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때문에 교회 공동체와 멀어지는 일 없어야 잘 사는 지역교회 더 성장 본당서도 소득격차 벌어져 어려운 이웃 설 자리 줄고 상대적 소외감 점차 커져 모든 이 복음으로 만나고 차별 없애는 공동체 절실
지난 2014년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계속해서 ‘가난한 교회’,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를 강조했다. 교황은 한국 주교단에게 한 연설에서 “어떤 교회와 공동체들은 그 자체가 중산층이 돼 공동체의 일부인 가난한 사람들이 심지어 수치감을 느낄 정도”라고 간접적으로 한국교회의 중산층화를 지적했다. 이어 한국교회의 예언자적 소명 실천은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한국 주교단에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라는 사도 시대의 이상은 여러분 나라의 첫 신앙 공동체에서 생생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면서 “이러한 이상이 미래를 향해 순례하는 한국교회가 걸어갈 길에 계속 귀감이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히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 하나의 웰빙 교회, 그런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 교회의 중산층화 하지만 교황의 이러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결코 ‘가난’하지 않다. 오히려 부유해지고 있다. 한국교회의 ‘중산층화’는 다양한 사회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록 10여 년 전 통계이지만 2005년 인구센서스를 보면, 한국교회는 타종교보다 크게 성장했다. 또 이른바 잘 사는 지역에서 더 많이 성장했다. 지방교구보다는 수도권교구가 크게 성장했고, 같은 교구 안에서는 농촌지역보다 도시지역 신자가 크게 늘었다. 가톨릭신자 비율이 높은 상위 지역 중에는 강남 3구 등 이른바 잘 사는 지역이 많았다. 주택 평당 가격 상위 10위권 지역 중 6곳은 가톨릭신자 비율 상위 10위권 지역과도 일치했다. 이 지역의 가톨릭신자 비율은 평균 16.2%로 주택 평당 가격 하위 10위권 지역의 평균 8.2%에 비해 2배 정도 높았다. 또한 본지가 2007년 조사한 ‘가톨릭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에 따르면, 한국교회 신자 월평균 소득은 360만 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국민 305만여 원(통계청, 2005년)보다 17.8%나 높은 수치다. 특히 이 조사에서는 가톨릭신자들의 월 소득 중 400만 원 이상이 27.1%로, 200~300만 원 23.6%, 300~400만 원 22.4%, 100~200만 원 16.7% 보다 높게 나타났다. 또한 가톨릭신자들의 직업 분포를 보면, ‘생산·단순노무직, 기능직 종사자’(11.4%)는 2006년 통계청의 같은 업종 일반국민 직업 비율(32.7%) 보다 현저히 낮게 나타났다. 반면 신자들의 ‘사무 관련직’ 비율은 29.2%로 일반국민의 14.1%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교회와 신자들이 부유해지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교회 중산층화는 교회와 신자들이 가진 자의 입장에서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접근하게 한다. 최근 불교계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급속도로 악화되는 경제 양극화 문제에 대해 가톨릭신자들의 46.3%가 “바람직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한 불교신자와 개신교신자의 응답은 각각 40.3%와 37.5%였다. 이러한 결과는 가톨릭신자는 부유한 사람이 많아 이 양극화에 대해서는 관심과 고민이 적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도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 본당에서 소외되는 가난한 이웃 교회는 ‘가난한 이를 위한 교회’를 외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 가톨릭교회가 중산층화 됨에 따라 한국교회 안에서 가난한 이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렵고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적은 임금에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하는 이들은 교회에 나갈 시간을 내기조차 버겁다. 서울 종로구의 한 본당에서 5년 동안 주일학교 자모회에 몸 담았던 원 그라시아(43)씨는 올해 활동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 형제를 키우고 있는 원씨는 형편상 아이들 학원비라도 생계에 보태기 위해 올 초부터 집 근처 할인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하는 곳이 주일에도 영업하기 때문에 주일에도 근무를 해야 한다”면서 “오랫동안 활동하던 일이라 그만 두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형편상 어쩔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한 달에 하루 마트가 쉬기는 하지만, 조 편성에 따라 아이들 간식을 만들고 나눠줘야 하는 자모회 활동의 특성상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또 한 달에 두 번하는 회합과 뒤풀이 모임 등에 참석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원씨는 “현 자모회원 사이에도 직장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려워하는 엄마들이 많다”면서 “결국 시간적인 부담이 적은 전업주부 엄마들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요셉(58)씨는 서울 관악구의 한 본당에서 청소년분과장으로 10여 년 동안 활동하다 3년 전 그만뒀다. 평생을 몸담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 택시기사로 재취업을 했는데, 사목회 활동을 하기에는 시간적, 재정적 여유가 나질 않았다. 박씨는 “주일학교 교사들을 격려하고 사목회 임원으로 활동하려면 물적 빨랑카도 내는 등 어느 정도 금전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수입으로는 아내와 나 2명의 생활비를 감당하기도 벅차다”면서 “결국 돈이 있어야 본당 활동을 할 수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대도시마다 뉴타운이 개발되고 대규모 아파트촌이 들어서면서, 각 관할 본당 안에서는 가난한 이들이 설 자리가 실제 줄어드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최근 재개발된 한 지역 내 본당에 다니고 있는 이 베드로(74)씨는 “본당 관할 지역이 개발되기 전에는 신자들 생활수준도 서로 비슷했는데, 지금은 새 아파트 거주 신자와 길 건너 주택가 신자들의 생활수준 격차가 많이 난다”면서 “자연스럽게 본당 활동도 새로 입주한 아파트 거주 신자들 위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아무래도 아파트 거주 신자들이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유가 있으니 성당 활동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편, 미개발 지역 신자들은 상대적으로 본당 활동에서 소외되고 있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최용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