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그림으로 보는 성모승천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6-08-09 수정일 2016-08-10 발행일 2016-08-14 제 3007호 11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빈 무덤 위 장미꽃에서는 마리아의 향기 피어나고

초대교회 때부터 전승으로 받아들여졌던 ‘성모승천’ 교리는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시대 등을 거치며 교회 미술 안에서도 주요 주제로 다뤄졌다. 비잔틴 미술이 영의 승천을 중요시 했던 데 반해 육체 부활의 표현을 중시했던 서구 미술의 관점에서 성모 마리아는 구름 위에 서거나 혹은 천사의 부축으로 승천하는 모습으로, 사도들은 지상에서 이를 지켜보는 경우가 많았다.

중세 이래 마리아의 승천 모습에서는 토마스 사도에게 두르고 있던 띠를 던져주었다는 전승이 반영된 것을 볼 수 있다. 또 근세에는 하늘로 오르고 난 뒤 비어있는 석관에 장미나 백합꽃이 넘쳤다는 전승도 더해져 표현됐다. 한국에서는 토착화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한복 입은 성모 마리아의 승천 모습이 드러난다. 성모승천대축일을 맞아 주요 미술작품에서 드러나는 성모승천의 모습을 살펴본다.

그라나치 ‘허리띠를 주는 마리아’, 이탈리아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 그라나치 ‘허리띠를 주는 마리아’(1515년)

승천을 믿지 못한 토마스에게 허리띠를

전승에 따르면 사도 토마스는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 후 늦게 도착하여 장례를 보지 못했다. 사흘이나 지난 후였다. 토마스는 마지막 모습이라도 뵙고자 무덤을 열었다. 이때 시신은 간 곳 없고 시신을 쌌던 천만 남아 향기가 가득했다고 한다. 목격한 사도들은 마리아가 승천한 것으로 여겼지만 토마스는 이를 믿지 못했다. 이에 마리아는 하늘로 오른 징표로 지상에서 두르고 다녔던 허리띠를 주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 화가 프란체스코 그라나치(Francesco Granacci·1469~1543)의 ‘허리띠를 주는 마리아’는 이 전승 내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가 승천하며 미소를 띤 채 토마스에게 허리띠를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오른쪽에 대천사 미카엘이 보이고 비어있는 무덤에서는 장미꽃이 피어나고 있다.

티치아노 ‘성모승천’, 이탈리아 베네치아 프라리대성당.

■ 티치아노 ‘성모승천’(1516~1518년)

속세와 천상… 세 부분으로 구성

이탈리아 베네치아 프라리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Gloriosa dei Frari) 중앙 제대에 걸려진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1485~1576년 경)의 성모승천은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티치아노의 재능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꼽힌다. 세 부분으로 나뉜 이 작품은 가장 아랫부분에서 속세를 표현하고 있으며 거기서 사도들은 마리아의 승천을 보고 있다. 중간 단계에서는 천사들에 둘러싸인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이 기다리는 위쪽을 향해 높이 날아오르고 있다. 여기서 마리아는 지상에서 즐겨 입던 청록과 진홍색 옷을 입고 있다.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하느님 품으로 올라갔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천상에서는 하느님이 사랑 가득 찬 눈빛으로 마리아를 응시하고 계신다. 화려하고 강한 색채로 기쁨의 순간을 표현하면서도 시각적으로는 근엄하고 명상적인 전체 작품 분위기에서는 주제에 대한 티치아노의 독창적 해석을 엿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평이다.

루벤스 ‘마리아의 승천’,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

■ 루벤스 ‘마리아의 승천’(1603~1606년)

무덤 돌문 여는 사람들과 성모님

가장 다양하고 많은 작품을 그린 바로크 시대 화가로 꼽히는 페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1577~1640)는 성모승천을 열두 차례나 그렸다. 특별히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에 있는 이 작품은 높이가 4.58m나 된다. 그림 왼쪽의 세 장정은 온 힘을 다해 돌문을 열어젖히고 있고, 무덤 안을 제자들과 여인들이 보고 있다. 마리아의 죽음을 나타내지만, 한편으로는 여인들이 들고 있는 천에는 꽃이 놓여짐으로써 마리아가 지닌 삶의 향기를 내보인다. 이 작품과 관련 김남철 신부(의정부교구 호원동본당 주임)는 저서 「그림이야기, 나의 이야기」를 통해 “꽃의 향기로 표현되고 있는 마리아의 삶을 신앙인들이 본받아 충실히 살아갈 때 하늘로 높임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푸생 ‘성모승천’, 미국 워싱턴 국립박물관.

■ 푸생 ‘성모승천’(1626년경)

대리석 무덤 위 수의로 승천 암시

루벤스, 렘브란트와 함께 17세기 가장 영향력 있었던 화가인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1594~1665)은 ‘사람들이 자기 그림 앞에 오래 머물며 생각하기를 원했던’ 일명 철학자 화가다. 그의 성모승천 작품에서도 그런 기대가 보인다. 하늘을 향한 마리아의 모습에서는 ‘하느님 뜻에 대한 믿음’을 읽어볼 수 있다. 또 대리석 무덤 위에 수의를 놓음으로써 육체가 하늘로 승천했다는 암시를 살필 수 있다. 마리아의 꽃인 장미를 천사들이 무덤에 뿌리고 있는 장면에서는 세상에 남겼던 성모 마리아의 자취를 묵상하게 한다.

방오석 ‘하늘에 오르시는 어머니’, 개인소장.

■ 방오석 ‘하늘에 오르시는 어머니’(1992)

한복 입은 성모님, 친근한 느낌으로

방오석(말가리다·1938~) 작가는 우리민족의 정서와 신앙이 스며있는 한국적인 성화작업에 평생을 바쳤다. 화선지에 묵과 채색으로 그려진 이 작품은 외형적으로 한국인의 정서를 입은 마리아를 드러내면서 그러한 친근함을 통해 ‘우리 신앙인의 모범’임을 시사해 준다.

홍희기(미카엘라·갤러리 1898 큐레이터)씨는 “최근 한국 작가들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자각을 갖기 시작했고 종교화를 통해서도 잘 표현되고 있다”면서 “한복을 입은 성모상은 그 모습 자체로 이미 한국인을 그대로 닮고 있다는 면에서 더욱 가깝게 우리들에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nrnrn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