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국악성가 하늘나라] 제2의 성소

강수근 신부(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수도회 한국관구장),1992년 사제로 서품됐다. 미국
입력일 2016-07-19 수정일 2016-07-20 발행일 2016-07-24 제 3004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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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 토착화’에 투신하기로 결심

2002년 11월 열린 ‘제2회 한소리합창단 정기연주회’ 포스터.

2002년 11월 24일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제2회 한소리합창단 정기연주회가 열렸습니다. 창단 연주회에서는 두 세트의 미사곡, 성모성가들, 순교자성가들을 선보였고 두 번째 연주회에서는 ‘호산나 다윗의 후손’, ‘성시’, ‘우리주님가시네’ 등의 수난성가와 ‘세세대대에’(다니 3, 가해 삼위일체 대축일), ‘아버지 제 영혼을’(시편 30, 성 금요일), ‘주님께서는 임금님’(시편 92, 나해 그리스도 왕 대축일) 등의 화답송들 그리고 부활성야, 부활 대축일 낮미사, 성령 강림 대축일, 성탄 대축일 밤미사 등의 복음 환호송들 또한 ‘묵주기도’, ‘받으시옵소서’, ‘십자가를 살아라’ 등의 다양한 국악성가들을 선보였습니다.

60명의 단원들은 혼연일체가 돼 한 곡 한 곡 온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불렀고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청중들은 매곡마다 큰 박수로 호응하면서 점점 더 국악성가의 매력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사실 그 시간은 노래를 부르는 연주회라기보다 우리 모두의 혼을 담아 주님을 찬미하고 흠숭하는 간절한 기도의 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연주회를 마치고 정신없이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에, 신부님 한 분이 저를 찾아와 제 손을 덥석 잡으시면서 “강 신부, 고맙네. 참 잘 들었어. 너무 감동적이었네. 이건 단순한 연주회가 아니라 마치 아주 감명 깊은 피정을 하는 느낌이었네. 이 일이 참으로 귀하니 어렵더라도 멈추지 말고 계속해주기 바라네” 하고 격려해 주시는 것이었어요. 이 신부님은 광주대교구의 어른 신부님으로서 신학생들의 영적지도를 맡으셨던 안호석 신부님이셨어요. 저는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아! 그렇구나. 연주회가 피정이 될 수도 있는 거구나!” 영성적으로 훌륭하신 신부님의 말씀이라 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의 말씀은 저로 하여금 ‘제2의 성소’를 꿈꾸게 만들었습니다.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성가의 토착화’는 참 중요하면서도 요긴한 주제인데 사실 실천적인 면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라 늘 안타까운 마음을 품고 있었거든요. 그러면서도 내가 그 일에 전적으로 투신해야 한다는 생각은 못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런데 신부님 말씀을 듣고 제 안에서 이런 물음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에요. “하느님께서 정말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정말 내가 성가의 토착화를 위해 전적으로 투신하기를 바라시는 걸까? 그러면 수도자로서의 내 삶은 또 어떻게 되는 건가? 과연 이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을까? 성가 토착화에 투신한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맨땅에 헤딩하는 것인데 과연 부족한 내가 이 어려운 과제를 이뤄낼 수 있을까?” 그 답을 얻기 위해 저는 신학교 은사님이신 김민수 신부님을 비롯해서 동료 수사님들과 동창 신부님들에게 제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뜻밖에도 모든 분들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이것은 강 신부의 성소가 확실하네. 현재 한국교회 안에서 이 일을 할 준비를 갖춘 사람이 강 신부 말고 또 누가 있는가? 하느님께서 강 신부를 준비시킨 것이니 의심하지 말고 그 길을 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가 토착화’에 매진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또 하나의 성소, 즉 제2의 성소라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강수근 신부(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수도회 한국관구장),1992년 사제로 서품됐다.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