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이야기] (41) J.R.R. 톨킨 (3)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안식년)
입력일 2016-10-25 수정일 2016-10-26 발행일 2016-10-30 제 301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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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유혹에 흔들려도 결국 올바른 길로 돌아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

지상의 요정 왕들에겐 세 개의 반지

돌집의 난쟁이 왕들에겐 일곱 개의 반지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들에겐 아홉 개의 반지

어둠의 권좌에 앉은 암흑의 군주에겐 절대반지

어둠만 살아 숨쉬는 모르도르에서.

모든 반지를 지배하고, 모든 반지를 발견하는 것은 절대반지,

모든 반지를 불러 모아 암흑에 가두는 것은 절대반지

어둠만 숨쉬는 모르도르에서.

「반지의 제왕」 시작에 붙여

(이하 「반지의 제왕」 인용은 다음의 번역을 따릅니다:

J.R.R. 톨킨, 「반지의 제왕」 양장판 전집 전 3권 (「반지원정대」, 「두개의 탑」, 「왕의 귀환」), 김번, 김보원, 이미애 옮김,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2010.)

■ ‘반지원정대’ 의미와 ‘절대반지’의 본질

‘반지의 제왕’이라는 제목은 원제를 직역에 가깝게 번역한 것이긴 하지만, 우리말 역자가 해제에서 밝히고 있듯 좀 설명이 필요한 제목입니다. 이 작품의 특별한 점은 제목을 처음 대한 사람이 상상하게 되듯, 주인공이 반지를 찾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 ‘반지의 제왕’이라 불릴만한 영웅으로 탄생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반대로 여러 다양한 주인공들이 모든 반지를 지배하는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헌신하고 투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시작하는 제사로써 선택한 시를 읽어보면 원래 반지가 여러 개라는 것을 자주 간과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어 원제 ‘Lord of the Rings’에서도 ‘반지들’이라는 복수형이 명백히 나타나 있죠. 반지들은 필멸의 운명을 지닌 인간들에게, 또한 난쟁이 족들에게, 그리고 요정들에게 모두 주어져 있고, 적절히 사용되었을 경우 유익을 주는 선물이었다고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반지들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이른바 ‘절대반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 반지의 힘에 의해서 선익을 줄 수 있는 반지들은 선의 추구가 아니라 권력의 사악한 의도에 사용되는 무기로 타락될 수 있습니다. 절대반지는 애당초 악의 세력인 사우론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결코 선한 의도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악한 의도와 악의 손길에 의해 만들어진 절대반지가 정의로운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절대반지의 마력에 유혹되었다는 징표입니다. 강하고 용맹하며 지혜로운 ‘영웅’들에게 이런 유혹에 빠질 위험은 더 크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절대반지’라는 주제는 필연적으로 선과 악의 타협과 양보가 없는 싸움, 전쟁을 의미합니다. 개인들은 무시무시한 위협과 폭력으로 다가오는 악과 대면하고 용기와 지혜를 다하여 싸워야 할 뿐 아니라, 달콤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유혹하는 악의 시험을 이겨내야 합니다. 절대반지를 파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가진 엄청난 힘을 이용해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는 야심만만하고 용맹한 섭정왕자 보로미르에게 요정왕 엘론드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안, 안 되오. 우리는 지배의 반지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건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사실이지요. 그것은 사우론이 만든 것이고 따라서 그의 것이며 사악한 것입니다. 보로미르, 반지의 힘은 너무 위력적이어서 아무나 함부로 휘두를 수 없습니다. 이미 스스로 위대한 힘을 소유한 자만이 반지를 사용할 수 있을 뿐이지요. 그러나 그런 이들조차 그 때문에 더욱 치명적인 화를 자초할 수 있습니다. 반지에 대한 욕망, 그것이 바로 그의 마음을 타락시키는 겁니다. 사루만을 보시오. 만일 현자들 중 한 명이 반지를 가지고, 또 그의 지혜를 이용하여 모르도르의 군주를 무찌를 수 있다면 그는 곧 사우론의 권좌에 스스로 오를 것이며, 따라서 또 하나의 암흑의 군주가 탄생하는 겁니다. 이것이 반지가 파괴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이 세상에 반지가 존재하는 한 그것은 현자들에게조차 위협이 됩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악한 이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우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반지를 숨기기 위해 그것을 만지는 것조차 두렵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휘두르기 위해 만지는 일은 더욱 원치 않습니다.”

이 대화가 일어나는 장소는 요정왕 엘론드의 궁전입니다. 점증하는 사우론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의 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절대반지’를 파괴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생각한 요정왕 엘론드와 선한 마법사 간달프는 절대반지를 악의 심장부 모르도르에 있는 거대한 산의 불타오르는 화산 속으로 던져 영원히 사라지게 할 ‘반지원정대’를 꾸리기 위해 ‘반지의 제왕’ 무대인 ‘가운데 땅’에 사는 용사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합니다. 이 ‘엘론드의 회의’는 ‘반지의 제왕’ 1부인 「반지원정대」의 2권 2장 전체를 차지하며, ‘반지의 제왕’이 신화적 구조 속에서도 작품 내내 확고하게 제시하고 있는 윤리적 관점을 잘 전해주고 있습니다.

‘반지의 세계’에서 악의 중심인 사우론은 선과 악 사이의 모호함이나 경계선에 있지 않으며, 사우론과 절대반지의 유혹에 빠진, 한때 명성 높았던 사악한 마법사 사루만 역시 끝까지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반면 ‘반지원정대’ 편에 섰던 이들은 비록 때때로 유혹에 흔들리는 상황을 직면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올바른 길로 돌아오고 선을 위해 헌신하고, 동료애로 희생하는 행위를 선택합니다. 이러한 명확한 선악의 대비 때문에 언뜻 보면 ‘반지의 전쟁’의 세계관이 순진한 선악 이분법에 머물고 있는 듯 보입니다만, 우리는 다른 관점에서 톨킨을 변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톨킨은 세계 안에서 창궐하는 선과 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대신, 우리가 악의 사람들과 세상을 황폐하게 만드는 실제적 위협이라는 것을 직시하기 바랐습니다. 그러한 악과 손잡아선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 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악의 실재성은 참된 존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 유혹에 사로잡혀 다른 이들을 지배하는 힘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통해 점점 증강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윤리학은 근본적으로 권력 비판, 욕망에 대한 비판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반지원정대의 여정은 근본적으로 비움의 길로 보입니다.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안식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