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일상문화 속 교회이야기] 유전학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6-07-06 수정일 2016-07-06 발행일 2016-07-10 제 3002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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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이자 수도 사제였던 멘델
완두콩 교배로 유전학 기초 마련
그레고리오 멘델. (출처 위키미디어)
유전학(遺傳學)은 다윈의 진화생물학과 결합해 현대 생물학의 기초를 구성하고 있는 학문이다. 한때는 창조론과 반대되는 학문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사실 이 유전학은 교회 안에서 시작됐다. 유전학의 시조이자 유전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레고리오 멘델이 바로 수도자이자 사제였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작은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멘델은 어려서부터 비범한 지능으로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성아우구스티노수도회에 입회, 신학을 공부하고 1847년 사제품을 받았다. 그의 이름 ‘그레고리오’는 바로 수도명이다.

오늘날 이른바 ‘멘델의 법칙’으로 불리는 유전법칙은 콩을 수확하던 한 수도자가 체험한 우연의 결과가 아니었다. 당시의 유전현상은, 액체처럼 서로 섞여서 전달된다고 설명하는 혼합유전설이 유력한 학설로 통했다. 하지만 멘델은 이를 부정하고, 유전인자가 마치 입자와 같이 전달돼 유전이 일어난다는 법칙을 완두콩 교배를 통해 증명해냈다. 7년여에 걸쳐 진행된 멘델의 완두콩 교배실험은 물리과학에서 사용하는 엄격한 방법을 생물학에 적용한 실험이었다.

멘델은 그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수도자의 신분으로 유학을 가 실험물리학, 통계와 확률, 화학의 원자이론, 식물생리학 등 당대 최신의 학문을 익혔다. 이후 수도자로서 또 교사로서 임무를 수행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완두의 유전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도원에 온실을 가꾸면서 2만8000여 그루의 식물을 연구했고, 이중 1만835그루는 세밀하게 실험했다. 그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그 결과를 1865년 발표했다. 멘델은 이밖에도 생물학, 기상학에 관한 다양한 논문을 발표했지만 1868년 수도원장에 취임하면서 직무에 힘을 쏟기 위해 더 이상 연구에 많은 시간을 쓰지 못했다.

오늘날에는 생물학의 위대한 연구로 인정받는 연구지만, 당대에는 그의 연구가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멘델은 자신의 연구가 인정받지 못한 것에 낙담했지만,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잃지 않았다. 그의 연구 결과는 그가 죽은 후인 1900년, 3명의 학자들에 의해 재발견됐고 이를 계기로 멘델의 유전학이 기초를 이루고 발전하게 됐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