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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학산책] 10 한무숙 장편소설 「만남」

구중서ㆍ베네딕도ㆍ문학평론가ㆍ문학박사ㆍ가톨릭출판사주간ㆍ수원대학교 인문대학장
입력일 2017-04-20 수정일 2017-04-20 발행일 1992-03-15 제 1796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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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한국교회 뿌리내림 과정 그려
하느님과 만난 다산ㆍ성 정하상의 생애
동ㆍ서양 사상ㆍ반상의 대면 보여줘
문단데뷔 45년만에 쓴 역작…학술적 고증도 담아
다산의 배교 인간적 변절로 포용
작가 한무숙은 문단에 나온지 45년째되는 1986년에 회심의 역작으로 장편소설「만남」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다산 정약용과 그의 조카 정하상을 두 축으로 하여 한국 천주교 초창기 신자들의 순교와 박해 속의 삶을 다루고 있다.

다산은 한국 근대사에서 학문과 사상을 집대성한 대학자이다. 그의 형으로서 조선 천주교의 주춧돌을 놓고 순교한 정약종의 아들이 하상이다. 젊은 하상은 이 땅의 자생 교회에 성직자를 영입하는 운동을 주도하고 역시 순교해 지금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생애가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진리를 만나서 각기 갈등하고 성취한 것이 무엇인가. 이 주제를 다룬 소설「만남」의 의미는 헤아리기에 벅찬바 있다.

■ 동양인과 하느님

다산 정약용도 그의 형 약전ㆍ약종과 더불어 요한이란 세례명을 받고 천주교에 입교한 인물이다. 그런데 이 다산은 신앙을 엄금하는 국법 앞에서 배교를 하고 목숨을 건져 귀양길에 올랐다. 오늘날까지 다산의 배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우선 한 가지 생각할 일이 있다. 다산의 경우는 서양 어느 나라 문화권에 살던 이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가 다시 배교를 해 나온 경우와는 다르다고 보아야 할 것같다. 개종의 의미도 분명치 않았고 따라서 배교의 의미도 분명치 않았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동양의 한 지식인으로서 자신이 자라온 문화 토양에서 우주의 주재자인 하느님에 대해 나름으로 뿌리 갚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다산이 전라도 강진으로 귀양을 가 백련사의 선승 혜장과 유교의 역학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눈다. 다산은『역학이 다만 음양의 원리를 따지는 수리 논리가 아니라 상제로 부터 오는 천명의 소리를 듣는 것』으로 생각했다.

서양 선교사 마태오 리치가 중국에 들어와「천주실의」란 책을 쓴 것도 유교의 천명사상이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통한다는 취지였다.

이「천주실의」를 비롯한 한문 서학서들이 조선에 전해졌고 당시 실학 계열 학자들이 서학의 내용을 풀이하고 검토한 글들도 나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산은 전통 유교사상안에 있는 천명의식과 천주교의 하느님 신앙이 상충되지 않는다고 이해했었다.

그러나 굳이 국법이 추궁하니까 그는 목숨을 건지기 위해 배교를 한 셈이다. 이 경우 그의 변절을 굳이 변호하거나 합리화 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도 한 인간으로서의 약한 존재였으니까.

작가 한무숙은 오히려 다산의 이와같은 약함과 흠도 인각적인 모습으로 긍정하고 포용한다. 다만 다산은 무모하게 살아남기에만 급급했다기 보다 학문과 삶에 대한 보다 큰 의욕과 동경도 가졌을 수 있다.

■ 약한 인간

소설「만남」안에는 특별히 약한 인간의 변심에 대한 갈래도 충분히 설정되어 있다. 배신자 유다스의 역할로 권진사 집 종 승낙종이 그런 인물이다. 장가도 못든 이 사내 종은 논산에 살던 권진사의 아내와 어린 딸들이 포졸들의 습격을 받아 피할때 무서운 배신을 한다. 권진사 부인은 몸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어린 세 딸은 각기 숲 속을 기어나가 거지 고아로 흩어진다.

이러한 악인 낙종에 대해서도 작가는 그 행패의 측은한 동기를 곁들여 놓았다. 권진사가 원래 양근에 살때 낙종은 인물 좋은 총각 종이었다. 권진사에게 시집오는 열네살 신부의 빼어난 미모에 종 낙종은 흠모와 자탄의 한을 품었었다.

인간의 탐욕은 경황없는 위기에서 자포자기의 악행에 넘어간다. 다산의 악함은 이러한 추잡과는 관계가 없다. 다만 과거에 장원하던 자리에서 정조 임금이 손수 음식을 권하며 총애하던 은혜 앞에서 그의 약한 마음은 배교의 한 동기를 볼수도 있었을 것이다.

■ 만남의 신비

소설의 제목「만남」은 어떠한 만남인가. 얼핏 생각하기에는 서양으로 부터 온 그리스도 신앙과 동양의 유교사상이 만났다는 뜻으로 짐작될지 모른다. 넓게 해석하면 그러한 뜻도 없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주된 골격이라면 이것은 하나의 교회사 서적이 될 것이다.

이 소설에는 인간들의 만남이 있다. 배신자 낙종이 다른 죄업으로 병신이 되어 공주 감영에 들어왔다. 이 곳에 갇여있던 권진사는 원수인 종 낙종을 오히려 사랑으로 대해 준다. 손수 짚신을 삼아 판 돈을 들여와 낙종의 연명을 돕는다.

무엇보다도 가슴을 저리게 하는 만남은 거지가 되어 헤어진 세 어린 자매들이 다시 만나는 신비에 있다. 특히 무당집 수양 딸로 들어간 둘째 딸 세실리아가 일곱살 때 헤어진 두 살 위 언니 마리아를 발견해내는 순간 세실리아는 무당이 시루떡에 칼로 十자를 긋는 데서도 현기증을 느끼곤 했는데, 지금 언니 마리아가 천주학쟁이로 형장을 향해 가고 있다. 세실리아는 기꺼이 따라 붙어 함께 형장으로 가는 수레에 올라탄다. 사랑도 귀하지만 어쩌면 신비가 더 귀함을 이 장면은 절감케 한다.

만남의 통로 몫은 약종과 하상 부자가 맡는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어지러운 세속을 초월해 진리에만 열중해 살던 학자 정약종 그의 아들 하상도 갖은 시련을 이겨내며 숙부 다산에게도 오가고, 멀리 함경도 무산에 유배된 학자 유스띠노 조동섭을 찾아가 글도 배운다.

무엇보다도 하상은 여러 차례 어렵시리 북경을 찾아가 남천주당의 리베이로 신부를 만난다. 자생의 조선 교회, 박해의 피밭에 성직자를 보내달라는 간절한 청을 건넨다. 주교와 로마 교황에게 보내는 같은 요청의 편지도 전한다.

이 편지 글이야말로 강진 유배지에서 다산이 은밀히 다듬어 준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일컬어 넓은 지구 위 동양과 서양의 만남, 아니 하느님과 인류의 소통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이 소설에서 쓰이고 있는 천주교 영세명의 유별남, 요한ㆍ바오로ㆍ마리아ㆍ세실리아ㆍ유스띠노 이런 이름들이 오히려 생소하지 않다. 이것이 야말로 옛 조선과 세계를 만나게 하는 한 매개가 됨직도 하다. 지금 소설「만남」을 국외에서 읽는 서양 독자라면 그러한 소통과 친근함에 가슴이 젖어들지 않겠는가.

■ 완성과 구원

인간은「완성」을 위해 일하는 존재이다. 한 인간의 지기완성, 한 사화의 자기완성, 하느님 나라의 완성 외에 더 소중한 목표가 어디에 있겠는가.

다산은 한 학자로서 자기를 크게 완성하는 소명을 띠고 태어난 인간 같다. 그는 자신이 죽은 뒤에 사용하도록 스스로 자기를 말하는 묘지명을 써 두었다. 거기에 자신의 저서 목록이 들어 있다. 경집 2백32권, 문집 2백60권, 그리고『일은 대강 마쳤으니 이제 죽어도 두려울 것이 없다』고 적었다.

다산이 귀양살이를 하던 강진의 옆 고장 해남은 그의 외가 윤씨네가 사는 데였다. 국문학사상 시조의 대가 고산 윤선도의 집안이다. 윤선도는 효종 임금의 사부였던 때가 있다. 그의 집「녹우당」의 현판은 효종이 직접 써 준 것이다. 이 녹우당에 만권의 책이 있었다.

다산은 강진에서 해남으로 왕래하며 이 수많은 책을 가져 가고 가져오며 학문에 정진할수 있었다. 이러한 데에 귀양을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크게 복을 받은 일이다. 그러한 데에서 18년 간이나 귀양살이를 하면서 그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18명의 총명한 제자들도 길렀다.

또한 밥 시중 빨래 시중 들던 질박한 촌부 표씨네와 물에 물이 섞이듯 자연스레 만나 딸도 하나 두고 지냈다. 여인의 손에서는 가난한 재료로도 성찬이 창조되고, 삶은 동경할 만한 것이었다.

귀양에서 풀려 고향 마재 마을에 돌아간 다산은 마을 앞강 너머에 있는 형 약종의 무덤에 마음 켕기는 시선을 주며 지낸다. 목 없는 무덤이라고도 했지만 거기에 선망과 질투와 회한을 보내며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다산은 결국 중국인으로 조선에 들어와 있던 유방제 신부로부터 종부성사를 받고 75세의 생애를 마친다. 다산이 배교를 후회하고 다시 신앙에 귀의해 초연히 수덕을 쌓다가 죽었다는 데 대해 오늘날 학계의 경학 계열에서는 부인하려 드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들의 수선떨지 않고 은밀한 신앙 생활은 천주교 성직자와 신자들이 가장 잘 안다. 뒷날 조선교구에 들어온 성직자 다블뤼의「비망록」이란 소중한 문헌이 있다. 이 문헌을 받아 보고 서앙에 앉아서「한국천주교회사」를 쓴 달레 신부가 있다. 그의 교회사 기록은 다산 정약용의 신앙 희귀를 명백하게 증언해 놓았다.

다만 다산은 죽은 뒤 장례를 간소히 유교식으로 치르라고 유언했다. 그의 묘는 마재생가 여유당 뒤 동산에 지금 단정히 자리잡고 있다. 그의 아내 묘와 함께.

오늘의 가톨릭 교회는 각 지역 각 민족의 고유한 문화전통과 생활풍속을 존중한다. 다만 인류의 보편적 진리와 사명을 의식하면서, 교회는 여러 행태의 문화와 만남으로써 서로를 풍요케 한다.

이렇나「만남」주제를 절절이 곰살궂게, 또 크게 학술적 테두리의 고증을 담아 창작된 이 소설은 우리 모두의 보람이다.

언제나 장인의식의 문체와 구원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한국의 가톨릭 작가 한무숙은 이 소설「만남」으로써 그의 원숙한 한 경지를 빛나게 성취했다.

구중서ㆍ베네딕도ㆍ문학평론가ㆍ문학박사ㆍ가톨릭출판사주간ㆍ수원대학교 인문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