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에 그을려 가뭇해진 포도원지기 소녀 아가서, 소녀를 ‘사론의 수선화’에 빗대 지중해 모래 뚫고 피어나는 강인함 묘사
필자가 이스라엘에서 유다인과 아랍인을 벗 삼아 산 세월은 십수 년이다. 지금은 어떤 자리에서 중동인을 만나면 그 특유의 외모와 습성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이스라엘인들과 어울려 지내는 동안 그들에게 묻어 있을 2000년 전 예수님의 모습도 숱하게 상상해보았다. 까만 눈동자에 곱슬곱슬한 머리, 태양에 그을린 고동색 피부. 가무잡잡한 내 이웃들을 볼 때마다 아가서의 1장 5-6절이 떠올라 웃음이 나기도 했다. “예루살렘 아가씨들이여 나 비록 가뭇하지만 어여쁘답니다, 케다르의 천막처럼 솔로몬의 휘장처럼. 내가 가무잡잡하다고 빤히 보지 말아요. 햇볕에 그을렸을 뿐이니까요.” 검게 탔다고 덜 아름다운 건 아니라는 한 소녀의 항변이다. 중동의 태양은 정말 지독해서, 오래 노출되면 꼭 숯덩이가 묻은 듯 시커멓게 된다. 피부가 희다 못해 창백한 서양인들은 적갈색 피부가 멋지다고 생각하고 또 일부러 피부를 태우기도 하지만, 피부가 까만 사람은 흰 피부를 동경하는 법이다.
소녀가 가뭇가뭇해진 건 포도원에서 오래 일한 탓이다. 오라비들이 소녀에게 포도원지기 임무를 맡긴 바람에, 정작 자기 포도원은 돌보지 못했다(아가 1,6). 그렇다고 소녀에게 포도밭이 따로 있었다는 건 아니다. 오빠들이 강제 노동을 시킨 것도 아니었다. 가족의 생업을 돕느라 제 몸 가꿀 겨를이 없었다는 뜻이다. 성경은 여인의 몸을 종종 농장이나 밭에 빗댄다. 이 소녀도 아가에서 과일나무 정원에 빗대어진다(4,12-13). 이사야서 5장 7절은 이스라엘 백성을 주님의 포도밭에 비유했다. 자식 낳는 여인과 열매 맺는 농장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소녀는 자기가 봐도 까맸는지 제 피부를 케다르의 천막, 솔로몬의 휘장에 견주며 과장한다. 둘 다 검은 염소 털로 만든 거라 흑진주를 떠올리게 하는 색이다. 케다르는 어원도 ‘검다’라는 뜻을 지녔다. 케다르인들 피부색뿐 아니라, 그들이 사는 텐트(예레 49,29; 시편 120,5 등 참조)도 검었기 때문이다. 케다르는 아라비아 부족들 가운데 하나였는데(에제 27,21 참조), 성경에는 이스마엘의 후손(창세 25,13; 1역대 1,29)으로 나온다. 에돔 땅 동편에 있는 광야에 살았으므로 이스라엘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활 솜씨가 특히 뛰어난 민족이었던 듯하다(이사 21,16-17 참조). 아라비아 부족들은 예부터 방목에 종사해왔다. 양이나 염소를 많이 키웠기에 염소 털로 텐트를 짜곤 했다. 이집트 탈출 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주님께 성막을 지어 봉헌했을 때도, 성막 위에 씌울 천막을 검은 염소 털로 만들었다(탈출 26,7).김명숙(소피아),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