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우리말 바루기] 고해성사 (1)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6-09-06 수정일 2016-09-07 발행일 2016-09-11 제 3011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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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고해?… 2000년부터 ‘고해성사’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 앞에서 주저하거나 고민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그 갈등이 너무나 커서 아예 교회와 멀어지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바로 가톨릭 신자가 되면서부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고해성사를 보는 고해소입니다.

텔레비전이나 외신 등을 통해 수시로 고해소에서 고해성사는 보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접하며 예전에 비해 조금은 더 친숙해진 듯하지만 여전히 고해성사에 따르는 불편한(?) 생각이나 기분은 남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고해성사는 가톨릭교회가 지니고 있는 ‘칠성사(七聖事)’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성사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도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적 양식을 얻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고해성사 역시 주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소중한 통로가 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합니다. 적잖은 그리스도인들이 이토록 어려워하는 고해성사는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 가운데서 생겨난 배교자들을 다시 공동체로 받아들이는 문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공적 참회’가 생겨났고 시간이 흐르면서 아일랜드 영국에서 ‘사적 참회’로 발전하여 오늘날의 고해성사 형식이 되었습니다. 고해성사가 지닌 매력은 죄로 인해 끊어진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고 또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가 이어준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성사를 두고 지금도 신자들 사이에서는 ‘고해성사’인지 ‘고백성사’인지 헷갈리는 분들이 적지 않으신 듯합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몇 번 그 이름이 바뀌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해온 연륜에 따라 기억하는 용어가 조금씩 다른 것입니다. 과거 한국교회는 이 성사의 이름을 줄곧 고해성사로 번역해 사용해왔습니다. 그러다가 1967년 고백성사로 바꿔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천주교 용어집이 나오면서 고해라는 말이 이 성사의 본뜻이 더 가깝다는 의견에 따라 다시 고해성사로 환원돼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희년’을 발표하면서 “죄를 고백할 줄 아는 것은 하느님의 은사, 선물, 하느님의 작품”이라며 두려워하지 말고 고해소에 들어가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