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국 가톨릭문화의 거장들] 반예문 신부 (하)

함제도 신부(Gerard E. Hammond, 메리놀회 한국지부장)rn1960년 한국으로
입력일 2016-10-25 수정일 2016-10-26 발행일 2016-10-30 제 3017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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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 미디어 교육 주도하며 복음 선포에 매스컴 활용
1972년 주교단 위한 매스컴 워크숍 마련
‘5분 명상’ 기획해 지상파 방송하기도
대중가요 해외 알려 가요협회 공로상 받아 

1997년 반예문 신부가 제31회 가수의 날을 맞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위원장 김광진씨로부터 ‘특별공로상’을 받고 인사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미디어를 통한 복음 선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한 반예문 신부는 1971년부터 주■ 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로서 13년간 헌신했었다.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는 1967년에 매스컴 분야에서의 가톨릭 활동을 증진하는 등의 목적으로 설립됐다. 미디어를 활용한 사목 현황과 전망을 연구하고, 미디어 교육을 제공하고, 가톨릭 정신에 입각한 다양한 대중매체 콘텐츠를 발굴하는 구심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반 신부는 당시만 해도 여전히 기틀과 활동 인프라 등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던 매스컴위원회의 총무를 자발적으로 맡아, 인력도 예산도 인식도 부족한 가톨릭 매스컴 관련 활동의 디딤돌을 놓는 데 그 누구보다 열심히 힘썼다. 반 신부는 매스컴 관련 분야에서 역량을 펼칠 그리스도인 인재 양성과 기본적인 미디어 교육의 중요성을 늘 강조해왔지만, 당시엔 주교회의 지원금만으로는 위원회를 운영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메리놀회의 지원과 개인 기금 등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곤 했다. 게다가 해마다 영세자 수나 첫 영성체자 수 등을 헤아릴 수 있는 본당 사목 등에 비해 매스컴 관련 사목 활동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왜 하는 것인지 이해를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반 신부는 “어둠을 탓하기보다 한 자루의 촛불을 켜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으로, 먼저 자발적으로 나서 미디어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는 데 꾸준히 힘을 실었다.

반 신부는 신자들도 대부분 주일미사 강론을 듣는 것 정도 외에는 일반 신문, 잡지, TV 등의 매체를 통해 세속적이고 반복음적인 가치를 주장하는 메시지를 매우 많이 듣는다고 지적하고 미디어 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을 늘 해왔었다. 하지만 복음 선교의 일차적 직무를 지고 있는 사제 등 교회 지도자들조차 미디어 관련 소양이 부족한 현실을 보고, 매스 미디어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과 활용 방안을 가르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에도 힘썼다.

1972년 한국 주교단을 위해 서강대에서 매스컴 워크숍을 연 것은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후 교구 사제 등을 중심으로 해마다 워크숍을 마련한 결과, 글을 쓰거나 지방 방송국 프로그램 등에 참가하는 사제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가톨릭 저널리스트 클럽’(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등의 회원들을 위한 피정 등도 다양하게 기획하고 지원했다. 아울러 시골마을에 울려 퍼지는 스피커 소리가 개개인의 삶과 생각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경험했던 반 신부는, 당시 대표적인 지상파 방송을 통해 ‘5분 명상 프로그램’도 기획, 방송을 내보냈다. 교회의 이름으로 청취자들에게 수준 높은 5분 명상 자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 가톨릭가요대상 제정해 대중가요 더욱 격려

반예문 신부가 매스컴위원회 총무로 활동하면서 헌신, 봉사한 또 다른 부분은 한국 대중가요의 가치를 지키고 활성화하는 것이었다. 특히 반예문 신부는 ‘가톨릭가요대상’ 제정에 발 벗고 나섰다.

1970년대는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소하고 무관한 이유로 수많은 가요들이 금지곡으로 지정되던 암울한 유신독재를 겪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가톨릭가요대상’은 매스컴위원회가 제정했지만, 교회가 좋은 가요를 만드는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상이라고 알려지면서, 일반인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인기를 얻었던 상이었다. 또 당시 활동에 제약을 많이 받았던 많은 가수들은 반 신부의 그늘로 찾아들었다.

‘가톨릭가요대상’은 반예문 신부의 누이동생이 한국을 방문해 매스컴 발전을 위해 써 달라고 매스컴위에 기금을 전달하면서 구체적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반 신부는 당시 ‘가톨릭가요대상’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도 “일반 대중, 특히 젊은이들에게 가요가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에 좋은 노래를 만들어 주십사 하는 의미로 이 상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또 매스컴위원회가 선정한 노래가 다른 지상파 방송국에서 뽑은 노래보다 더 좋은 작품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더 좋은 노래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는 염원에서 만든 상이라고 덧붙였다.

“현대 가요는 우리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교회는 대중음악에 깊은 관심을 갖고 건전한 음악으로 육성시킬 책임을 통감한다. 가요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참다운 가치관을 심어 주고 있는 창작자들을 격려함으로써 보다 나은 세상을 건설하는 데 이바지하고자 이 상을 제정한다.”

1981년 6월 20일, 이러한 목적을 기치로 내세우고 드디어 ‘가톨릭가요대상’이 제정됐다. 이듬해 열린 ‘가톨릭가요대상’ 제1회 시상식에서는 ‘가나다라’를 작사한 송창식씨와 ‘옛 시인의 노래’를 작곡한 이현섭씨가 이 상을 받았다. ‘가톨릭가요대상’은 한 해 동안 대중들의 인기를 얻은 노래 중에서 가사와 음률이 아름답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메시지로 전해준 곡으로 선정했다.

김수환 추기경도 첫 회 시상식에서 가사와 곡이 우리 사회를 보다 풍요롭게 해주길 기원한다면서 삭막한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노래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반예문 신부는 한국의 대중가요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활성화하는 데 힘이 되어 줬을 뿐 아니라, 좋은 곡을 영어로 번역해 외국에 널리 알리는 등의 활동을 한 공로로 1997년 한국 대중가요협회로부터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반예문’. 존경하는 동료 신부의 성과 어느 주교가 레이몬드라는 본명에서 힌트를 얻어 지어 준 이름이다. 반 신부는 2000년까지 살게 된다면 처음 만났던 이들이 모두 어른이 된다면서, 그들 모두가 씩씩하고 훌륭하게 자란 모습을 보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살았었다. 이후 2004년 사제서품 금경축을 맞아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신자들과 함께 환하게 웃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금경축을 맞아 반예문 신부가 밝혔던 소감은 긴 여운을 남긴다.

“한국에서 생활한 시간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을 상을 다 받은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함제도 신부(Gerard E. Hammond, 메리놀회 한국지부장)rn1960년 한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