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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희년 폐막] 자비의 희년, 무엇을 남겼나?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6-11-16 수정일 2016-11-16 발행일 2016-11-20 제 3020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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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양극화와 불평등 상황에서
교회공동체 차원의 쇄신 노력 요청

2015년 12월 8일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50주년 기념일에 시작돼 올해 11월 20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폐막되는 ‘자비의 특별 희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간을 자신의 신앙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은총의 기회로 삼았다. 한국교회 역시 희년 선포와 함께 교구와 본당 차원에서 다양한 사목 프로그램들을 수립, 모든 신자들이 ‘하느님 자비의 얼굴’이 되도록 돕는 데 힘을 실어왔다.

이에 따라, 교회 안의 모든 활동들이 ‘하느님 자비’를 염두에 두고 계획 및 실행됐고, 신자들은 ‘하느님 자비’를 일상생활 안에서 드러내고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교회 활동들이 희년 기간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는 지속성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하느님 자비’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에 그쳤다는 반성도 이어지고 있다.

‘자비의 희년’ 1년 동안 한국교회의 희년 실천 노력에 관해 살펴보고, 과연 희년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고, 폐막 후 우리가 계속해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르침 따라

‘하느님 자비’를 집중적으로 성찰하고 실천한 희년은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은총의 시간이었다. 문명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야만적 폭력이 여전히 난무하고 있는 오늘날 세상, 빈부격차와 소외가 오히려 과거보다도 더 심화된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 세계화가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계기가 되기보다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더 큰 억압과 착취가 되고 있는 현대 세계 속에서, ‘하느님 자비’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하게 요구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출에 이어 착좌미사 때부터 “하느님의 자비! 우리의 삶을 위한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의 진리입니다”라면서 자비를 강조해왔다. 제3세계, 고통받는 땅으로부터 온 프란치스코 교황 개인의 확신과 신념은 자비의 희년 선포의 직접적인 계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자비의 희년’은 새 교황의 등장으로 갑자기 튀어나온 신학적 아이디어가 아니다. 희년은 바오로 6세 교황의 언급대로 “인간에게 봉사하려는 단 하나의 목적”을 지니고, 자비를 드러내는 교회 모습을 보여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권고 「복음의 기쁨」에 자비의 희년의 본질을 온전히 담아냈으며, 칙서 「자비의 얼굴」에서 이를 더 구체화적으로 설명했다. 이러한 가르침들은 모두 미래 교회의 청사진이자, ‘선교적 쇄신’의 촉구이다.

「자비의 얼굴」 15항에서는 아주 평이하고 쉬운 말로 희년의 본질적 관심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눈을 뜨고 세상의 비참함을, 존엄을 박탈당한 우리 형제자매들의 상처를 보도록 합시다.”

지난해 12월 18일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에서 열린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자비의 희년 젊은이들을 위한 고해성사.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자비는 신앙적·신학적 과제

「자비의 얼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체험과 실천에 관한 부르심에 응답하는 방안을 개인적 차원, 교회 공동체의 내적 차원, 교회의 사회적 차원 등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눠 알기 쉽게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1년간을 돌아볼 때, 한국교회 희년의 가르침 실천은 다소간 아쉬움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신자 개개인의 이해와 인식은 상당 부분 개인적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교구와 본당에서의 관련 사목 프로그램들 역시 개인의 신앙 실천 차원이거나 소박한 자선과 봉사의 수준에 머문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가능하다. 고해성사로써 하느님 자비를 체험하고 주요한 순례지를 찾아 전대사를 받는 것은 희년의 특별한 표징이고 자비 체험의 표징이기는 하지만, 단순한 성사와 순례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인이 체험한 ‘하느님 자비’를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의 실천으로 이어 나아갈 때 비로소 “하느님처럼 자비로워져라”는 희년 정신에 대한 온전히 응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 내적 차원에서 펼치는 희년 실천은 교회 공동체가 ‘자비의 얼굴’이 되어야 할 소명이고, 이는 필연적으로 교회 제도와 구조, 사목활동 쇄신에 대한 요청으로 이어진다. 즉 「복음의 기쁨」에서 강조한 ‘선교적 쇄신’과 상통하며, ‘행정적 관료적 교회 얼굴’에서 ‘사목적 얼굴’로 교회 얼굴을 바꿔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시노드를 통해 먼저 현대 가정이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돌아보고, 이혼 후 재혼 가정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교회법적 배려를 마련한 것 등은 이러한 ‘사목적 얼굴’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사목적 쇄신의 궁극적인 지향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중산층화된 한국교회 모습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개선하는 것은, 자비를 구체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전제돼야할 사목적 과제 중 하나다.

희년의 사회적 차원은, 교회 공동체와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이 곧 세상 안에서 하느님 자비의 표지가 되어야 한다는 소명을 지칭한다. 구체적으로 자선활동, 정의평화 구현, 남북 화해와 통일, 환경과 생태 보전, 인간 생명의 존엄성 수호 등 세상을 복음화 하는 소명을 의미한다.

희년의 정신은 실제로는 폐막 이후 보다 지속적으로 구현돼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나 교회 공동체 차원 모두에서 ‘자비’는 이제 현대 세계와 교회의 핵심적인 신앙적, 신학적 과제이기에, 폐막 이후 더 깊고 넓게 그 가르침을 구현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