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특별기고] 한국 사회를 돌아본다

오용석(프란치스코 사베리오) 한국평협 사회사도직연구소장rn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위원/
입력일 2016-12-20 수정일 2016-12-21 발행일 2016-12-25 제 3025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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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 휩싸인 한 척의 배”… 위기를 희망으로 이끄는 교회 돼야
탄핵·경제불황·지진·사드 배치 등
각종 위기와 갈등 고조됐던 한 해
노동자·농민 인권 간과되는 현실
출산율 저하·고령화 문제도 심각

정의·평화에 대한 신자들 관심 부족
사회교리 바로 알고 실천 앞장설 때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삶 살 수 있어
2016년 한국 사회는 격랑에 휩싸인 한 척의 배와 같다. 지금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또한 선상 사건에 비유할 만하다. 배의 선장이 사적 친분 있는 자에게 배를 내맡겨 온갖 이권을 취하게 놔둔 것이 드러나 그에 분개한 승객들이 횃불을 쳐들고 선장을 끌어내리려 나선 형국과 너무나 닮았다. 그러나 문제는 배를 위험에 빠뜨린 무도한 자와 그것을 방조한 선원들을 벌하고 선장을 끌어내린다고 해서 배가 직면하고 있는 격한 풍랑을 피할 수는 없다는 데 있다.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도 이와 똑같다. 배가 만난 풍랑이 거세지듯, 한국의 위기 상황 역시 올해를 넘기면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그것은 대통령 탄핵과 그 이후 정치적 혼란, 악화되는 경제 불황, 지진 공포, 북한 핵위협과 미군 사드배치에다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의 모험주의에 따른 한반도 정세 불안뿐만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국가소멸을 불러온다는 인구 절벽도 올해로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것 어느 하나도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올바른 처방을 내놓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는 몰락의 내리막길로 갈 수밖에 없다.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에 책임 있는 일원이 한국 가톨릭교회이다. 교회를 이루는 신자들은 일차적으로 한국 국민으로서, 그리고 이 사회의 책임 있는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나라의 위기 국면에 결코 비켜서 있어서는 안 된다. 올 한 해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이 살겠노라 다짐한 ‘자비의 희년’을 보낸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더욱 그러하다.

2016년을 보내면서 가장 심각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금년이 인구구조 전환의 해라는 사실이다. 생산가능인구(14~64세)는 올해 정점을 찍고 내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한다. 또한 내년부터 65세 이상의 노인인구가 14세 이하의 유소년인구보다 많아진다. 지금 우리는 이 문제를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유엔 인구국은 노인인구가 유소년인구를 앞지르는 상황을 “인구의 역사적 역전”이라고 하여 인구의 심각한 위기국면으로 파악한다. 그것은 이런 인구구조변화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지형을 뒤흔드는 대격변을 일으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국의 인구학자 폴 월리스는 그 대격변을 “연령지진”으로 표현한다. 그 충격이 2011년 동일본을 강타한 리히터 규모 9.0의 자연지진에 비교할 만하다는 데서 그렇다.

유엔 인구국은 한국 “인구의 역사적 역전” 시기를 2020년으로 예측했지만 현실은 그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의 유소년인구는 절반으로 준 반면, 노인인구는 약 4배나 늘었다. 특히, 2002년부터 신생아 수가 40만 명 선으로 줄었는데 이들이 내년에 만15세가 된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신생아 수가 40만 명을 밑돌 전망이다. 이렇다 보니 지금의 초·중등학교 폐교 현상이 내년부터는 고등학교로 확산되고 4년 뒤에는 대학교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지원자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 교회의 신학교와 수도원의 장래를 더욱 암담하게 한다. 또 국가적으로는 5년 뒤에는 군 입대 장병 수의 부족이 예견되고 있다. 한국의 출산율 저하와 빠른 인구 고령화는 동시에 신자의 고령화이기에 나라뿐만 아니라 교회의 앞날도 어둡게 한다.

출산율 저하와 인구 고령화는 생산과 소비를 위축시켜 경제성장의 큰 걸림돌이 된다. 고용기회가 줄고 해고가 늘어 빈부격차와 불평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2016년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는 이미 심각한 상태이다. 올해 1월 1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14~18세 청소년 10명 중 8명이 우리 사회가 ‘불평등하다’고 여기고 있다. 거기에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까지 더해져 노사갈등을 비롯한 사회 균열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헬 조선’이라는 자조적 유행어가 나돌고 “금수저”와 “흙수저”로 출생배경을 가르는 ‘수저계급론’은 이미 익숙해진 말이다. 요즘 세계가 놀라는 수백만의 촛불로 온 나라를 뒤덮게 만든 단초가 된 최순실의 딸이 대학 부정입학을 “부모의 실력”이라고 떳떳이 자랑한 것은 한국 사회 ‘수저계급론’의 진면목을 보여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런 불평등 사회구조 속에서 백성들은 희망을 잃고 있다. 이달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13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결과, 응답자 절반 이상이 자녀들의 신분상승을 불가능한 것으로 답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잘 말해 준다. 이러니 이 나라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려고 하겠는가!

2016년 한국 사회에 대한 위협은 땅 위뿐만 아니라 땅속으로부터도 분출되고 있다. ‘인구지진’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자연지진 공포까지 덮친 것이다. 지난 9월 12일 경주시 인근에서 규모 5.8의 역대 최대 규모 지진과 40여 차례의 여진이 발생하였고 지금도 간헐적으로 지진은 계속되고 있다. 이 달에도 11일부터 14일까지 태안, 경주, 상주에서 규모 2.1~3.3의 지진이 네 차례나 있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핵발전소가 밀집된 곳에서 지진이 잦다는 사실이다.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경주에는 핵발전소뿐만 아니라 작년부터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까지 운영되고 있다. 가동 25년이 넘는 낡은 핵발전소 4기가 밀집된 고리 주변 30킬로미터 안에 사는 주민은 340만 명을 넘는다. 세계 핵발전소 주변 어느 곳도 이렇게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은 없다. 인간 생명과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한국 에너지산업정책의 현주소이다.

한국은 산업발전을 위해서라면 노동자·농민의 생명과 인권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라다. 산업현장에서 사망하는 노동자가 매년 2000명을 훨씬 넘는다. OECD 국가 중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1위이다. 올해도 5월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세 청년의 참변, 9월 고속철 선로 보수 노동자 2명의 열차 충돌 사망을 비롯하여 대기업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 11월 노동자들의 권익을 주장하는 시위현장에서 쌀값 인상을 요구하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금년 9월 25일에 운명한 백남기 농민 사건은 이 나라 백성의 생명과 인권의 현실을 가늠하게 한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본다는 한국이지만 절대다수의 노동자·농민들의 현실은 목숨을 내걸고 살아야 할 만큼 열악하다.

2016년은 한국교회사에서 병인박해 150주년이고 보편교회가 노동헌장 「새로운 사태」 반포로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르치기 시작한 사회교리 125년이 되는 해이다. 교회사적으로 이렇게 의미 있는 해에 가톨릭 사회교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국 사회는 불행히도 정의와 평화의 사각지대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를 직시하는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담당 위원회를 통해 올해만도 다섯 차례의 성명을 발표하여 한국 사회 현안 문제에 대한 바른길을 제시하고 있다. 여러 본당 강론에서도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지적되곤 한다. 그러나 신자들은 정의와 평화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에 너무 무관심하다. 때로는 무관심을 넘어 “좌파”라거나 심지어 “빨갱이”로 매도까지 한다. 이 나라를 뒤덮고 있는 암울함을 걷어내고 희망의 빛을 되찾기 위해서는 신자들 모두가 교회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실천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삶이다.

오용석(프란치스코 사베리오) 한국평협 사회사도직연구소장rn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