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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주교의 교회법 해설] 87 보호권

정진석 주교ㆍ청주교구장ㆍ주교회의교회법위원회 위원장
입력일 2017-05-29 수정일 2017-05-29 발행일 1992-04-12 제 1800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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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간 선교경쟁 박해자초도
17C「교황대리 감목제」신설 동양에 파견
신세계 선교권, 스페인ㆍ포르투갈에 부여
▨보호권(Ius Patronatus)

▲신세계의 발견

○1492년 콜롬브스가 신세계를 발견한 이후 강력한 함대를 가지고 항로개척에 앞장섰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두 왕국은 식민지 정복에 몰두하였다.

○가톨릭 국가들인 이 두나라의 국왕들은 식민지 개척권과 식민지에 선교할 권한과 임무를 교황으로부터1493년에 받았다.

▲보호권

○교황은 신세계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그들에게 보급물자를 수송하며 그들의 신변을 보호할 함대가 없었다. 그래서 이러한 임무를 스페인과 포르루갈의 국왕들에게 맡겼다.

○교황은 이 두 국왕들에게 선교사 선교사 선발권과 배치권, 그리고 식민지에서의 교회 설립권과 주교 후보자 제청권 및 십일조를 징수할 권한을 주었다.

○이처럼 교황이 스페인과 포르루갈의 국왕들에게 부여한 임무와 권한을 보호권이라고 일컫는다.

▨동양의 전교

▲포르투갈의 전교

○포르투갈은 브라질, 아프리카, 인도, 중국, 일본 등지에서 보호권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였다.

○포르투갈은 1533년에는 인도의 고아에, 1576년에는 중국의 마카오에 교구를 세웠다.

▲전교지방 교회의 참상

포르투갈은 1580년부터 1640년까지 스페인에게 지배당하여 국력이 쇠퇴하였다. 그 결과 1649년에는 포르투갈과 인도에 각각 1명씩의 대주교가 있을뿐이었다.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과 아프리카에는 주교가 1명도 없었다 그리고 고친, 말라카, 마카오, 일본의 주교좌는 공석이었다.

▲관할굴역 분쟁

○이 때문에 특히 인도, 인도지나 , 샴(태국) 등지에서 포르투갈의 보호권에 의하여 파견된 선교사들과 교황청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사이에 관할구역 쟁탈전이 심각하게 벌어졌다

○오랜세월에 걸친 이 분쟁의 해결을 위하여 포르투갈과 교황청 사이에 1857년, 1886년, 1928년, 1929년에 정교조약이 체걸되었다.

○포루투갈 정부는 지금도 고아와 마카오에서 보호권을 행사한다.

▨보호권의 폐단

▲보호권의 남용

○보호권을 받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국왕들은 처음에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페단이 생겼다.

○특히 스페인 식민지의 경우에는 왕권에 의하여 주교 후보자가 제청되었으므로 식민지의 주교는 관리로 전락하였다. 이러한 주교들은 성직자와 수도자양성을 소홀히 하였다. 그리고 교황청에서 임명되는 주교들을 배척하였다. 그리하여 예를들면 1829년에는 멕시코에 주교가 1명도 없었다.

○스페인 정부는 19세기에도 필리핀, 쿠바, 푸에르토리코에서 보호권을 행사하였다.

▲식민지 쟁탈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두 가톨릭 국가는 상호간에 다투었고 국력이 쇠퇴해 갔다.

○17세기 중엽부터는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인 영국과 네덜란드가 동양의 무역권을 차지하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애써 개척한 식민지를 빼앗겼고, 그곳에 설립한 교회와 선교사들을 보호할 능력을 잃었다.

▨수도회의 특별권한

▲고대 수도자들

○고대의 수도자들은 백성에게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서 아무런 규제도 받지않았다.

교회의 체계와 규율이 확정됨에 따라 수도회들도 교황의 통치아래 속하게 되었다.

▲특별권한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은 1234년에 프란치스꼬회 수도사제들에게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미신자들의 지역에서 구원사업을 수행하기에 편리하도록 대폭적인 특별권한과 면속특권을 부여하였다.

○이때부터 선교 사업에종사하는 각 수도회는 대폭적인 특별권한을 부여받았다.

▲선교지역 설정권

성직자 수도회의 장상들은 관할권의 범위마저 거의 자의로 정할 수있을정도로 대폭적인 특권을 누렸고 선교지역 설정권도 부여받았다.

▲수도회들의 불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왕들은 신세계의 전교사업을 프란치스고회, 도미니꼬회, 예수꼬 등 여러 수도회에 맡겼다.

○각 수도회는 인종과 문화가 전혀 다른 아메리카, 아시아 등 신세계의 각지에서 제각기 독자적인 방법으로 전교사업을 수행하였다.

○전교의 성과를 경쟁한 수도회들은 서로간에 모순된 전교방법까지 썼고 협력은 커녕 불화와 다툼이 심하였다. 그 때문에 복음화의 지장뿐아니라 교회박해를 자초하기까지 하였다.

정진석 주교ㆍ청주교구장ㆍ주교회의교회법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