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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희년 기획 - 아버지처럼 자비로이] (4) 사목의 쇄신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6-05-10 수정일 2016-05-11 발행일 2016-05-15 제 2994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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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적 조직이 아닌 ‘자비 실천하는 교회’로 변화 요청
교회가 복음을 살지 않으면 세상 향한 선포 설득력 잃어
교황도 바티칸 구조개혁 통해 사목적 조직으로 탈바꿈 노력
한국교회, 희년 정신에 따라 끊임없는 쇄신 노력 필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방한 첫날 한국 주교단과 만남을 갖고 있다. 교황은 방한기간 동안 사목적·선교적 쇄신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강조했다. 【CNS】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한 성 요한 23세 교황은 공의회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엄격함이 아니라 자비의 영약을 사용해야 합니다. 온유하고 참을성 있고 선하고 자비로운 교회의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편안하고 소박한 성품을 갖췄다. 체구는 크다 못해 뚱뚱해서, 그가 교황으로 선출되어 성베드로광장에 운집한 신자들 앞에 나섰을 때 조금은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선출 뒤 권위적으로 인식되는 교황의 이미지를 바꾸려 노력했고, 기본적인 외모에서부터 그의 노력은 꽤 효과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교황청의 일꾼들은 교황이 나타나면 자리를 피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교황이 정원을 산책하자, 정원사들이 황급히 나무 뒤로 숨었다. 교황은 장난기가 발동해 짐짓 노한 듯 호통을 쳐 사람들을 불러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 자상하고 친절하게 개인사를 물었다. 끄트머리 즈음, 교황은 월급을 얼마나 받는지 물었고, 대답을 듣고서는 크게 화를 냈다.

“교회 안에서조차 사회정의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정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요구할 수 없다.”

그리고 관계자들을 불러 교황청 직원들의 급여, 특히 가족 수당을 대폭 올렸다. 교회가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랑과 정의를 가장 가까운 이들, 특별히 교회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실천하지 않는다면 과연 세상을 향해 정의를 외칠 자격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었다. 똑같은 메시지를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희년 선포 칙서에서 다시금 강조한다.

“스스로 자비를 실천하고 증언하는 것이 교회와 그 메시지의 신뢰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자비의 얼굴」 12항)

■ 공의회, 자비로운 교회의 요청

성 요한 23세 교황에 대한 이러한 언급은 우리에게 크게 두 가지를 알려준다.

하나는 50여 년 전에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로부터 이미 자비로운 교회의 모습이 요구됐다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시대에의 적응’을 내세워 교회의 보수적인 면을 탈피하고 교회 제도를 과감하게 개혁한 공의회였다. 현대인들의 갈망과 요청에서 드러나는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회의 입장을 현대인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언어로써, 교회의 내적 쇄신과 현대 세계와의 우호적 대화와 협력을 도모했다.

다른 하나는, 교회가 자신이 선포하는 바를 스스로 살아가지 않으면 세상을 향한 그 선포가 설득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항상 복음,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 스스로를 성찰하고 내적, 외적으로 새롭게 해나가려는 쇄신의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면 자비의 희년은 교회의 자기 쇄신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비의 희년 칙서 「자비의 얼굴」은 이렇게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 주님으로 고백하고 따르는 하느님 백성인 교회는 따라서 자비의 얼굴을 드러내 보여주는 ‘자비의 교회’가 돼야 한다.

■ 행정·관료적 교회서 사목적 교회로

박선용 신부(서울 정릉4동본당 주임)는 지난해 11월 5일 마련된 ‘자비의 특별 희년과 한국교회의 사목 방향’ 세미나에서 논평을 통해 “교회가 자비의 얼굴이 되기 위한 노력은 특히 교회가 행정적, 관료적 얼굴에서 사목적 얼굴로 바꾸어 나가는 작업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항상 자신의 권고를 스스로 앞서 실천함으로써, 가르침이 허황한 이론이나 이상에 그치지 않는 현실적 권고임을 보여줬다. 교황은 교황청 구조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감으로써, 교황청이 관료적 조직이 아니라 사목적 조직으로 탈바꿈하도록 했다. 바티칸은행 개혁, 홍보 기구 통폐합, 평신도 관할 부서의 승격 등이 그 구체적 예다.

2014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개최 과정과 후속 교황권고문은 교회 통치에 있어서 사목적 접근과 관점의 우선순위를 짐작케 한다. 즉 교황은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이 자칫 현대 가정의 현실을 간과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오히려 현대 가정의 생생한 고통의 현실에서 출발함으로써 가정 문제를 철저하게 사목적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그러한 접근 방식 바탕에는 ‘하느님의 자비’가 깔려 있다.

교황이 교회법의 혼인무효소송 절차를 개정하도록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접근법이 구체적으로 적용된 사례다. 두 번의 무효 판결을 받아야 확정되던 혼인무효소송을 1심 판결만으로 확정판결이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적지 않은 비용과 장시간이 소요되는 어려움으로 힘든 가정들이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좀 더 쉽게 벗어나도록 배려했다.

■「복음의 기쁨」 선교·사목적 교회 촉구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Dives in misericordia, 1980)에서 “현대의 사고방식은 과거의 사고방식보다 훨씬 더 자비의 하느님에 대립되는 듯하며, 자비라는 이념 자체를 생활에서 배제하고 인간 마음에서 제거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11항)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더 나아가 “교회조차 자비를 잊고 산 것은 아닌가”하고 지적한다.

“어쩌면 우리는 오랫동안 자비의 길을 가리키고 그 길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자비의 얼굴」 10항)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 살바토레 피시켈라 대주교는 지난해 5월 5일 자비의 희년 선포 기자회견을 갖고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임 기간에 실행될 계획에 관한 문서로 자비의 희년의 본질을 뜻깊게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복음의 기쁨」은 교회 쇄신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교황은 이 권고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현대교회와 사회의 요청에 부응하는 ‘선교적 교회’의 전망을 제시하고 전통적 교회 제도와 구조의 변화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목적이고 선교적인 회개’, 쇄신과 개혁의 노력을 촉구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이 놓여 있다.

「복음의 기쁨」은 “자신의 안위만을 신경 쓰느라 폐쇄적인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 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교회는 쇄신과 변화 때문에 ‘길을 잃을까봐’ 걱정하지 말고, ‘잘못된 안도감을 주는 구조 안에, 가혹하게 남을 판단하게 만드는 규율들 안에, 그리고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습관들 안에 갇혀 있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 한국교회, 희년을 쇄신 계기로 삼아야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이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촉구, 시대의 징표가 가리키는 쇄신의 방향성에 대해 얼마나 부응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의 교회 쇄신, 사목의 쇄신에 대한 문제 의식과 의지는 교황이 요구하고 기대하는 바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수많은 쇄신의 요청과 논의에도 불구하고 쇄신의 열매는 매우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

박선용 신부는 자비의 해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희년의 정신이 담긴 지역교회 자신의 사목적 쇄신을 위한 작업”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여러 교구에서 시노드를 통해 쇄신 작업을 추진해왔지만 중간에서 추동력을 잃어 흐지부지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박 신부는 이어 “새로운 교회상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면서, “자비의 교회는 행정과 관료적 조직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기쁨과 슬픔과 교류하는 사목적 교회로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국교회에서 근래 쇄신의 논의가 집중적으로 일었던 때는 2014년 8월 교황 방한을 전후해서다. 가톨릭신문이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약 300명에게 교회 쇄신에 대해 물은 조사에서, 쇄신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기대는 모두 높았지만, 실제적으로 쇄신 노력이 결실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는 낮게 나타났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기간 동안 발표한 10여 개의 메시지를 통해 「복음의 기쁨」 한국판이라 할 정도로 사목적·선교적 쇄신,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강조했다.

교황 방한 이후, 일부 교구에서는 사제단을 중심으로 교회 쇄신의 장기적 전망을 모색하기 위한 부분적 노력이 나타났다. 물론 쇄신의 여정은 한순간에 완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기대를 할 수 없는 근거는 교황과 교황청, 보편교회의 쇄신 노력에 비해서 한국교회 안에서의 쇄신 논의와 노력은 거의 감지되지 않을 정도라는 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희년이 ‘특별한 은총의 때’이자 ‘영적 쇄신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자비의 얼굴」 3항). 교황이 「복음의 기쁨」에서 충격적으로 권고한대로 “껍데기 뿐인 영성이나 사목으로 치장한 세속적인 교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교회는 희년을 실질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쇄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