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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의 날 특집] 라파엘클리닉 봉사단장 전온씨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6-11-29 수정일 2016-11-30 발행일 2016-12-04 제 3022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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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는 파도다, 날 일깨워주니까”
“간호사 부인 따라왔지만 지금은 더 열성적  
 고맙다 인사하던 노동자, 따뜻함으로 남아”

12월 5일은 ‘자원봉사자의 날’

12월 5일은 국민의 자원봉사활동 참여를 촉진하고 자원봉사자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국가가 2005년 제정한 ‘자원봉사자의 날’이다. 올해로 11회를 맞았다. 자원봉사라는 말은 라틴어의 볼룬타스(Voluntas)에서 유래했다. 인간의 자유의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의사라는 뜻이다. 즉, 의무감이 아닌 자발적으로 행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에서 자원봉사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시기다.

이 당시에는 자발적으로 병역을 지원할 때 자원봉사라는 용어를 썼다. 이 용어는 점점 ‘주로 사회복지분야에서의 자발적인 활동’으로 의미가 변해갔다. 현재의 자원봉사는 타인의 문제, 사회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 돕는 관계를 맺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자원봉사가 개인이나 가족의 이해를 넘어 사회 전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결과를 낳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나아가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런 개념의 변화를 증명하듯 자원봉사활동 기본법 7조는 자원봉사활동의 범위를 다양하게 제시한다. 전통적인 분야인 사회복지 및 보건 증진에 관한 활동을 물론이고 인권 옹호 및 평화 구현에 관한 활동, 범죄 예방 및 선도에 관한 활동, 부패 방지 및 소비자 보호에 관한 활동, 국제협력 및 국외봉사활동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원봉사는 자원봉사자의 날이 제정되기 이전부터 이미 활발하게 이뤄졌다. 태풍이 지나가거나 홍수가 발생하면 피해지역 복구와 수재민 진료에 자원봉사자들이 나섰으며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 같은 국가적 행사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은 큰 역할을 했다. 2007년 태안반도 원유유출사고 때에는 각계 각층에서 해안의 오염된 기름을 제거하는 자원봉사에 나서기도 했다. 아울러 농어촌 의료봉사활동, 겨울철의 김장담그기, 대학생들의 농촌 봉사활동 등은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는 자원봉사활동이다.

서울 창경궁로에 자리한 이주노동자 무료진료소 라파엘클리닉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전온씨.

매 주일 이른 아침 전온(그레고리오·58·서울 방배4동본당)씨의 발걸음은 서울 창경궁로에 자리한 이주노동자 무료진료소 라파엘클리닉(이하 라파엘)으로 향한다. 지난 2005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일이다. 2015년부터는 봉사단장을 맡고 있다. 오전 오후 각 시간별로 60~80명이나 되는 봉사자 상황을 총괄하는 일명 ‘컨트롤 타워’ 역할이다.

하루 평균 320여 명의 환자들이 찾는 이곳에서는 일반 병원에서와 같이 진료와 함께 접수, ID카드 확인, 당일 진료기록지 발행, 진료예약, 진료소 안내, 약 배부 등 다양한 업무가 이뤄진다.

진료소에 도착해 ‘라파엘클리닉’ 로고가 새겨진 빨간 조끼를 입는 순간부터 전씨는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건물 각층을 돌며 준비상황을 점검, 봉사자 교대 점검, 진행상황 확인, 층장 회의 등을 진행한다. 어느 부서에서 결원이 생길 때면 ‘땜빵’도 그의 몫이다. 마지막 환자가 약을 타갈 때까지 쉴 새 없이 진료소를 오르락내리락거린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접수 번호 순서대로 환자들을 안내하고 입장 대기시키는 것. 환자들 간 차례를 놓고 가끔 다툼이 일어나기도 해서 ‘문지기’, 즉 ‘기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접수나 약 배부 부서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정리하는 해결사 몫도 주어진다. 단기 방문 비자 소지자나 일시 체류자는 환자로 받지 않는데, 그런 판단이 애매한 경우나 약 배부 과정에서 중복 진료 연속 진료 등으로 약 투여가 남용될 수 있을 때 등이다. 언젠가 안하무인격으로 봉사자를 대하던 한 환자는 정씨가 시시비비를 가리자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 너는 해고다”라는 말을 날리기도 했다.

“좋은 기억으로 떠오르는 이들도 많습니다. 라파엘 덕분에 완쾌돼서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간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던 한 필리핀 노동자의 모습은 늘 따뜻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 사건들 속에서도 라파엘은 주일이면 자연스레 발걸음이 옮겨지는 곳이다. 최근 몇 번 자리를 비운 적도 있지만 2011년 경우 명절에도, 지인들과의 모임이 있어도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주일을 라파엘에서 지냈다.

간호사인 부인 박순화(아네스)씨도 격주로 라파엘에 나와 봉사를 한다. 원래 박씨가 먼저 라파엘과 인연을 맺고 남편을 봉사 현장으로 이끌었는데, 이제는 전씨가 더 열렬한 라파엘 사람이 됐다.

라파엘과 함께하면서부터 ‘봉사’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는 전씨. 건강이 허락하기에 사람들과 나눌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또 봉사할 대상이 있다는 면에서 ‘감사함’ 뿐이라고 했다. 그 에너지가 10여년을 한결같이 이주민들과 함께하는 동력이 됐다.

앞으로 건강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봉사의 삶을 살고 싶다는 전씨는 자원봉사를 ‘파도’에 비유했다. “봉사 현장을 맞닥뜨릴 때마다 내가 일깨워지고 나의 부족함이 깨달아지기 때문입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