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국악성가 하늘나라] 로마 유학시절

강수근 신부(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수도회 한국관구장)rn1992년 사제로 서품됐다. 미국
입력일 2016-08-16 수정일 2016-08-17 발행일 2016-08-21 제 3008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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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성가 작곡 기본기 다져

꿈에 그리던 로마 유학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나이 들어 다시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는 일이 쉽지 않았고, 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시험 준비도 쉽지 않았습니다. 시창(視唱), 청음, 리듬시험 등은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피아노 시험이 참 어려웠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피아노를 전혀 공부하지 않아 기초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이를 악물고 피아노 연습을 했지요. 낮에는 어학원, 밤에는 피아노 이렇게 꼬박 1년을 준비했습니다.

어찌어찌 시험이 통과돼 이듬해에 작곡과에 입학을 하게 됐지요. 이래서 시작한 공부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레고리오 성가, 화성법, 대위법, 반주법, 푸가, 건반화성, 그레고리오 성가 반주법, 음악사, 폴리포니, 음악분석, 합창 등등 배울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데 피아노와 오르간이 늘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전혀 기초가 없는 저에게 피아노와 오르간 수업은 레벨이 너무 높았습니다.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자해서 연습해도 따라갈 수가 없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습니다. 악기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배워지는 것이 아닌데 차라리 교수님과 상의해 피아노와 오르간을 포기하고 작곡기법을 더 충실히 공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쨌든 당시에는 어떻게든 모든 학과목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그야말로 죽어라고 피아노와 오르간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니 다른 과목들은 충분히 공부할 시간이 없었지요.

남들은 방학기간에 프랑스나 독일이나 동유럽이나 영국이나 스페인 등 주변국으로 2~3개월씩 휴가를 다녀오는데 저는 방학 동안에도 내내 피아노와 오르간에 매달려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3년을 무작정 매달린 덕분에 첫 시험에서는 떨어졌지만 재시험에 통과가 돼 드디어 피아노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이어진 오르간 시험도 어찌어찌 통과가 됐습니다. 교수님들의 인자하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 와중에 한국에서는 새 관구장님이 선출되셨습니다. 새 관구장님은 제가 너무 공부를 오래한다고 그만 들어오면 어떻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때가 3학년 때여서 아직 작곡도 공부할 것이 많고 하니 기왕 시작한 거 학부만이라도 마칠 수 있게 해주십사고 청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주셔서 1년 더 시간을 벌었습니다만 이미 공부의 의욕은 꺾인 상태였습니다. 그동안 피아노와 오르간에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은 대학원에 가서 본격적으로 해나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대학원 진학이 물건너가고 그만 귀국해야 되는 입장이라 맥이 다 풀려버린 것이지요. 더욱이 미뤄 놓은 과목이 하나 있었는데 이 수업이 2년마다 있는 것이라 제가 졸업하는 해에는 수강을 할 수가 없게 됐고 결국 졸업이 아닌 수료로 공부를 마감하게 되는 처지가 돼 버린 거지요. 참 한스러웠습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결과는 너무 초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제가 원했던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습니다. 훌륭한 교수님 밑에서 작곡의 기초를 탄탄하게 배웠고, 고난회 총본산인 로마 총원에서 세계 도처에서 온 고난회원들과 함께 사는 행복도 누렸습니다. 또한 한국 학생들이 많아서 도움도 받고 친교도 나누며 재밌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기회를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강수근 신부(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수도회 한국관구장)rn1992년 사제로 서품됐다.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