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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의 달 특집] ‘선교택시’ 운행하는 대구 운전기사사도회 박의신씨

박경희 기자
입력일 2016-10-04 수정일 2016-10-05 발행일 2016-10-09 제 301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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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이 타면 성호를 긋고 출발합니다”

‘선교택시’를 운행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박의신씨. 잠시 신호대기를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선교택시’. 말 그대로 선교를 하는 택시다. 이 택시를 모는 주인공은 대구 운전기사사도회 박의신(빈첸시오·65·대구 이곡본당)씨다. 40년 가까운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며 지난해 5월 ‘선교택시’ ‘행복택시’란 목표로 운행을 시작했다. 승객 한명 한명 예수님을 대하듯 모시며 기도한다는 그의 택시에 올랐다. 뒷자리 한 켠에 놓인 물품들이 예사롭지 않다. 2시간가량 동행하며 삶과 신앙이야기를 들었다.

■ 복음의 씨앗 뿌리는 작은 텃밭

“처음에는 가족 모두가 반대했습니다. 계속 설득한 끝에 형제자매, 조카들까지 후원해줘 택시를 장만하게 됐죠.”

그렇게 제2의 인생은 시작됐다. 그의 택시는 안방과 같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물 한잔 대접하듯 승객들을 위한 물과 간식이 비치돼 있다. 아침 거르고 타는 직장인들을 위한 건빵, 사탕, 껌과 같은 간식에 구급약품, 손수건, 비옷, 우산까지. 승객 편의를 위한 것들이 마련돼 있다.

선교택시답게 무엇보다 시선을 잡는 것은 성경과 묵주, 선교책자, 매일미사 책, 가톨릭신문, 교구 주보와 같은 교회 간행물 꾸러미다.

“승객 대부분 마음이 바쁜 이들이라서 선교책자 등을 눈여겨보지는 않지만 간혹 천주교에서 이런 것을 만들어 내냐면서 묻기도 해요. 얼핏 보기만 해도 복음의 씨앗은 뿌려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의신씨 차 뒷자석에 놓여있는 성경, 주보 등 선교 안내서.

■ 승객이 타면 성호부터 긋고

낮 시간대라 그런지 손님이 거의 없었다. 동승한 지 30분 지났을까,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탔다. 학생이 타고 출발하기 전, 박씨가 성호를 그었다.

“공부하느라 힘들 텐데 간식 좀 드세요. 저는 택시 실습생입니다. 더 가까운 길이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해주세요.”

“사거리에서 계속 직진하시면 돼요.”

“친절한 안내 고맙습니다.”

뒷자리에 앉은 학생과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전직 교사로서 연륜이 묻어났다. 그런데, 아차! 택시미터를 누르지 않았다. “학생, 지금부터 나오는 요금만 받을게요.”

그리고 목적지에 다다르자 ‘오늘도 좋은 하루되라’는 인사를 하며 명함을 건넸다.

승객이 내린 후 명함을 건네는 이유를 물었다. 간혹 물건을 두고 내려 연락이 올 수도 있고, 가톨릭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란다.

또 성호를 긋는 것을 보고 승객들의 반응은 어떤지 물었다. “개신교 신자들 중에서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묵주를 보면서 천주교는 마리아교 아니냐며 따지기도 하죠. 그럴 때는 교리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공경한다고 말해줍니다.”

■ 목적지를 찾아가듯 늘 배움의 길 찾아

개신교 신자들이나 신앙을 갖지 않은 이들에게 이야기하려면 교리에 대해서 많이 알아야 할 텐데…. 대화를 나누다보니 그런 의문들이 풀렸다.

2006년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원에서 평신도 석사과정 1기생으로 졸업했다. 현재는 육군 제2작전사령부 무열대성당에서 군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교리공부뿐 아니라 승객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상담교육도 받고 있다.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 상담을 맡아 전문상담교사 자격증이 있지만, 신앙 안에서 보다 깊이 있는 나눔을 위해 올 봄부터 교구 소람상담소에서 기초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승객들과 세상 이야기를 하다보면 하루가 언제 지나간 줄 모르죠. 요즘 관심 가질 만한 주제로 화두를 던지는데요, ‘지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런 것들 말이죠. 가급적 승객이 말을 많이 하도록 해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신앙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흘러가죠.”

승객들에게 나눠주는 명함.

건빵, 사탕과 같은 무료간식.

■ 거리의 사도 바오로를 꿈꾸며 출발~

‘가톨릭 호출’이라고 큼직이 박힌 글자. 스스로가 선교의 표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승객 한분 한분을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모시듯 기쁜 마음으로 운전하다 보니 힘든 줄도 모르겠습니다. 스키 타듯 곳곳을 다니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더라고요.”

좁은 차 안에서 남녀노소, 사회적 지위를 떠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만난다. 그들을 통해서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많은 은총을 받고 있는지…. 고통받는 이들을 보면서 하루 밥 세 끼 먹는 것도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늘 감사합니다.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이 시간도요.”

언제까지 택시를 몰지 물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거리의 사도 바오로가 되고 싶습니다. ‘주님의 뜻은 어디 있을까’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 묵상하면서….”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며 선교택시가 잘 운행되도록 기도할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박경희 기자 jul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