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42) 자신 입장만 내세우며 용돈 요구하는 부모 때문에 힘들어

이나미(리드비나·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rn
입력일 2016-05-31 수정일 2016-06-01 발행일 2016-06-05 제 2997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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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자신 입장만 내세우며 용돈 요구하는 부모 때문에 힘들어

철없는 부모님 때문에 속이 너무 상합니다. 이 질문이 어이없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부모님들이 너무 철없이 행동하셔서 월급날이 다가오는 게 두려울 지경입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서는 주말이나 휴가 때면 원하시는 여행을 곧잘 다니시고, 두 분의 즐거움과 건강 등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제 학원비나 과외비 등은 극도로 아끼셨고요.

저는 아직 사회초년생이라 월급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부모님께서는 제가 생활비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시고, 꼬박꼬박 용돈을 요구하십니다.

저도 힘들다고 말씀드리면, 잘 키워줬더니 저만 잘살려고 한다면서 면박을 주십니다. 대체 모성애, 부성애가 있는 분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두 분이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부모님과 싸우지 않고 좀 어른답게 행동하시도록 설득할 방법이 없을까요?

[답변] 부모 원망 전에 내가 얼마나 독립적인지 먼저 살펴야

역설적이지만, 부모님의 그런 모습 때문에 질문하신 분이 남보다 더 빠르게 어른이 되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부모님이 한없이 자식에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식은 서로 독립된 별개의 존재로 받을 것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부모님들의 숫자도 요즘은 조금씩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 모든 것을 다 자녀에게 넘기고 나서 막상 정말로 무력한 노인이 되었을 때 비참하게 생을 마치는 경우를 간접적으로 보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과거보다 요즘 젊은이들의 삶이 훨씬 더 빡빡한 면도 있고, 미래도 더욱 불안할 수 있습니다. 얼렁뚱땅 대학만 나오면 취직이 되고, 집 하나 마련하면 집값이 계속 올랐던 과거에 비하면 극심한 경쟁에서 정말 죽겠다는 젊은 세대가 많습니다. 하지만, 대학만 나오면 취직이 되었던 이유는 대학 진학률 자체가 매우 낮았기 때문이고, 집 마련 역시 대부분은 연탄 가는 단칸방이나 부모님댁의 곁방살이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점은 크게 부각되지 않지요.

우선 부모님께서 요구하는 생활비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한번 따져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내가 밖에 나가서 집세와 생활비를 감당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많다면, 지금이라도 빨리 원룸이라도 얻어서 나가시는 것이 맞겠습니다. 반대로 그보다는 적은 액수라면, 그 안에서 더욱 아끼고 주말 ‘알바’라도 하시면서 돈을 모으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요즘 우스개 소리로 “꿈이 재벌 2세인데 부모님이 노력을 하지 않는다.”라고 불평을 해 보아야 무능한 부모님에게 나올 것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모성애나 부성애란 것도 실상 주변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런 부모들의 이기심에 기인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잘난 자식을 두었다고 뻐기고 싶은 마음, 능력 있는 자녀에게 노후를 기대고 싶은 마음 등등이 아주 없다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효도 역시 깊이 들여다보면 독립적인 삶이 낯설고 무서운 마음, 부모나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다 하지 못할 것입니다. 부성애 모성애 효도 등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인간의 이기심을 우리가 아주 부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우리 부모는 왜 이기적이지 하고 비난하기 이전에 과연 나는 얼마나 독립적인지를 따지고 더욱 독립적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연구해 보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에게 남는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에게 아무리 닦달을 해 보아야 부모님이 변하기 싫으면 결국 변하지 않으시겠지요. 하지만, 나 자신의 변화는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이니까요. 또 부모님이 젊을 때 내게 그리 많은 투자를 하지 않으셨다면, 시간이 흘러 정말로 무기력하고 약해지신 후 자식에게 요구할 수는 더더욱 없을 것입니다.

만약 내가 결혼한 상태이고 아이까지 있다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꼭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가 하는 대로 따라하니까요. 자녀가 부모의 미래인 것처럼 늙은 부모 역시 젊은 자녀의 미래입니다. 내가 늙었을 때는 과연 어떻게 늙어갈지 부모의 현재를 일종의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이나미(리드비나·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