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접목한 대중문화… 매스컴 활용해 알린 사제 대중가요 영어로 번역 음반 내 본당 사목하며 매스컴 중요성 인식
반 신부는 이듬해 한국에 들어와 충주 아현(현 교현동)본당 보좌, 보은·청주 북문로(현 서운동)·청주 내덕동본당 주임으로 사목을 했다. 동시에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과 장애인들을 위한 재활시설 등의 운영에도 헌신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자기 나라가 아닌 외국에 가서 사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다. 걱정거리 중에는 그 나라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반예문 신부도 처음엔 그런 마음을 안고 한국에 들어왔지만, 청주교구에서 사목을 하면서 신자들이 ‘우리 신부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공동체 안에 자신을 받아들였다는 생각에 더욱 기뻐했다고 했다. 가끔 말도 잘 못하고 풍속 등도 모르는 게 많았지만 신자들은 그 자체로 인정해주고 따뜻하게 감싸 안아줬다는 것이다. 특히 반 신부는 청주교구에서 사목활동을 하면서 당시 라디오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유심히 살폈다. 전깃불조차 없던 마을 전체에 동네 스피커를 통해 들을 수 있는 음악이나 정보 등은 주민들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반 신부는 라디오는 홍보, 계몽, 선도 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매스컴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하게 됐다. 그래서 반 신부는 당시 지부장 사제와 의논해 본당 사목을 그만두고 1971년 초부터 서울에 와서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아울러 반 신부는 외국의 매스컴 활동 관계자들과도 활발히 교류하면서, 본인부터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해야겠다는 필요성을 절감하고 1975~1977에는 미국으로 유학해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도 받았다. 보다 전문적인 역량을 갖추고 구체적인 활동에 나서기 위한 노력의 하나였다.
함제도 신부(메리놀회 한국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