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교구 이곳저곳] (20) 남양성모성지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7-04-11 수정일 2017-04-11 발행일 2017-04-16 제 3040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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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하나, 성모님께 봉헌하고
촛불 둘에 ‘평화’ 위한 기도 담는 곳
초대교회 교우촌·순교터 성지로 개발
1991년 故 김남수 주교가 선포·봉헌
돌묵주 등 유명… 전국서 순례객 찾아
5월 ‘통일기원 성모 마리아 대성당’ 착공

성지 입구에 자리한 초 봉헌실 전면은 투명 유리창으로 마감해, 언덕에 세운 ‘남양 성모 마리아상’을 보면서 기도할 수 있도록 꾸몄다.

평화를 위한 기도. 365일 그 기도 소리에 폭 파묻혀 평화롭게 웃을 수 있는 곳, 바로 ‘남양성모성지’(전담 이상각 신부)다.

이 성지를 처음 순례하는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우와’하며 탄성을 내기 일쑤다. 성지입구에 들어서면 널찍하게 조성된 광장을 보고 감탄하고, 숲길 사이사이로 이어지는 기도의 길을 걷다보면 사시사철 이어지는 아름다움에 또다시 감탄한다.

■ 숲속 곳곳에서 만나는 기도 길

남양성모성지는 지역민들에게는 물론 전국적으로 이미 잘 알려진 성지로 꼽힌다.

지난 주일 아침, 성지에 가장 먼저 발을 내디딘 이들은 수원 율전동본당 초등부 가톨릭스카우트인 ‘율전 성모대’ 대원들이었다. 아침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은 성지 곳곳을 뛰어다니던 어린이들은 어느 틈엔가 한데 둘러서서 정성껏 기도를 봉헌했다. 이윽고 성지 곳곳엔 나이든 부모님과 어린 자녀들의 손을 꼭 잡고 순례에 나선 가족들, 나란히 기도걸음을 맞추는 노부부, 기도 시간 내내 아빠 입을 보면서 웅얼웅얼 성모송을 곧잘 따라하는 아이들, 유모차를 밀면서 자장가처럼 기도를 읊어주는 엄마 등 다양한 모습의 순례객들이 찾아들었다.

남양성모성지 순례객들은 너나할 것 없이 성지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으로 돌묵주를 가리킨다. 화강암을 동글동글 깎아 만든 묵주알은 어른이 두 팔을 벌려 한아름 안기도 어려울 만큼 큼지막하다. 순례객들은 성지 로사리오 광장과 언덕 오솔길을 따라 4.5m 간격으로 놓인 돌묵주알에 손을 얹고 정성껏 기도한다. 그 묵주기도의 길 끝에선 두 팔을 벌리고 온화한 미소로 맞아주는 ‘남양성모상’과 마주할 수 있다. 또 다른 방향에서 ‘성모님과 함께 걷는 맨발 십자가의 길’, ‘성서에 따른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피에타상이 자리한 봉우리에 다다른다. 각각의 길 곳곳에선 기도문을 새긴 표지판과 다양한 성상들이 순례객들을 이끌어줘, 이른바 기도 초보자들도 자신 있게 성지를 순례할 수 있다.

■ 성모신심을 떠받치는 두 기둥은 성경말씀과 성체

성지 경당으로 올라가기 전, 순례객들은 성체조배실을 그냥 지나지 않는다. 흡사 프랑스 루르드성지 동굴과 비슷한 입구를 거쳐 들어가면 고요하고 따스한 성체조배실에 들어설 수 있다. 경당에 들어가면 또 다른 특별함이 느껴진다. 성지 경당의 제대 뒤 전면은 투명 유리로 마감돼 있다. 덕분에 경당 바깥에 서 있는 대형 십자가를 마치 제대 위 십자가처럼 바라보면서 전례를 할 수 있어 이색적이다.

경당에서는 평일 10시부터 공동 묵주기도를, 토요일 오후 2시부터는 ‘평화통일 기원 100단 묵주기도’를 봉헌할 수 있다. 미사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11시에 봉헌한다. 특히 매주 목요일 저녁 7시30분부터는 ‘침묵의 세 시간 성시간’이, 주일에는 오후 2시부터 ‘음악과 함께하는 성시간’이 진행된다. 성시간에 대해 잘 모르거나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을 위해 묵상시간뿐 아니라 떼제음악과 치유를 위한 기도, 하느님 자비를 구하는 기도 등으로 구성됐다.

성지 전담 이상각 신부는 “성모신심을 떠받치는 두 기둥은 바로 성경말씀과 성체”라면서 “때문에 성지에서 진행하는 모든 영성 프로그램은 성체조배와 고해성사를 근간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묵주기도는 성경 요약본 그 자체이며, 마리아는 우리를 성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데려가주시는 분”이라고 덧붙였다.

■ 한국 최초로 봉헌된 성모성지

남양 지역은 초대교회 교우촌이 자리했던 곳이며, 수많은 순교자들의 박해의 칼날에 스러져간 곳이기도 하다.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순교지를 발굴, 이듬해부터 성지 개발을 시작했다. 특히 2대 수원교구장이었던 고(故) 김남수 주교는 1991년 10월 7일, 이곳을 평화와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로사리오의 남양성모성지’로 선포하고 봉헌식을 거행했다. 당시 김 주교는 “한국 신자들은 박해시기부터 지금까지 성모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심을 지녀왔지만, 성모의 사랑을 기억하며 순례할 수 있는 순례지가 없었다”면서 “성모님의 삶처럼 소박하고 이름 없는 신앙선조들이 순교한 이곳을 한국교회 성모 순례지로 봉헌한다”고 밝혔다.

성지는 오는 5월 13일, 파티마의 성모 발현 100주년 기념일에 ‘통일 기원 성모 마리아 대성당’ 공사를 시작한다. 대성당은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해 더욱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묵주기도의 길과 십자가의 길이 만나는 성지 언덕과 언덕 사이 계곡에 지어 올리는 이 대성당은 통일을 향한 염원을 상징하는 구심점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성지는 이곳을 전례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봄날 생기까지 가득 내뿜고 있는 남양성모성지. 이곳을 순례하는 이들은 전대사의 특전도 받을 수 있다.

길게 늘어선 나무그늘을 따라 한 알 한 알 놓인 대형 묵주알.

평택대리구 동탄숲속본당 김호겸(마르셀리노)·이상욱(미카엘)씨 가정공동체가 함께 순례하고 있다.

남양성모성지 경당 아래에 자리한 따스한 성체조배실.

가톨릭스카우트 ‘율전 성모대’ 대원들이 대형십자가를 둘러싸고 기도를 봉헌하고 있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