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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500년간 지켜온 신앙… 더디지만 성장 중인 ‘미얀마교회’

김승월(프란치스코·시그니스 아시아 이사)
입력일 2016-09-06 수정일 2016-09-07 발행일 2016-09-11 제 3011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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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 3000여 명 중 신자는 110여 명
레지오마리애 중심으로 봉사 펼치며
열악한 환경에 놓인 현지 아이들 도와

시그니스 아시아(아시아 가톨릭커뮤니케이션 협회) 김승월(프란치스코) 이사가 지난 8월 21일부터 27일까지 미얀마 양곤에서 열린 시그니스 아시아 총회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김 이사의 눈에 비친 미얀마교회의 오늘을 전함으로써 형제적 나눔의 징검다리를 마련한다.

■ ‘신앙의 나라’ 미얀마교회를 가다

미얀마는 불교 국가다. 전체 인구 5700여만 명 중 87%가 불교 신자. 대표 불교유적지 천년고도 바간에는 3000여 개 사원과 파고다가 숲을 이루고,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는 금빛 찬란함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뿌리 깊은 불교 신앙의 나라 미얀마에서 가톨릭 신자는 1%.

미얀마교회는 16세기 초 포르투갈을 통해 소개됐다. 1850년경부터 본격적인 전교활동이 이루어졌다. 현재 양곤대교구를 비롯해서 16개 교구가 있다. 사제는 750여 명, 수녀와 수사는 2500여 명. 지난 2014년 미얀마교회는 500주년을 기념했다.

미얀마에서 가톨릭을 전하기란 쉽지 않다. 1962년부터 2011년까지 군부 독재정권은 교회 부속학교를 모두 국유화하고 많은 외국인 성직자들을 추방했다. 지난해 새로 생긴 결혼법으로는, 불교 신자와 결혼하려면 불교 신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미얀마교회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가톨릭은 미얀마에서 토착문화와 불교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미얀마 사원에는 불상을 수십, 수백 개씩 모신다. 그래서일까, 성모동산을 여럿 모신 성당도 있다. 불교 사원에 가면 불상 앞에서 누워 뒹굴 듯 편하게 휴식 취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성모상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신자들도 있다. 신앙 안에서 생활하는 듯하다.

성모동산 앞 그늘에서 쉬고 있는 한 신자 모습.

미얀마 사람들의 신앙심은 남다르다. 양곤 성 오거스틴본당 주임 제임스 신부는 “미얀마 불교 신자들은 수입의 30~40%를 시주하기도 한다. 가톨릭 신자들도 일부는 월급의 30%를 봉헌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미얀마 제2의 도시, 만달레이 찬타공성당을 찾았다. 성당 뒤편 교육관에는 여자 청소년 31명이 기숙하고 있다. 침실과 공동생활 시설, 그리고 컴퓨터와 회계 등을 배우는 강의실이 있다. 이들은 대개 정글이나 산간벽촌에서 왔다. 한국인을 보자 반가이 맞는다. 한 여학생이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인사한다. “안녕하세요”라고 답했더니, 신기한 듯 모두 ‘와’하고 탄성을 지른다. 한류 영향인가 보다. 미얀마 젊은이들도 한국드라마와 케이팝을 즐겨 보고 듣는다.

미얀마에서 가톨릭 신자는 가난한 계층에 속한다. 황금의 나라로 불릴 만큼 부유했던 나라였지만, 지금은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도로망이 낙후되고 교통수단이 제대로 없어서 정글지역, 오지 마을에서는 인터넷은 물론 전기도 없이 문명과 단절된 생활을 한다. 신부가 교우 마을을 방문할 때 2~5일 걸리는 오지도 있다. 학교도 드물고 이웃 지방의 학교를 찾아가는 것 역시 교통사정이 좋지 않아 힘들다. 교육시설도 열악해서 교실 하나에 칸막이를 하고 3~4개 학년 학생들이 함께 복식 수업 하는 곳도 많다.

미얀마교회의 가장 큰 역할은 교육과 건강 돌보기. 교회에서는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지방 출신의 젊은이들이 먹고 자는 곳을 마련해주고 있다. 가난한 지역 성당에서는 교육시설과 함께 의료시설을 갖추고 환자를 돌본다.

미얀마교회의 올해 핵심 사업 중 하나는 종교 간 대화. 지난 8월 말에도 가톨릭 지도자와 불교 지도자의 만남이 있었다. 바간에서 만난 한 운전기사는 어머니는 불교 신자이고 아버지는 가톨릭 신자란다. 그의 운전대 앞 대시보드 상판에 십자고상과 부처상이 나란히 모셔져 있다. 미얀마에서 가톨릭은 그렇게 자리 잡으면 어떨까.

김승월 이사(왼쪽 첫번째)가 만달레이 찬타공성당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여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봉사는 큰 기쁨’ 미얀마 한인공동체

“10년 전에 미얀마에 왔는데, 이 세상 끝에 온 듯했어요. 지금은 아주 좋아진 편이지만, 그때는 마실 물 하나 제대로 구할 수 없었어요. 하나하나 감사하며 받아들이게 되고, 남을 돕게 되고, 저절로 하느님 안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미얀마 한인본당(주임 오병수 신부)에서 만난 정동진(베드로·70)씨.

한인본당은 미얀마 수도 양곤의 성 오거스틴성당 청소년센터에 자리하고 있다. 성 오거스틴성당은 양곤 시내 고급 주택지역에 있다. 치안이 안전해 주로 외국인들이 모여 살다보니, 한국 교민들도 모여 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영어미사에 한인 교우들이 모이게 됐다.

한인본당 사목회장 신태준(마르티노·55)씨의 전언. “1995년 미얀마에 처음 왔을 때도 우리 교민들은 영어미사를 마치고, 같이 차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 작은 공동체를 이뤘어요. 그 때도 미얀마 돕기를 함께했어요.”

미얀마와 한국교회의 인연은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얀마 교민 노해용(스테파노·67)씨가 고아원 어린이를 도왔다. 그로부터 미얀마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인천교구 제정원 신부는 미얀마 어린이 돕기 후원회를 조직해 후원사업에 나섰다. 인천교구는 교구 차원에서 도왔다. 성 오거스틴성당 청소년센터 건축이 자금난으로 중단되자 인천교구에서 도와 완공시켰다. 그 후로 청소년회관에 한인가톨릭공동체를 위한 공간과 한국어 도서관이 마련되고, 주일에는 대성전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됐다. 인천교구 생명사랑운동본부에서는 미얀마를 돕기 위해 코리아 커뮤니티를 설립하고 2001년부터 신부를 파견했다.

신 회장은 지금도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정말 기뻤어요, 이제는 성당을 옮겨 다니는 설움은 없겠구나. 강론도 영어로 들으면 가슴에 와 닿지 않아요. 신앙의 갈증이 풀린 거죠.”

미얀마 한인본당 신자들이 주임 오병수 신부와 한국어도서관에서 평일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주일미사는 1회, 평일미사는 2회, 주일미사는 대성전에서 올리지만, 평일미사는 한국어도서관에서 소박하게 드린다. 미얀마 한인은 3000여 명, 가톨릭 신자는 118명이다.

오병수 신부는 “한인 신자들의 반은 여기서 세례 받았다. 한인 대상으로 선교하면서, 미얀마 어린이 돕는 일을 한다. 매월 정기 후원은 13곳, 비정기 후원은 5곳. 사목회 연간 예산에서도 3분의 1은 미얀마 돕기에 쓰고 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성모회 중심으로 자매들이 봉사했다. 형제들이 혼자 와 살면서 사업하는 경우가 늘면서 한인성당 인적 구성이 바뀌었다. 지금은 여성신자 비율이 20% 정도밖에 되지 않아, 남성 신자들이 레지오마리애를 중심으로 봉사하고 있다. 한인 가톨릭공동체의 레지오는 3개 쁘레시디움에서 24명이 활동하는데, 봉사는 주로 ‘하늘의 문’ 쁘레시디움이 담당한다. 후원 예산은 헌금과 1년에 한 차례 바자를 열어서 마련한다. 바자 때마다, 한국인 사업가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의류나 신발을 기증한다.

정동진씨도 한 학교에 우물 파주고 학용품을 보내준 적이 있었다.

“감사장을 준다기에 그 학교에 갔지요. 어린 학생들이 입구에서부터 줄지어 서서 맞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팔짱 끼고 있더라고요. ‘왜 저런가’ 했더니 그게 감사의 표시라네요. 감사해하던 모습은 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살다보면, 봉사는 큰 기쁨이구나 느끼게 됩니다.”

미얀마에서는 누군가를 도우며 살아야만 할 것 같다.

■ /일문일답/ 미얀마 내전 지역에서 구호활동 펼치고 있는 최혜숙 수녀

-질문 : ‘카친’(Kachin)지역 상황은 어떤가?

-답변 : 전쟁 중이다. 정부군과 독립군은 서로 각각 국경선을 만들고 통제한다. 문명이 단절된 곳이다. 농사짓는 법을 몰라 채취하며 살기도 한다. 학교도 없어 거의 교육받지 못한다. 전화, 팩스도 드물다. 급한 소식을 라디오베리따스 방송으로 전하기도 한다.

-질문 :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답변 : 우기인 7월에서 9월까지, 100여 가구 사는 마을에서 5명에서 20명씩 죽어나간다. 우물도, 약도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아프면 잡귀가 들었다고믿는 이도 있다. 아이들은 영양실조가 심하다. 수녀가 된 후 영국에서 간호학을 공부했다. 언제 추방될 지 몰라, 이곳 사람들 스스로 대처 할 수 있도록 ‘공동체의료봉사단’을 만들어 교육시키고 있다.

-질문 : 활동하며 느낀 점은?

-답변 : 뎅기열, 이질에 걸려 위독한 적도 있었다. 타고 가던 오토바이가 다리에서 추락하기도, 배가 바위에 부딪쳐 가라앉기도 했다. 그 어두운 삶 안에서 오히려 감사하게 되고 나를 바로 보게 되었다. 이곳 사람들의 단순하고 강한 믿음에 감동하여, 선교하러 왔다가 선교 받은 기분이다.

최혜숙 수녀(수산나·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는 2003년 외국인 최초로 미얀마 북부 국경지방인 카친 마찌나교구에 들어가 구호활동을 하고 있다. 카친 지역은 카친 독립군(KIA)과 정부군이 대치하는 곳이다.

김승월(프란치스코·시그니스 아시아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