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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희년 기획 - 아버지처럼 자비로이] (8) 생명 문화의 건설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6-08-09 수정일 2016-08-10 발행일 2016-08-14 제 3007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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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가치 수호는 개인 넘어 교회와 사회 모두의 책무
낙태에서 사형제 유지까지 생명 훼손 쉽게 결정되는 사회
인간 존재조차 효용성에 의해 필요 없을 땐 가차없이 버려져
 교황, 가난한 이에 피해 주는 ‘쓰고 버리는 문화’ 위험성 강조

천주교 생명운동연합회가 2013년 9월 11일 대전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낙태죄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너무나 분명하고 명백하다. 교회는 전통적인 생명윤리 지침들뿐 아니라 현대 과학 기술 문명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위협들에 대해 명확한 가르침들을 제시해왔다. 하지만 교회가 제시하는 생명윤리 지침들은 복잡다단한 현대 세계와 사회 안에서, 때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조차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실용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한 가운데, 현대인들은 생명의 존엄성보다는 효용성을 중시해왔고 이는 인간 생명에 대한 태도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럼으로써, 세상에는 ‘죽음의 문화’가 ‘생명의 문화’를 압도하기 시작했고, 교회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생명의 가치를 세상에 다시금 천명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이 부여됐다. ‘자비의 특별희년’은, 피조물의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교회가 드러내고 보여주어야 하는 특별한 시기이다.

#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자비의 희년

“혼자서 아기를 낳아 키울 능력이 없어요.”

“이제 그만 생을 마치고 싶어요. 또 저 한 사람만 없어지면 가족들도 보상을 받아 좀 더 나은 형편으로 살 수 있을 거예요.”

“지금은 결혼하고 싶지가 않아요. 그래도 앞으로의 일은 잘 모르니, 난자를 냉동보관 하는 거예요. 남자친구의 정자와 결합시킨 배아를 냉동시킬까도 고민 중이예요.”

“난임 고통을 겪어보셨나요? 새 생명을 얻도록 도와주는 건데, 시험관 시술이 뭐가 문제가 있다는 겁니까?”

“난치병 환자들에게 단 하나의 희망인데, 그까짓 배아로 줄기세포 좀 만든다고 큰 일이 납니까?”

“아버지는 너무 고통스러워 빨리 돌아가셨으면 하십니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연명치료비 또한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태아부터 노년까지 평생을 건강하게! 유전자 검사를 해서 열등한 부분은 제거하고, 장애 가능성이 있으면 미리미리 낙태하는 게 맞지 않나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한 번쯤 들어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하나하나 모두 인간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이다.

직접적으로 생명을 훼손하는 것 외에도 각종 이기심으로 발발하는 가정 파탄, 저출산, 동성애, 모성 포기 등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찾아보기 힘든 행태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제기된 이른바 ‘갑질 논란’, ‘인격 모독’ 등의 사안들도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생긴 결과들이다.

인간 생명이 존엄한 이유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며, ‘하느님의 거룩한 숨결’로 생명을 부여받은 덕분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구원을 위해 스스로 인간이 되어 인간의 품위를 올려준 덕분이다. 결국 인간 생명은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주신 선물이므로, 인간은 이 생명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보호할 소명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 생명이 손상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무한한 ‘자비’와 ‘사랑’으로 다시금 당신의 참 생명으로 회복시켜주시려고 노력하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700~1715항 참조).

생명의 수호에 대한 교회의 소명은 자비의 특별희년 기간 동안 더욱 강조된다. 하느님의 자비는 특별히 피조물을 창조하신 때부터, 구원의 희생제사를 통한 새 생명의 선물, 그리고 세상 끝 날에 결정적으로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으로의 초대에 이르기까지 항상 드러난다. 자비의 희년은 이러한 하느님 자비를 집중적으로 체험하는 시기다.

# 하느님 자비와 생명·가정 문제

자비의 희년 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이 실시한 몇 가지 특별한 조치들은 인간 생명과 관련해 교회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해준다.

지난해 9월 교황은 자비의 희년에 즈음해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 살바토레 피시켈라 대주교에게 서한을 보냈다. 희년을 맞아 낙태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희년 기간에 모든 사제들에게 낙태죄에 관한 사죄 권한을 주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교회에서는 이미 사제들에게 이 같은 권한이 위임돼 있었다. 하지만 그 외 특히 유럽 나라들 중에는 낙태죄에 대한 사면권이 주교에게만 유보돼 있었던 터라, 이러한 조치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교황은 이 서한에서 “낙태했던 모든 여성들이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어떠한 압박을 받았는지 잘 알고 있다”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심적 고통에 공감을 표시했다. 낙태는 교회가 단호하게 단죄해야 할 큰 죄지만, 하느님의 자비에 따라 그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는 이들은 누구든 용서받을 수 있음을 일깨워준 행보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러한 ‘고통의 현실’에 대해 보여준 공감은 2년 동안에 연이어 열렸던 가정 주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이하 시노드)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교황과 주교들은 두 차례에 걸친 가정 시노드를 통해, 엄격한 교리와 윤리적 잣대로 단죄하기보다는 가정들이 겪는 고통에 공감하고 동행하길 원했다. 비록 분명하게 언명되지는 않았지만 이혼 후 사회적으로 재혼한 신자들에 대한 영성체 허용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했고, 동성애 경향을 지닌 사람들에 대해서도 좀 더 관대한 태도를 피력했다. 혼인 무효 소송 절차는 대폭 간소화했다.

자비의 희년 동안에 드러나는 교회의 가르침과 조치들은 근본적으로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흔들림 없는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특별히 소외되고 힘없는 생명에 대한 더 깊은 관심과 배려, 너그러운 태도를 강조한다.

작년 10월 20일 정의화 당시 국회의장을 만난 주교회의 정평위원장 유흥식 주교와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위원들이 사형제 폐지 특별법안 처리를 요청한 자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생명을 경시하는 세계, 생명 문화의 건설은 개인을 넘어선다

하지만, 과연 오늘날 세상은 가장 힘없는 존재에 대해서 참되게 존중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다. 인간 생명의 가치는 근원적 존엄성보다는 효율성과 실용성에만 바탕을 두고 판단되기 일쑤다.

우리나라에서만 해마다 100만 건 이상의 낙태가 자행되고 있는 현실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경시를 그대로 드러낸다. 더 미미한 존재인 배아는 상업성을 목표로 하는 그릇된 현대 생명 과학으로 인해 실험실에서 임의로 만들어지고 폐기되기도 한다. 회생 불가한 말기환자들에 대한 안락사 논쟁은 효용 가치로 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멋대로 평가하려는 그릇된 시도 중의 하나다.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존립하고 있는 사형제도 역시 인간 생명을 인간이 결정적으로 말살하는 제도적 살인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의 절벽에 몰린 사람들이 택하는 자살률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사회적 현실은 이미 개인적 차원의 생명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묻지 마 살인’ 등과 같은 막무가내의 폭력은 개인의 일탈 행위 수준을 넘어 사회와 문화 전체가 안고 있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경시 풍조를 드러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러한 모든 풍조의 바탕에는 ‘쓰고 버리는 문화’가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인간 존재조차 효용성에 바탕을 두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쓰지만 효용 가치가 떨어지면 가차 없이 버려지는 사회는 결국 인간 생명의 존엄성조차 폐기되는 사회일 수밖에 없다. 특히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쓰고 버리는 문화는 항상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생명에 가장 큰 피해가 된다고 강조했다.

교회는 생명 문제에 대한 관심 역시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선다고 말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생명의 복음」은 수정에서 자연사까지 삶의 모든 단계에서의 생명에 대한 위협을 우려하지만, 그러한 위협이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서만 발생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 차원의 책임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것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분명하게 ‘죄의 구조’,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 ‘생명을 거스르는 음모’(12항 참조)에 대해 고발하고 이에 대한 교회의 적극적인 대처를 촉구한다.

자비의 희년에 집중적으로 요청되는 생명에 대한 교회의 소명 역시,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전체, 사회와 국가 차원에서의 집단적이고 공동체적인 노력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비의 희년이 지니는 사회적 차원, 곧 세상 안에 하느님 자비의 표지가 되어야 하는, 희년을 맞은 교회의 소명이 아닐 수 없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