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본당의 역사를 따라] 안산대리구 대학동본당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6-11-29 수정일 2016-11-30 발행일 2016-12-04 제 302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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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사랑의 공동체
경제적 여건 좋지 않던 지역 위해
어린이집·여성상담 등 활동 펼쳐
북한이탈주민 신앙생활 돕기도

대학동성당 전경.

안산대리구 대학동본당(주임 강홍묵 신부)은 안산 지역 두 번째 본당이자, 안산대리구의 중심으로서 지역 복음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본당이다.

1981년 안산 지역 최초의 본당인 와동일치의모후본당이 설립됐지만, 이 지역엔 여전히 본당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이에 와동일치의모후본당은 성당을 건립하면서, 사리공소 관할 지역에 성당 대지를 확보해놓고 있었다. 대형 공단들이 들어오면서 인구가 크게 증가하자 안산 지역이 선교의 요충지가 돼, 향후 본당 신설을 준비해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산 지역에는 1800년부터 공소공동체가 형성돼 있었고, 1920년대에는 수암면, 남면, 반월면, 군자면 등에 많은 공소가 있었기에 본당 신설에 대한 바람도 컸다.

그런데 안산 지역 두 번째 본당 설립 계획은 와동일치의모후본당이 생각한 것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본당의 성당을 완공하기도 전에 대학동성당도 함께 지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본당은 매입한 대지에 건물을 짓지 않으면 막대한 세금을 내야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서둘러 대학동의 성당 건축에 들어갔다.

안산 지역에는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신자들이 대부분이었던 터라 성당 하나를 짓기에도 힘겨운 상황이었지만, 와동과 대학동 두 곳의 성당을 동시에 짓게 된 것이다. 비록 설립은 나중이었지만, 대학동본당은 안산 지역에 설립된 첫 본당인 와동일치의모후본당과 탄생의 진통을 함께 겪은 셈이다.

마침내 1984년 2월 21일 756명의 신자로 대학동본당이 설립됐다. 하지만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사제관과 성당 지하층만을 완공한 채 공사를 중지했다가, 1988년 12월에야 지금의 성당을 완공할 수 있었다.

2014년 대학동본당 설립 30주년 바자 행사에서 신자들이 물품을 판매하고 있다.

2010년 10월 거행한 ‘새터민 세례식’. 이날 13명의 새터민이 세례 받았다.

본당은 초기에 형성된 시가지에 비교적 가까이 자리 잡은 만큼, 안산 지역 복음화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본당은 인구 증가에 발맞춰 전교에 박차를 가해 안산 지역 신자 수를 늘려나갔고, 1995년에는 상록수본당을, 2001년에는 안산성마리아본당을, 2004년에는 감골본당을 분당했다. 2006년 교구에 대리구제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성당 옆에 안산대리구청을 두고, ‘안산대리구 중심 성당’으로서의 역할도 도맡아왔다.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았던 안산 지역에 자리한 본당은 이 시대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 2002년에는 보육 복지를 위한 ‘하상어린이집’을 운영하기도 했고, 2007년부터는 가톨릭여성상담소를 설치해 고통 받는 여성들을 위해 성당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본당공동체의 행사 안에서도 가난한 이웃을 기억했다. 성체성혈대축일을 기념하며 헌혈운동을 진행하기도 하고, 본당설립 30주년에는 바자를 통해 무료급식소를 지원하기도 했다. 탈북자들을 위한 ‘새터민의 날’이나 세례식을 실시하기도 했다.

현재 2122명의 신자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본당은 안산대리구의 중심으로서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