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평협에서 펼친 평신도 운동을 돌아보다

방준식 기자
입력일 2016-11-08 수정일 2016-11-09 발행일 2016-11-13 제 301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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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이오” “똑바로” 기억하시나요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회장 권길중, 이하 한국평협)는 지난 1968년 7월 한국교회 조직화된 평신도 선교 집합체로서 ‘한국가톨릭평신도사도직중앙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디뎠다. 한국평협은 이후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사도직 활동이념과 활동방법을 전 신자들에게 알리고 성실하고 적극적인 사도직 활동을 고취하는 데 전념해왔다. 한국평협의 평신도 운동은 우리나라 복음화에 이바지함은 물론 전 인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세계 평화를 앞당기는 초석이 됐다. 교회 내적인 발전과 함께 사회참여를 통해 평신도들이 더욱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평신도주일을 맞아 한국평협이 1990년대 이후 펼쳐온 주요 평신도 운동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성당 입구에 내건 ‘내 탓이오’ 문구.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198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평신도 활동과 관련해 교황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Christifideles laici, 1988.12.30.)을 발표한다. 교황 권고 발표로 보편교회 내에서 평신도들의 위치가 그만큼 강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한국평협은 이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평신도들이 어떤 방식으로 바람직한 사도직 활동을 펼칠 수 있을 것인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신앙선조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한국교회를 세계교회로 뻗어나갈 수 있게 하려면 평신도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1990년 9월 한국평협은 ‘내 탓이오’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민주화운동 여파로 새로운 활동상을 요구받던 한국평협은 그동안 무너졌던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서로 믿고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내 탓이오’ 운동은 ‘내 탓이오’라고 쓰여진 차량용 스티커 30만 장을 제작해 전국에 배포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의 승용차에 이 스티커를 손수 붙였고 언론에 크게 보도됨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또 1991년에는 월별로 ‘내 탓이오 실천덕목’ 구호를 설정해 각자 위치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삶의 지침을 제시했다. 개인과 가정, 직장과 사회 등 신자 개개인 삶의 현장에서 신앙 토대를 스스로 점검하고 성찰해 이 땅을 복음화시킬 수 있는 선교 열정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내 탓이오’ 운동은 스티커 배포로 시작해 이를 주제로 한 노래가 만들어지고 문예작품이 출간되는 등 세상 속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미국 캐나다 독일 등 해외에서도 열풍을 일으켰다. 이는 당시 사회 윤리와 도덕이 타락한 원인을 살피고 그 해결방안을 찾고자 했던 실천적 노력이 사회적으로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어 평협은 도덕성 회복 운동에도 박차를 가한다. 1994년 평신도주일에 발표된 ‘300만 평신도 그리스도인과 전 국민에게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통해 “땅에 떨어진 윤리와 도덕을 제자리에 바로 놓고 우리 모두 하느님 창조질서 안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자”고 역설했다. 당시 만연했던 비리와 부정부패, 생명경시 풍조, 물질적 가치만을 중요시 여기는 현상 등을 바로잡자는 것이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체제가 출범하면서 기나긴 군부독재 시대를 끝내고 국민 의식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는 역사의 요구 때문이기도 했다.

평신도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은 1996년 류덕희 회장 체제가 출범되면서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때 시작된 ‘평신도 제자리 찾기 운동’은 교회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 제자리를 찾는 것을 교회쇄신으로 보고 평신도의 실천을 독려하고 나섰다. 복음화 운동을 확산하고 평신도 위상을 높이려면 교구 평협 간 친교를 도모하고 유기적인 협조를 다져야 한다는 생각도 가미됐다.

평신도 제자리 찾기 운동에 나선 한국평협은 1997년 제2차 상임위원회를 통해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 당시로서는 매우 과감한 제안을 하기로 결의했다. 주요 내용은 본당 사목회가 자문기구 역할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의사결정 기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각 교구에 ‘평신도국’을 설치해 평신도가 교구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교구 사목평의회에도 평신도 대표가 참여하는 회의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어 평신도주일에는 강론자료 ‘이제 제자리를 찾아 나섭시다’를 통해 350만 평신도가 회개와 쇄신으로 제자리 찾기 운동에 나설 것을 호소했다.

한편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한국평협은 1998년 1월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에서 열린 ‘경제 살리기 특별 기도회’를 시작으로 경제 살리기 운동에 적극 나섰다. 당시 발표된 평신도 선언문은 “구한말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회장을 비롯한 평신도를 중심으로 국채보상운동을 펼쳤던 것처럼 다시 한 번 평신도들이 나서 경제난국을 극복하자”고 호소했다.

각 본당별로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 운동’을 생활화해 모든 국민과 함께 아픔을 극복하자고 나섰다. 또 ‘실직자를 위한 사랑나누기 운동’을 통해 성금을 마련하고 실직자들에게 매월 일정금액을 지원하기도 했다.

또 경제 살리기 범국민운동단체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98년 금모으기 범국민운동 선언식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류덕희 회장이 각각 고문과 공동대표로 참여했다. 오늘날 국가적 위기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과 함께하는 한국평협의 현재 모습과도 비견되는 것이다.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한국평협은 새로운 선교시대를 열어나가는 복음화 운동에 전력을 다했다. 1999년 서울 올림픽공원 체육관에서 열린 ‘대희년맞이 평신도대회’에는 전국 15개 교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3500여 명이 참석했다. 당시 류덕희 회장은 ‘평신도선언’을 통해 “현대 세계의 추세에 맞춰 그리스도께서 실천하신 생명문화를 뿌리내리고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자격이 있는 평신도들이 교회운영과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1990년 9월 24일 김수환 추기경이 ‘내 탓이오’ 스티커를 승용차 뒷 유리에 붙이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 화보집

20001년에는 또 한 번 도덕성 회복 운동에 나선다.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 대항한 ‘똑바로 운동’이 그것이다. 한국평협이 선포식을 통해 밝힌 내용에는 당시 사회 일그러진 현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이 담겨 있다. “우리 사회는 정치인들의 파당적인 정쟁과 지역적 집단적 이기주의, 빈부격차, 황금만능주의, 생태계 파괴로 가치관 전도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결코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똑바로 운동의 구체적인 실천 지침으로는 ▲똑바른 생각과 행동 ▲나부터 시작하기 ▲이웃과 함께하기 ▲작은 일부터 시작하기 ▲지속적으로 실시하기 ▲본당과 단체에서 구체적인 실천사항 정하기 등을 제시했다. 이는 우리 사회 도덕성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평신도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2000년대는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풍토를 만들기 위해 한국평협이 적극 나선 때이기도 하다. 한국평협은 2004년 3월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로 약칭 ‘아가운동’을 전개한다. 이는 평신도들이 가정과 사회 위기를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었다.

아가운동은 사회 기초 단위이며 사람이 태어나서 최초로 만나는 공동체인 가정이 건전해야 사회도 건전해진다는 생각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평협은 ▲매일 가정기도 바치기 ▲매일 가족이 함께 성경 읽고 대화하기 ▲가정 성화를 위해 교회 사도직 단체 협력 강화 등 구체적인 실천 항목을 제시했다.

서울평협은 이에 맞춰 ‘아가운동’ 스티커를 전국 교구 평협에 배포하고 사진 공모전을 실시하기도 했다. 한국평협은 아가운동의 구체적인 실천을 위해 이웃종교와 시민단체 정부기관과도 손을 잡았다. 소년소녀가장이나 독거노인 등을 대상으로 ‘아름다운 가정 결연 운동’을 펼치는 등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동참할 수 있는 캠페인을 전개해나갔다.

2015년 4월 8일 명동성당 파밀리아채플에서 ‘답게 살겠습니다’ 시작하는 날 행사를 마련한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지난해 시작된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권길중 회장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한국사회와 교회 현실을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상임위원회에 ‘새로워질 수 있는 캠페인’을 시작하자고 제안했고 그 결과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으로 이어졌다. 자신이 속한 자리에서 정체성을 제대로 찾고 ‘답게’ 살아감으로써 갈등이 팽배한 사회를 평화롭게 바꿔나가는 방안을 찾아보는 실천운동이다.

지난해 2월에는 7대 종단 협의체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에서 범종교인이 함께하는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 선포식이 열렸다. 자기성찰과 참회 실천이라는 가치는 모든 종교인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이라는 점에 종교인들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현재 각 종단들은 구체적인 운동 전개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에는 각 교구 평협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서울 평협은 ▲자기성찰 ‘나답게 나를 사랑하고 감사하며 사는가’ ▲가정공동체 ‘성가정을 본받아 남편과 아내는 신뢰하고 존경하는가’ ▲교회공동체 ‘하느님 자녀답게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사는가’ ▲사회공동체 ‘그리스도인답게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가’ 등 12가지 실천계획을 세웠다. 앞으로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이 평신도 사도직 실천을 더욱 구체화하고 평신도들이 이 땅의 새로운 복음화 주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등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방준식 기자 bj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