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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한국가톨릭문학상 특집] 특별상 수상작 강희근 시인 「순교자의 딸 유섬이」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7-04-18 수정일 2017-04-18 발행일 2017-04-23 제 3041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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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창작활동에 처음 도전한 시극
순교자 가족의 착한 삶, 새롭게 해석

강희근 시인은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문단에 발을 내디뎠다. 펜 문학상, 김삿갓 문학상, 산청함양 인권문학상 등 여러 상을 받았으며, 국립경상대학교 교수와 인문대학장을 역임했다. 「한국가톨릭시연구」, 「우리시문학연구」 등의 저서와 「풍경보」, 「프란치스코의 아침」 등 시집을 다양하게 펴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문학표절문제연구소 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강희근 시인은
눈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주님과 일치하며 기도에 기도를 거듭했던 시간들이 한 순간에 머릿속을 스쳐갔다. 온전히 주님께 맡겨드렸던 시극, 그 작품이 한국가톨릭문학상 특별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강희근(요셉·74) 시인은 밀려드는 감동을 감출 수 없었다고 말한다.

강 시인은 1965년 등단해 50년 이상 끊임없이 시를 쓰고, 대학 강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살아왔다. 하지만 시극(詩劇)은 처음 썼다. 원숙한 작가로서도 떨리는 도전이었다. “작품을 공적으로 표명하고” 쓴 것도 처음이었다.

“시극은 제 능력 밖의 창작이라고 생각해 잠시 망설였지만, 그 마음 또한 봉헌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생각이 기우(杞憂)에 불과했다는 것은 금방 드러났다. 그는 “천주가사 연구가인 하성래 교수가 「사헌유집」에서 발견한 내용에 유관 자료를 보태 쓴 ‘거제로 유배된 유항검의 딸 섬이의 삶’을 읽고는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아홉살 어린 여자아이가 유배지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면서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내가 여기 왜 와 있는가?’라는 생각을 떠올리지 않았을까요? 무엇보다 동정을 지키려고 동굴 속 같은 흙돌집에 들어가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강 시인은 거제도에서 보낸 유섬이 삶의 시작과 끝은 오로지 가족들과 함께 지낼 때 얻은 신앙의 힘으로 매듭지어진다고 확신했다. 또 유섬이가 선종한 나이는 71세. 시인도 70대이기에, 유섬이가 겪은 생의 고비 고비를 더욱 깊이 공감하면서 유추해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강 시인은 이 시극의 핵심은 천주교 자료를 찾기 위해 유섬이가 홀로 지내던 흙돌집을 깨라는 부사의 명령을,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막아낸 장면이라고 소개한다. “민초, 민중들의 힘이 그 때도 지금도 신앙을 탄탄이 지탱해준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특히 강 시인은 작품을 쓰기 전에 “왜 이 시대에 순교자 가족의 이야기가 필요할까”를 오랫동안 고민했다고. “순교자의 가족들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 절망, 치욕, 아픔 등을 이겨내며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순교자의 가족들은 누구일까요? 공동체 안에서 소리 없이 선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누구인지 찾아보는 것이 이 시대의 ‘유섬이’를 찾는 게 아닐까요.”

수십 년을 거듭해온 창작의 시간 동안, 강 시인은 사물과 세상을 ‘새롭게 보고 해석하려는 노력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그 노력에 더해 강 시인은 “이렇게 유섬이를 만난 것이, 자신이 시인이고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이지를 새삼 절감했다”고 고백한다.

● 수상작 「순교자의 딸 유섬이」

복자 유항검 딸, 섬이의 유배생활 감동적 묘사

전라도 최초의 가톨릭신자인 복자 유항검과 그의 가족들이 신유박해로 순교하자, 그의 아홉 살 딸 섬이는 연좌제에 의해 거제도 관비로 유배를 간다. 그리고 71세까지 동정을 지키며 홀로 살았다. 「순교자의 딸 유섬이」(2016년, 가톨릭출판사)는 그 삶을 시적 정서가 풍부한 극으로 엮은 ‘시극’(詩劇)이다.

당시 거제도호부사를 지낸 하겸록이 저술한 「사헌유집」 내용을 근거로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유섬이가 신자로서 살아간 부분은 시인의 상상력으로 창작했다. 하지만 시인은 유섬이의 삶에, 초기교회에 불었던 피바람과 유섬이의 올케언니 이순이 루갈다의 실천적 신앙의 표양 등을 연결하면서 감동적인 흐름을 펼쳐냈다.

마산교구장 배기현 주교는 “유섬이의 삶이 이제는 살아 있는 민초들의 사무치는 주제로 시극화되고 연극이 돼, 교회의 경계선을 넘어 우리 겨레 전체의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고 추천의 말을 남겼다.

● 특별상 부문 심사평 구중서(베네딕토) 문학평론가

실존 문집에 근거… 작품성 갖춰

강희근 시인의 시극은 신앙과 작품성을 함께 갖춘 작품이다.

시극 장르는 원래 서양의 고대 문학사에서부터 있어 왔다. 한국에서도 신문학 초기부터 시극이 창작되어 왔고, 가톨릭 문인으로 구상 시인과 홍윤숙 시인이 시극도 창작했다.

강 시인의 시극의 소재는 한국 천주교 초대교회 시절 박해 속 신앙이다. 전라도 지방의 초기 순교자인 유항검의 딸 유섬이가 주인공이다.

순교자의 어린 딸 유섬이는 거제도로 귀양을 가 관가의 노비가 돼 71세까지 동정녀로 영성적 삶을 살고 선종한다. 전주 본가의 올케 이순이 루갈다의 동정 신앙 영성까지 이어받는 생애가 시적 극본으로 승화돼 있다.

거제도 도호부사의 문집에 근거를 둔 창작으로서, 교회사와 민족 정신사 안에서 보람 있는 가치의 차원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