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자비의 희년 기획 - 아버지처럼 자비로이] (9·끝) 사회 양극화 현상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6-08-30 수정일 2016-08-31 발행일 2016-09-04 제 3010호 19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가난한 이 위한 협력과 연대로 불의한 사회구조 개선해야
‘고삐 풀린 자본주의’ 행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부문에서 격차 심화시켜

2015년 월스트리트저널은 세계화의 광풍이 지구촌을 휩쓴 지난 25년간을 결산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부문에서 심화된 양극화 현상을 수치로 정리했다.

이에 따르면 세계 갑부 80명 자산이 인구 35억 명 자산 총액과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이 각종 경제 지표와 데이터들을 동원해 집계한 내용이다. 부자 80명의 재산이 전 세계 인구 절반의 재산과 맞먹는다는 결과다.

빈부의 차이는 단지 재산만의 차이로 끝나지 않는다. 빈부 격차, 심화된 양극화는 고착화된다. 보유 재산은 그것이 발휘할 수 있는 온갖 사회적 혜택과 특권, 특혜와 함께 상속됨으로써 더욱 견고하게 고착화된다.

소득 수준은 결혼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득 수준이 낮으면 혼인 연령이 높아지고 출산율도 떨어진다. 비만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나타나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산다. 빈부 간 교육 격차는 이미 두드러진 사회적 현상이다. 빈부 격차, 경제적 양극화는 사회적인 문제를 필연적으로 야기한다. 부모의 경제력은 자녀 교육 실태를 좌우함으로써 교육의 격차를 낳고, 이는 다시 경제적 격차를 이어간다.

한국의 사회 현실 속에서, 양극화의 사회적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냈던 것이 비정규직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었다. 고용 불안, 커다란 임금 격차, 비인간적인 대우와 차별 등 비정규직 노동자 계층은 말 그대로 사회의 하위 계층을 형성하면서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우리 사회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들을 전했다.

교회의 쇄신이 하나였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 보살핌의 촉구가 또 다른 하나의 메시지였다.

교황 방한 당시 통역과 수행을 맡았던 예수회 한국관구장 정제천 신부는 교회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예수회 내부의 깊은 논의들에 관해 전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전 세계 예수회 차원에서 자신들의 시대적 소명과 관련된 주제를 성찰했고, 한국 관구는 이와 관련해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과 함께 ‘부의 양극화’에 대한 예언자적 자세를 실천할 것을 다짐했다. ‘부의 양극화’, ‘빈부 격차의 심화’가 가져오는 비인간적 사회 구조와 체제, 인간 존엄성과 인권을 말살하고 훼손하는 불의한 경제 체제를 개선하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이 관심을 갖고 실천해야 하는 신앙적인 소명임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자비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인 데서 잘 드러난다. 예수는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인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대상으로 선포했고, 전 생애에 걸쳐 이를 실천했다. 당시 과부와 고아, 장애인과 병자들은 개인적인 불행을 견디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제도적으로도 소외되고 배척당해야 했다. 그래서 예수는 이들의 고통과 불행을 구체적으로 치유하면서, 이를 개인적인 치유의 차원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이를 통해 공동체의 회개와 사회 제도적인 개선을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복음의 기쁨」과 「찬미 받으소서」 등의 회칙과 교서, 수많은 강론과 연설, 그리고 특별히 자비의 희년을 선포함으로써 수없이 강조하고 되풀이해서 권고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가난한 이들을 가난하게 하는 것들에 관심을 두고, 가난으로 인해 고통을 받아야 하는 이들의 신음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사회구조, 특히 경제 체제는 빈부 격차와 양극화를 심화시켜 가난한 사람들이 아예 사회 구조 밖으로 축출되고 배척돼 인간 이하의 가치 수준으로 취급되도록 만든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더욱 가난하게 하고, 부자의 배를 더욱 불리게 하는 불의한 세계 정치 경제 체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자비의 희년 동안, 또한 그 기간을 넘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사회 정의 실현과 인권의 회복은 이러한 불의한 사회 구조에 대해 저항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분명하게 말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 안에서 그리고 다양한 민족들 사이에 노정된 배척과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는 한, 폭력이 뿌리째 뽑힐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못 사는 민족들이 폭력을 유발한다고 비난을 받지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온갖 형태의 공격과 분쟁은 계속 싹을 틔울 토양을 찾고 언젠가는 폭발하기 마련입니다.”(「복음의 기쁨」 59항)

교황은 오늘날 많은 경우, 폭력의 원인은 불평등이라고 지적한다.

“한쪽에서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다른 곳에서는 음식이 버려지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입니다.”(「복음의 기쁨」 53항)

현대의 사회구조, 특히 경제 체제는 애당초 불평등을 배태하는 폭력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교황은 고삐 풀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경제이념, 무분별한 소비지상주의, 그리고 ‘쓰고 버리는 문화’가 곧 가난한 이들을 더 가난하게 하고, 가난한 이들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교황의 비판은 신랄하다. 배척의 경제, 새로운 우상인 돈, 세상을 지배하는 금융 제도, 사회적 불평등, 쫓겨나고 버려진 사람들 등의 용어를 통해, 교황은 단지 이용되고 착취당하는 수준을 넘어서 가난한 사람들이 아예 사회 구조 밖으로 축출되고 배척돼 인간 이하의 가치 수준으로 취급되는 현실을 개탄한다.

이러한 상황은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 극심한 불의이고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심각하고 결정적인 침해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침해가 계속 용인될 때, 결국 인간 사회는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사회로 전락하고, 인간의 품위와 존엄은 훼손된다.(「복음의 기쁨」 51항 참조)

이미 즉위 당시부터, 또한 교서와 회칙 특별히 2014년 방한 때의 메시지들을 통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고통과 울부짖음에 대해 깊은 사목적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해왔다. 특히 그러한 사회 현실들은 개인적인 문제로 그치지 않는 사회적 구조와 경제 체제의 문제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끊임없이 지적했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 역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제와 이익을 위한 세계화가 아닌, 인간애와 연대의 세계화를 촉구해왔다. 2008년 6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식량 안보에 대한 정상회의에 보낸 담화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경제적 세계화가 아니라 연대의 세계화”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담화에서 전 세계의 지도자들이 “심화되고 있는 빈부격차를 불식시킬 수 있는 공통의 협력과 연대를 위한 노력할 것”을 촉구하고 “각국 정부는 저개발, 굶주림, 영양실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 개혁 노력에 매진할 것”을 당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 교황들이 반복해서 전한 교회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좀 더 명확하고 단호하게 전해준다.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어 갖지 않는 것은 그들의 것을 훔치는 것이며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57항)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