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 이야기] (44) J.R.R. 톨킨 (6·끝)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안식년)
입력일 2016-11-15 수정일 2017-08-29 발행일 2016-11-20 제 3020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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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영감과 통찰까지 더해져

■ 그리스도교 세계관에 대한 철학적 단상

오늘날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전 세계적으로 문화 종교와 상관없이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억 부가 넘게 팔렸다는, 유례를 찾기 힘든 인기의 이유는 직접 작품을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영화화 사례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되었듯이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구조와 독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감동을 주는 생생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문학 작품들이라면 모름지기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덕목인 좋은 서사(이야기) 구조와 매력적인 인물묘사를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지의 제왕’을 더욱 뛰어난 대작으로 꼽는 데에는, 이야기와 인물에 심오함을 더해주고 독자들에게 피상적 재미를 넘어서는 영감과 통찰을 만나게 하는 철학적인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톨킨은 물론 전문적인 학자로서의 철학자가 아니었으며, 또 그 역시 철학자로 자처하지도 않았지만, 문헌연구가이자 문학자로서 신화와 언어에 대해 탐구하는 가운데 그 심층에 있는 종교적, 철학적 사상을 연구하고 익혔고, 또한 깊고 넓은 교육과 도야를 통해 위대한 철학과 사상을 배우고 체화한 사람이기에 작품 안에는 서양 철학사의 전통에 비추어 조명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나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 아우구스티누스의 ‘결핍으로서의 악’과 같은 서양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과 개념들이 성서적, 신학적 배경과 함께 톨킨의 작품 속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톨킨이 ‘반지의 제왕’에서 여러 철학적 요소들을 현학적으로 보여주거나 잡다하게 나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세계, 가치, 초월에 대한, 넓으면서도 통합적이며 일관성 있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통합적으로 세계를 보는 관점을 ‘세계관’이라 부르는 것이지요. ‘세계관’이 하나의 문학작품에서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 우리는 영국의 작가 체스터튼이 그의 중요한 저작 「정통(오소독시)」을 시작하는 도입부에서 언급한 내용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한 작가의 참모습은 궁극적으로 그의 ‘세계관’ 곧, 표현과 묘사의 기저에 있는 철학에서 결정됩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읽으면서 우리는 잘 짜여진 이야기에 빠져들어가는 즐거움을 얻게 되고 또한, 동감과 흠모, 연민 등의 강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는 인물들을 만나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이야기의 뿌리이자 배경이 되고,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의 깊은 동인이 되는 ‘세계관’을 음미해 볼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작품이 지닌 심오한 의미에 접근하는 ‘깊이 읽기’의 차원으로 들어설 수 있게 됩니다. 또 일시적 독서의 즐거움을 넘어 인생의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한편 이러한 톨킨의 ‘세계관’에 주목하면서 잠시 ‘세계관’이라는 용어가 지닌 철학사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도 뜻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 한 장면.

■ 철학의 주제로서의 세계관

‘세계관’(Worldview)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그의 유명한 철학서 「판단력 비판」에서 사용한 독일어 개념어 ‘Weltanschauung’에서 처음 철학적 의미를 지니고 사용되었다고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독일어로 ‘세계’를 뜻하는 단어와 ‘바라보다’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가 합쳐진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요, 칸트는 이 개념을 가지고 우리가 개별적인 것을 감각적인 차원에서 지각하며 통합하는 데 있어서 그 근원적인 역할을 하는 ‘세계에 대한 직관’을 가리켰습니다. 칸트는 사실 ‘세계관’이란 개념을 독자적으로 다룰 만큼 중요한 개념으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이를 철학의 중요 개념으로 발전시킨 것은 딜타이나 쉴라이어마허 같은 낭만주의 시대 해석학적 철학을 전개한 독일 철학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많은 철학자들이 ‘세계관’ 개념을 니체의 ‘관점주의 철학’과 결부시키면서 ‘세계관’을 각 개별적 사상가들의 세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일컫는 개념으로 발전시켰지요. 또 다른 한편에서 보면 ‘세계관’은 언어의 문제와도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후 언어에 대한 이해에 있어 큰 기여를 한 독일의 빌헬름 폰 훔볼트(1767~1835)는 Weltanschauung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 ‘Weltansicht’란 단어로써 언어철학과의 연관성 속에서 ‘세계관’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언어가 단순히 하나의 도구가 아니라 각 개인과 각기 민족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관점 자체를 규정하는 심원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훔볼트의 세계관으로서 언어를 이해하는 관점은 사실 언어 문제가 서양 철학의 중심으로 부각되었던 20세기에 재평가를 받았습니다. 20세기 철학의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 유다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과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의 철학을 대하면 언어의 문제와 세계관의 문제가 현대 철학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세계관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도 이 두 명의 걸출한 철학자들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깊이 숙고했던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말년의 철학적 작업에서 언어의 실제적 사용방식과 그 언어가 사용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삶의 양식’에 대해서 끊임없이 성찰하였습니다.

그가 중시하였던 것은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는 언어 역시 이러한 총체적인 삶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물론 언어가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의식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겠지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에서의 방법론을 흔히 ‘일목요연한 조망’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하곤 합니다. 이는 철학이 관념 속에서 개념을 구축하고 종합하는 사고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실제로 세계를 보는 방식에 대한 숙고여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의 철학관을 요약한 “생각하지 마라, 오히려 바라보라!(Denk nicht, sondern schau!)”라는 문장은 이런 통찰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존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존재’에 대해서 깊이 사유하는 영역인 존재론과 형이상학에서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고, 또한 사람들에게 서양 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야를 넓혀준 인물인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으로 부르면서 편협하고 과학주의적인 관점에 집착하는 서양 근대문명의 ‘세계상’을 비판하기도 했지요.

이처럼 철학사적 개념사를 지니고 있는 ‘세계관’이라는 관점에서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재독하려 할 때, 관심을 가질 만한 이는 20세기 중반에 활약한 뛰어난 신학자이자 종교철학자이며 가톨릭 사제였던 로마노 과르디니입니다. 그는 서양의 위대한 문학과 철학을 신앙의 관점에서 만나고 대화하며 통합하는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정립하려 노력한 사람입니다. 이는 오늘을 사는 신앙인인 우리 각자에게도 큰 도전일 텐데, 톨킨의 작품은 그 좋은 모델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안식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