 아들 치셤 신부를 교회에서는 인정을 하지 않는다. 심하게는 「이단」 시까지 하게된다. 외면으로는 실패한 사제의 길이다. 그리고는 「성실한 마음으로 자기 양심대로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그러한 삶의 주인공인 치셤 신부는 어떤 종파이건. 무신론자이건. 「천국의 문」은 반드시 열릴것이라는 신념을 갖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 책속에는 천국의 열쇠는 안셀모 밀리와 같은 출세주의자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암시하고 있다.

주교가 보낸 슬리스 신부가 자신을 공격하는데 대해 치셤 신부는 『나는 내 인생의 청산서를 하느님께 제출 하겠소』라고 말한다.

가톨릭의 한 신부를 중심으로 엮었지만 A. 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제시항 이단의 종파에 무조건 폐쇄적이던 가톨릭교회의 참신한 종교관을 공의회보 보다 20년 앞서 제시했다고 본다.

조순애ㆍ시인ㆍ선일여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