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자비의 희년 기획 - 아버지처럼 자비로이] (6) 민족 화해의 노력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6-06-28 수정일 2016-08-31 발행일 2016-07-03 제 3001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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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과 증오의 장벽 허물고 신뢰와 용서의 손 맞잡아야”
용서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소명
‘자비의 희년’ 의미와 정신 되새기며
만남과 대화로 평화 실현 앞장서야

■ 적군 묘지 앞에서/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들어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 시집 「초토의 시」(1956) 中

저명한 가톨릭 시인으로 존재론적 시세계를 보여준 구상 시인의 연작시 ‘초토의 시’ 15편 가운데 8번째 작품이다. 불타서 없어진 자리라는 의미의 ‘초토(焦土)’는 한국 전쟁의 민족적 비극의 현장을 의미하리라. 이 연작시들은 전쟁의 참상과 그에 대한 참회, 분단의 아픔과 통일에 대한 뼈저린 염원, 무엇보다도 서로 총구를 겨눴으되 결국은 당도해야 하는 형제애와 인류애를 담고 있다.

분단 70년이 넘어서도 여전히 전쟁의 긴장 상황에 처해 있는 한반도의 현실, 화해를 염원하면서도 여지껏 화해와 평화를 고도의 군비경쟁에서 찾으려 하는 우리의 우매함에 대한 탄식이 아닐 수 없다. 최악의 비극인 동족 상잔의 절박한 상황에서 내몰리듯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지만, 이제는 잘린 허리로 그 넋조차 고향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적군의 묘지 앞에서, 시인은 그들에게 저주와 증오보다는 동족으로서, 형제로서 연민의 정을 느껴 목을 놓아 버린다. 그리고 남은 과제는 참된 화해와 평화를 통한 통일의 노력 뿐임을 시인은 자신의 눈물로 당부하고 당부한다.

■ 자비의 희년과 용서

‘자비의 특별희년’이 시작된 지난해,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의정부교구장)는 민화위 회보 ‘화해와 나눔’ 하반기호에 적은 글 ‘용서와 화해로 시작하는 자비의 희년’에서 이 시를 인용해 용서, 그리고 평화를 묵상했다.

이 주교는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군 묘지, 북한군 709명, 중공군 255명, 그리고 후에 추가 발굴된 인원을 포함해 모두 1140기의 유골이 묻힌 이 슬픈 묘지를 방문했다면서, 자비의 희년이 주는 사랑과 연민의 상념을 전하고 있다.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자비로운 사람의 명확한 표현이고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계명입니다.”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를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는 집중적인 기간인 ‘자비의 특별희년’에, 한 형제이면서도 서로 총질을 해야 했던 과거를 참회하고, 상대의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적인 소명이라고 하겠다.

■ 반공 이데올로기와 군비경쟁

자비의 희년이 시작된 2015년은 동시에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 오랜 세월을 과연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깊은 성찰의 대상이다. 다양한 분석과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체로 지난 70년을 민족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해본다면, 반공 이데올로기와 끝없는 군비 경쟁을 반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전쟁 당시 교회의 입장은 반공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 참여였다. 반공의 이데올로기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전쟁을 거치면서 명료해지고 그 교리 수준으로 확고해졌다. 전쟁은 철저하게 반공주의의 시각에서 규정됐고, 따라서 ‘십자군 전쟁’의 특성과 동일시됐다.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전쟁은 “무신론 공산주의 침략자들의 마수”였으며, “양을 가장한 일회의 아편에 중독된 동족 아닌 동족이 가능한 온갖 악마적 방법을 다하여 빚어낸 참극”이라고 선언했다. 신자들은 “멸공에 총궐기”하고 교회는 “순교의 정신으로써 이 전쟁에 요약출전하라”고 권고됐다.

강인철 교수(한신대)는 1995년 가톨릭신문사의 광복 50주년 기획 ‘한국 천주교회의 어제 오늘 내일’의 ‘한국 전쟁과 현대 한국교회’(가톨릭신문 1995년 5월 7일자 5면)라는 기고에서, 전쟁 당시 한국교회는 ‘민족과 교회’, ‘전쟁과 교회’라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즉, 천주교회는 전쟁으로 야기되는 민족적 고난과 고통에 대한 통찰을 하는데 실패했고,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을 성찰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통해 평화에 대한 갈망을 더욱 다듬지 않는 한 모든 형태의 전쟁을 불의한 것으로 단호하게 단죄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반공과 멸공 이데올로기는 70년대 초의 7·4 남북공동성명을 계기로 전쟁보다는 평화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전환되기 시작한다.

■ 정당한 전쟁은 없다

분단 70년의 시간 동안 멈추지 않았던 것이 군비 경쟁이다.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는 2015년 10월 31일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가 연 ‘통일을 향한 분단 70년-그 의미와 성찰’ 심포지엄에서 군비 경쟁에 힘쓰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양한 외교적 노력이나 구체적인 평화 정책을 개발하기보다는 무력 증강에 힘을 쏟는 이유는 힘이 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막연한 ‘국가안보’라는 신화적 이념 때문이다. … 전쟁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전쟁은 언제 어디서나 연관된 모든 사람을 비인간화할 최악의 선택이다. … 전쟁이란 한마디로 미친 짓이다.”

한때 교회가 정당한 방어를 위한 전쟁은 가능하다고 한 적도 있지만 오늘날 ‘정당한 전쟁’은 없다는 것은 윤리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공통적인 의견이다.

무력 증강을 통한 전쟁 억지력을 주장하는 ‘국가안보’의 논리에 따라 강행된, 가장 최근의 실례는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지난 2월에 완공된 강정 해군기지는 수많은 분쟁과 싸움을 야기했고, 기지가 완공된 지금도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강우일 주교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가 한창이던 2013년 11월 12일 제주 중앙 주교좌성당에서 봉헌된 시국미사 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교회는 오늘날까지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면 국가가 어떤 희생을 요구해도 아무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베트남에 우리 군대를 파견해도 아무런 논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에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촉발하게 될 대규모 군사기지를 새롭게 건설하겠다고 하는 이 문제는 우리가 오늘 교회가 가르치는, 가톨릭교회 교리가 가르치는 원칙에 따라 근원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2315항에서 “많은 사람들은 무기의 비축을 가상의 적에게 전쟁을 단념하도록 하는 역설적 방법이라 생각한다”면서 “그렇지만 군비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증대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자비의 희년에 우리가 민족 화해의 문제와 관련해서 성찰해야 할 것은 분명히 화해와 평화의 노력이다. 이미 가슴 속에 ‘자비의 특별희년’에 대한 구상을 품고 있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방한해서 이렇게 말했다.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 화해와 연대의 문화를 증진시켜 불신과 증오의 장벽을 허물어 가는 끝없는 도전입니다. … 평화란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공직자들과 만남에서 행한 연설)

교황 방한 마지막날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거행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는 베드로의 물음에 답한 예수의 말을 인용,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할 것을 권고하면서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평화와 화해를 위하여 정직한 기도를 바칠 수 있겠습니까?”하고 반문했다.

구상 시인이 ‘적군 묘지’ 앞에서 그리도 간절하게 염원했던 형제애와 통일의 염원,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가정을 이루는 이 한민족의 화해’를 위하여 드린 기도처럼, 자비의 특별희년에 한국인이자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참된 용서와 화해, 이를 위한 만남과 대화의 노력을 절실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