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국악성가 하늘나라] '국악성가진흥회' 사무실

강수근 신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수도회 한국관구장)rn1992년 사제로 서품됐다. 미국
입력일 2016-10-04 수정일 2016-10-05 발행일 2016-10-09 제 3014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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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 정성 모아 사무실 마련

‘국악성가진흥회’ 사무실 축복식 참석자들.

국악성가진흥회 임원진들의 열의는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특히 회장님께서 아주 추진력이 강한 분이셨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사무실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저는 사무실이 필요하긴 하지만 아직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마침 부회장님이 자신이 관리하는 경기도 고양시 원당의 종친회 사무실이 비게 되니까 저렴한 비용으로 쓸 수 있다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광주에 있는 형편이고 또 원당은 서울에서 좀 떨어져 있고 해서 망설였지요. 그때 회장님이 강력하게 밀어붙이셨어요. 일단 값이 싸니까 여기다 열고 한 1~2년 준비해서 서울로 옮기면 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자신이 보증금의 반을 쾌척하시겠다고 자청하셨습니다. 그래서 축제 때 남은 비용을 합쳐 보증금을 내고 사무실을 열게 된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임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바닥을 다시 깔고, 사무실 집기며 가구도 들이고…. 십시일반으로 모두들 정성을 모아 사무실을 꾸몄지요. 참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무실 준비를 마치고 사무실 축복식을 하려고 그 지역 본당 신부님과 의정부교구 가톨릭국악합창단 지도 를 맡고 계시던 김우성 선교사목국장 신부님을 초대했더니 펄쩍 뛰시는 거예요.

이런 일은 수도회의 교구 진출과 관련되기 때문에 먼저 교구장님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어요. 아차 싶었지요. 그래서 부랴부랴 관구장님께 상의를 드려 함께 주교님을 찾아뵈었습니다. 다행히 당시 의정부교구장이셨던 이한택 주교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순조롭게 허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정식 계약을 하려면 절차가 복잡하니까 단순하게 사무실 개설 허락만 정식 문서로 주겠노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2009년 11월 원당에 ‘국악성가진흥회’ 사무실을 차리게 됐습니다.

사무실의 개설은 제 거취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처음 김희중 주교(당시 광주대교구 총대리)님의 초대를 받아 광주에 갈 때에는 교구 성음악 감독이나 이에 상응하는 교구 내의 어떤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당시 주교님은 한소리합창단 지도신부 책임만 주셨을 뿐, 조금 기다려 달라는 말씀만 하셨지요. 그러던 차에 신학교에서 강의 부탁이 들어와 2009년 2학기에 부제반 전례음악 실습을 강의하면서 전체 학생들과 신학교 합창단 성가 지도를 하게 됐습니다.

또한 이듬해부터 1학년 전례음악 수업도 맡기로 돼 있었지요. 그런데 저는 수도자로서 원당에 사무실을 열어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마냥 놀리고 있는 상황이 양심상 참 힘들었습니다. 사무실 임대료와 관리비로 매달 60만 원 정도가 꼬박꼬박 나가는데, 이것은 바로 후원자들이 만 원씩, 오천 원씩 매달 보내주는 귀한 돈이었거든요. 관구장님께 이런 어려움을 말씀드리자 관구장님은 광주대교구 주교님께 허락을 받으면 다시 서울 돈암동으로 옮겨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어렵게 주교님을 찾아뵙고 이런 사정을 말씀 드리자 주교님께서는 “광주에서 앞으로 할 일이 많은데” 하고 많이 아쉬워 하시면서도 “그래, 강 신부. 큰 물에 가서 놀아야지”라며 어렵게 허락을 주셨습니다. 신학교에도 많이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이 사정을 말씀드리고, 2010년 2월 다시 돈암동으로 발령을 받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사무실을 활용할 방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강수근 신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수도회 한국관구장)rn1992년 사제로 서품됐다.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