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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학산책] (9) 스페인 신비주의 문학과 성녀 데레사

우덕룡ㆍ한국외국어대 서반아어과 교수
입력일 2017-02-20 수정일 2017-02-20 발행일 1992-01-19 제 1788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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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합일의 환희를 표현
데레사는 신비문학의 거성ㆍ행동가
열정적인 활동ㆍ성격ㆍ관상이 성녀의 신비주의 형성
신학의 본질ㆍ경험적 행동까지 다뤄
십자가의 성요한과 함께 가르멜회 대 개혁…반종교개혁에 큰힘
스페인이 세계 왕국을 꿈꾸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명성을 누리던 펠리페 2세(RelipeⅡ)시대에 스페인적 요소가 짙은 종교 문학이 성행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곧 신비주의 문학이다.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성행한 종교적 신앙심이 표현인 신부주의 문학은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 가톨릭 신앙의 발로로서 생겨난 것이다.

가톨릭교에서는 먼저 신앙과 신비주의교리에 심취한 후 그 교리와 자신의 삶으로부터 개인적인 경험을 갖게되는 사람을 신비주의자라고 본다. 즉 신비주의(Misticismo)는 신(神ㆍDios)과의 친밀한 영혼의 합일을 열망하는 것으로 완전하고 절대적인 신(神)의 세계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이들의 최후 목적인 신과의 정신적인 합일의 환희의 순간까지는 3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제1단계는 금욕의 단계(Via purgativa)로서 외부 세계를 차단하고 느낌과 감정을 모조리 씻어 버리는 단계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현세에서의 삶에 얽힌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자아(自我)를 비워야 한다는 점이다. 제2단계는 계시의 단계(Via iluminativa)로 이전의 속박에서 벗어난 영혼은 성신(聖神 : Espiritu Santo)을 향유하게 되고 신의 존재를 환희로 받아들이게 된다.

제3단계인 합일의 단계(Via unitiva)는 단지 신을 명상하는 차원이 아니라 신과의 내적인 합일에 이르는 마지막단계이다. 신비주의자들은 이 단계에서 육체와 영혼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을 인식하는 동시에 영혼이 신과 접촉하는 감격적이고도 황홀한 순간의 경지를 맛보게 된다.

이러한 단계는 험난하고 고독한 길이며 인간의 현실에 대한 의미나 활동, 관대함 등 그 어느 것도 배제되지 않은 지적인 경지의 단계로서 스페인 신비주의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신의 사랑과 이웃의 사랑이 굳게 결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단순한 명상이 아니라 행위가 수반되는 사랑을 의미하며 성녀 데레사 데 헤수스(Santa Teresa de Jesus)와 성 후안 델 라 크루스(San Juan de Ia Cruz)는 스페인 신비주의문학의 거성이며 행동가였다. 본 글에서 다루려고 하는 신비주의 작가는 우리에게는 「대 데레사」로 알려진 데레사 데 헤수스이다.

데레사는 1515년 3월 28일 아빌라(Avila)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데레사는 남동생 로드리고(Rodrigo)와 함께 모로인의 땅으로 가 순교자가 되길 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녀의 정원에 조그마한 암자를 만들어 사도의 번민을 달랬다. 19세에 아빌라의 화신(化身) 카르멜 수도회에 입단하여 그곳에서 그녀는 영혼의 훈련에 순종하면서 수년간의 자아와의 싸움, 혹독한 고독감, 목마른 영혼의 난관을 거치게 된다. 1562년에 그녀는 너무나 평이한 원리원칙에 진력이나 뜻을 같이 하는 4명의 수녀와 함께 맨발의 카르멜회(Carmelo discalseati : 履靴派)를 창설하고 그녀의 첫 사업인 산 호세 데 아빌라(San Jose de Avila) 수도원을 건설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수도원을 건립하여 데레사 규율-청빈ㆍ고행ㆍ기도-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자 잠시 물러나 4년간의 묵상기도 생활에 들어가기도 하였지만 그녀의 지칠줄 모르는 개혁 사업은 66세의 나이로 알바 데 또르메스(Alba de Tormes)에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계속 되었다. 그녀의 사상은 묵상적인 은둔과 실제 활동과의 합일로 표현할수 있으며, 어둡고 비열한 현실속의 무지한 사람들을 이끌어 나가는 역할을 지닌 수도자의 행동을 역설하였다.

그녀의 체험과 교리는 영원히 새롭기만 하다. 특히「기도」는 묵상기도에서 부터 평정의 기도, 그후 신과의 합일을 위한 기도가 있다. 이때 자아속에서 고요를 찾아, 정원의 샘물처럼 솟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어야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고독을 얻기 위해 우리 자신의 내부의 세계로 몰입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데레사는 그녀의 신비주의 체험이 작품 「내부의 성(城)」(Castillo interior o Libro de las Moradas, 1577)에서 더욱 자세히 신과의 합일의 순간을 설명하고 있다. 영혼은 단지 물을 머금은 촉촉한 정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부의 성」이며, 그곳에는 일곱개의 방이 있다. 먼저 준비기도의 방이 있고, 첫 부르심의 장소 그리고 차례대로 시험의 방, 기쁨의 방, 무아경의 방, 합일이 방이 있다. 이때 영혼은 누에의 유충에 비유되며 나비로 부활하기 위해 누에고치를 만들어 그곳에서 영면한다. 거의 동양적인 영감에 가까운 데레사의 이러한 이야기는 모두 고차원적인 기도의 이성적인 실천, 즉 생각의 몰두를 통하여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까지 다다를 수 있다는 그녀의 신념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비유들이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이 우리 내부에 거주하게 되고 자신은 그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하느님을 보고, 듣고, 만지되 눈이나 육신의 느낌으로써가 아니라 영혼으로써 이루어지는 일이다.

데레사는 신과의 접촉, 합일을 황홀하게 표현하는 상당한 분량의 시들을 남겼지만 신비주의 작가로서의 명성은 무엇보다도 산문을 통해 얻었다고 할 수 있으며 작품 곳곳에는 활기차고 대담한 필체와 함께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정신적인 교감이 어우러져 있다. 그녀의 주요 작품을 살펴본다면 1561년에서 1565년 사이에 쓰여진 「자전(自傳ㆍLibro de su Vida)」은 최초의 작품으로 어렸을 때 부터의 생애를 도덕적 양식을 갖고 반성하고 회개하는 형식으로 쓴것으로 상당 부분이 기도문으로 되어 있다. 이밖에도 수녀들이 수도생활을 통해 영혼의 완성을 이루도록 충고하는 형식으로 쓰여진「완성의 길(Camino de Perfeccion)」,「신의 사랑에 대한 개념(Conceptos del amor de Dios)」그리고 4백통 이상의 편지를 한데 모은 「서간집(Cartas)」과 후렴구를 지닌 민요적인 찬송가 형식의 시들이 있다. 특히 「나는 내 마음속에 살지 않고 사노라. (Vivo sin viviren mi)」로 시작되는 시는 깊은 상징성와 함께 열렬한 어조, 간결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널리 애송되고 있다.

『나는 내마음속에 살지 않고 사노라

고귀한 삶을 기대하노라 나는 죽지 않으므로 죽노라

이미 나는 내 밖에 산다

사랑으로 인해 죽었으니

나는 주님의 품속에 살고

주님은 주님을 위해 나를 원

하셨다

내가 그에게 나의 마음을 주었을때

내 마음 속에 이런 말씀을

주셨다 :

나는 죽지 않으므로 죽노라』

(vivo sin vivir en mi

Y tan alta vida espero

Que muero porque no muero

Vivo ya fuera de mi

Despues que muero de am or,

Porque vivo en el Senor

Que me quiso para Si

Cuando el corazon le di

Puso en el este letrero:

Que muerlro porque no muero)

앞에서 보았듯이 아빌라(A vila)출신의 성녀(聖女) 데레사의 내적 상태는 『나 죽지 않으므로 죽노라(Que muero porque no muero) 』와 같이 역설적인 사랑의 긴 외침으로 요약되고 있다.

문체는 작가의 정신과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평이한 구어체로 되어 있다. 수사법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고 용어 자체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평범한 것들을 사용하였지만 독자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강력한 힘과 활기에 찬 표현은 생동감을 준다. 또한 담담하고 정중한 어조, 정감어린 필치는 명쾌한 표현과 함께 어우러져 그녀의 문체를 특징짓고 있다.

데레사의 신비주의는 그녀의 인간성과 분리해서는 이해될 수 없다. 그녀의 생전에 전개했던 정열적인 활동, 개혁사업, 저서, 그녀의 성격, 신체의 질환, 이 모두가 한데 모여 데레사 신비주의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곧 스페인의 신비주의는 신학의 본질적 요소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경험적ㆍ활동적인 행동 또한 표현하고 있음을 살펴 볼 수 있다.

그리고 스페인의 신비주의에서 문학적표현과 그 미학적 가치는 본원적인 것이다. 당시의 쇠퇴하고 있던 철학(피타고라스파, 알레산드리아파 등)은 타국의 신비주의와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열망과 신앙의 의구심을 고양시켜 대중들을 도덕적으로 교육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신비주의 문학은 개인적이며 자유의지의 산물이지만 세네카(Seneca)로 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면이 가미된 도덕적, 실행적인 모습 또한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열렬한 행동을 통하여 수동적인 정관의 자세속에서 신과의 합일을 꾀하는 경향이 보이며, 영혼의 구제를 향한 정의의 실행을 관조적인 고요함 속에서 타협할 줄 알았다. 영혼의 내부에서 신을 찾으려는 경향은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을 강하게 보여주며, 그리스도의 인간적 면모와 대중에로 향한 계도에 연결되어 인간이 물질생활의 풍요로 인해 퇴폐와 타락에 빠져서 신의 말씀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려는 것을 막아 주었으며 일반 스페인 국민들의 마음에 신앙심과 도덕적 윤리관을 불어 넣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또한 타유럽국가들과는 달리 신교(Protestantismo)와의 충돌이 완화된 반(反)종교개혁(Contrarreforma)의 길을 열어놓는 데에 일조했다.

스페인 문학사에 있어서 황금세기(Siglo de Oro)에 속하는 16ㆍ17세기에 나타난 신비주의 문학은 그 전시대에도 존재했던 문학 형태였지만 데레사와 후안 델 라 크루스에 의해 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데레사가 세상을 떠나던 해에, 카르멜수도원의 한 수도승이 그의 개혁사상으로 인해 박해를 받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데레사의 오른팔이라 할수 있는 후안 델 라 크루스이다. 우리는 그를 「십자가의 요한」으로 알고있다. 그는 카르멜 수도원에 들어와 살라망카(Salamanca)에서 수업을 계속하다 데레사를 알게되어 그녀의 엄한 규율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데레사가 남기고 간 모든 개혁 사업을 추진하려다 반대 세력에 의해 감옥생활까지 하게 된다. 이때 그의 유명한 작품 「영혼의 노래(Cantico espiritual)」가 나오게 된다. 마음을 비우고 영적인 공간으로 몰입한다는 것이 그의 교리이다. 영혼은 먼저 「능동적인 밤」, 말하자면 정신과 자각의 밤으로 떨어진다. 육체의 욕구는 파괴되고 지적인 능력도 지워져 버린다. 그리하여 영혼은 상념의 단계에서 명상의 단계로 나아간다. 좁은 문이 나타나고 신비한 통로가 열린다.

그러나 이 기진맥진한 싸움이 끝났다는 기쁨이 영혼을 스치자마자 곧 다시 제2의 밤에서 방황하게 된다. 첫번째의 밤보다 훨씬 더 깊은 밤이 온다. 이는 「수동적인 밤」이다. 하느님의 침입을 받는 정확한 순간에 영혼은 일종의 버림받은 느낌을 얻게 된다. 하느님은 외침 밖에서 머무르고 영혼은 의지할 곳을 잃어 버린다.

그러나 곧 무아경의 세계 속에서 영혼은 환희에 취해 하느님의 포로가 되고, 곧 주인에게 순종하여 하느님과 동일화된다. 즉 신과의 정신적 합일의 순간에 이르게된다. 이 순간의 환희를 노래하는 것이 바로 신비주의 문학의 정수인 것이다.

가장 데레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녀의 개혁사업과 신비주의 세계를 이어가기 위해 거의 전 생애를 감옥과 유배생활로 보낸 후안 델 라 크루스를 잠깐 살펴본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페인 가톨릭 정신의 발로로서 생겨난 신비주의 문학의 거성이자, 청빈ㆍ고행ㆍ기도를 모토로 수도 사업을 전개한 행동가인 성녀 데레사의 근본적인 관심은 자신의 신비적 연인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영혼의 절규인 것이다.

그녀는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나의 사랑하는 님이여, 이제 우리가 만날 시간이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들려주며 눈을 감았다.

『나 죽지 않으므로 죽노라』라고 노래했듯이.

우덕룡ㆍ한국외국어대 서반아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