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본당의 역사를 따라] 성남대리구 성남동본당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6-10-18 수정일 2016-10-19 발행일 2016-10-23 제 3016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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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에 나눔 실천 먼저… 무료급식소·야학 도와
수진동본당서 1982년 분가
교구 최초 장애아 주일학교 열어
청소년사목, 지역에서 가장 활발

성남동성당 전경.

성남대리구 성남동본당(주임 박한현 신부)은 성남 지역의 흩어진 신자들을 한데 모으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해온 본당이다.

1970년대 말 성남 지역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당시 성남 지역에 자리하던 수진동·단대동·상대원 본당만으로는 신자들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수진동본당은 1981년 본당 분리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이미 교구가 마련한 본당부지가 성남동과 신흥동에 있었지만, 신흥동의 경우 건축제한으로 성당을 신축할 수 없었다. 본당은 성남동본당을 분리하기로 결정하고 성남동본당추진위원회를 구성, 본당 설립 준비를 진행했다.

1982년 2월 8일부로 본당이 설립됐다. 초대 본당신부로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옥슬리(요한) 신부가 부임했다.

설립 당시 본당 신자는 2014명으로 신설 본당치고는 많은 신자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 신자의 약 50%가 냉담하거나 현재 소재를 알 수 없는 신자들이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성당에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본당은 먼저 신자들을 모으는 일에 힘을 쏟았다.

그 첫 단추는 소공동체의 활성화였다. 반기도회를 운영하면서 각 지역의 신자들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을 만들었고, 본당신부가 소유한 환등기로 교회 관련 영화를 상영해 신자들을 모으기도 했다. 또 레지오마리애 쁘레시디움을 창단하고, 성모회, 성가대, 연령회 등의 신심·사도직 단체들을 구성해 활동을 독려했다.

성당 부지가 마련되기는 했지만, 성당을 지을 여력은 없어 1개월간 수진동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다 전세로 구한 사제관을 임시성당으로도 사용했다. 비좁은 사제관 곳곳에서 신자들은 서서 미사에 참례했고, 비가 오는 날엔 우산을 쓰고 미사를 봉헌하기도 했다.

성남동성당 청년 도보성지순례.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성남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했던 만큼, 본당의 새 성당 건축은 요원하기만 했다. 이에 성남 지역 내 본당들이 함께 성금을 모았고, 이 돈에 본당의 기금을 더해 교육관과 수녀원을 지었다. 우선 교육관 한 편을 성당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꾸몄다. 이후 바자, 폐품수집, 운영비 절약, 세대별 청약 등을 통해 기금을 모은 노력으로 본당은 1991년에서야 성당을 완공할 수 있었다. 본당이 설립되고 10년 만의 일이었다.

본당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성당 신축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가난한 이들의 편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데 늘 솔선수범해왔다. 노숙인 무료급식소인 안나의 집, 수화교실, 야학 등에 관심을 가지고 도와왔고, 성빈첸시오아바오로회를 통해 바오로장학회를 운영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교구에서 처음으로 장애아주일학교를 설립해 장애아들이 신앙교육을 받고 교회 안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왔다.

2010년에는 ‘청소년활성화본당’으로 선정돼 청소년사목에도 박차를 가하는 한편, 지역에 날로 늘어나는 노인층을 위한 사목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본당은 구체적으로 ‘회갑·칠순·팔순미사’를 해마다 실시하고 있으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한 차량운행도 실시하고도 있다.

올해 열린 회갑·고희·팔순 축하미사.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