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국악성가 하늘나라] ‘가톨릭국악성가진흥회’ 결성

강수근 신부(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수도회 한국관구장)rn1992년 사제로 서품됐다. 미국
입력일 2016-09-20 수정일 2016-09-21 발행일 2016-09-25 제 3012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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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성가 행사 진행 추진력 얻어

2008년 12월 28일 로마에서 귀국하면서 2009년부터 수도회의 배려로 국악성가 사도직 전담으로 배치를 받아 본격적인 국악성가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됐으니 참 좋았겠다 싶지만 사실 저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사무실도, 기금도, 도와줄 직원도 없이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침 김희중 주교님(당시 광주대교구 총대리)이 저를 광주대교구로 초대해주셔서 관구장님 허락을 받아 수도회 광주 공동체로 배치되면서 한소리합창단 지도를 맡게 됐습니다. 광주가톨릭대학교 부제반 전례음악실습 과목이 신설돼 신학교 출강도 하게 됐습니다. ‘비빌 언덕’이 생긴 것이지요. 또한 당시에는 일산(가톨릭국악합창단)과 수원(한울림합창단)에 이미 새로운 국악성가 합창단이 활동하고 있어서 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매달 서울과 광주를 오르내리게 됐습니다. 2주는 광주에서, 2주는 수원과 서울에서 지내는 식이었지요.

특히 2009년 6월 27일 서울 왕십리성당에서 있을 제3회 ‘국악성가축제’를 준비하면서부터는 광주보다 서울지역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됐습니다. 그동안 제가 없는 상태에서 1회, 2회 축제를 치렀는데 드디어 3회 축제를 저와 함께하게 되자 모두들 기대가 아주 컸습니다. 덕분에 합창단들이 부를 성가의 작곡과 편곡, 합창 지도, 악기 편곡, 관현악단 지도, 준비회의 주재, 후원금 모금 등 제반 사항을 모두 제가 떠맡아야 했습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3회 축제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어진 축제 평가회에서 국악성가 행사의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인터넷 카페나 합창단 조직뿐만 아니라 행사의 전반적인 내용을 기획하고 집행할 별도 조직이 필요함을 모두가 공감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조직의 구성을 위해 그해 8월 16~18일에 그동안 합창단과 인터넷 카페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해오시던 분들과 축제를 통해 새로이 알게 된 분들을 초대해 강원도 양양 조산리 수도원에서 연수회를 열었습니다. 모인 분들에게 그간의 국악성가 역사와 배경을 자세히 설명드리고 국악성가는 바로 우리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세계교회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요 누군가는 꼭 이뤄내야만 하는 하느님의 뜻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는 솔직하게 현재 상황을 말씀드렸지요. 이제 비로소 수도회로부터 국악성가 사도직을 전담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으나 저 혼자서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으니 좀 도와주시라고요. 그리고 이 국악성가 사도직이 제대로 꽃을 피우려면 이 일을 소명으로 알고 함께 투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 꼭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참여한 모든 분들이 기꺼이 함께하겠노라고 뜻을 모아주셨고 그렇게 해서 가칭 ‘가톨릭국악성가진흥회’의 초기 임원진이 그 자리에서 구성됐습니다.

일단 회장과 부회장, 사무국장과 총무, 후원회장과 각 분과장이 선임됐고 나머지 임원들은 차후 보충이 돼 모두 30명이 넘는 막강한 임원진이 갖춰졌습니다. 2009년 12월 5일 상지피정의집에서 열린 창립총회를 통해 ‘가톨릭국악성가진흥회’가 정식으로 출범하게 됐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지요. 이분들의 적극적인 활동과 도움으로 국악성가 운동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강수근 신부(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수도회 한국관구장)rn1992년 사제로 서품됐다.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