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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북녘 본당 (20)

정리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6-04-20 수정일 2016-04-20 발행일 2016-04-24 제 299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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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안주본당

▲소속 교구: 평양교구

▲설립연도: 1930년

▲옛 주소: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북문리

▲현 주소: 평안남도 안주시 등반산동

▲초대 주임: 반(潘, Edward Barron) 신부(1930~1937)

▲마지막 주임: 제8대 이경호 신부(1948~1950)

안주본당은 평양교구 소속으로 1930년 9월 영유본당에서 분리, 설립됐다. 초대 주임으로 메리놀 외방전교회 반(潘, Edward Barron) 신부가 부임해 1931년 임시 성당과 사제관을 짓고 1933년에는 성전을 완공했다. 1934년 빈민가정 자녀들을 위한 성모학교를 설립하고 복지사업을 통해 전교에 힘썼다. 제2대 주임 안(安, George Carrol) 신부와 제3대 주임 박(朴, Thomas Plunkett) 신부도 복지사업을 이어받아 교세를 크게 성장시켰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발발로 본당 사목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광복 직후 공산정권의 종교 탄압은 더욱 극심해지는 가운데 제8대 주임 이경호 신부가 1950년 6월 24일 정치보위부에 연행돼 총살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안주본당은 침묵의 교회가 됐다.

40. 정주본당

▲소속 교구: 평양교구

▲설립연도: 1936년

▲옛 주소: 평안북도 정주읍 성외동

▲현 주소: 평안북도 정주시 성남동

▲초대 주임: 변(邊, Roy Petipren) 신부(1936~1940)

▲마지막 주임: 제3대 강영걸 신부(1944)

평안북도 정주 지방에는 1928년 3월 서울에서 이주한 신자들에 의해 천주교 신앙이 전파되기 시작해 정주공소가 세워졌다. 안주본당 초대 주임 반(潘, Edward Barron) 신부가 정주 지역의 전교활동을 지원하면서 1936년 7월 정주공소는 본당으로 승격했다.

정주본당 초대 주임 변(邊, Roy Petipren) 신부는 주일학교와 야간학교를 열어 문맹퇴치 운동에 힘쓰면서 1938년에는 성전을 신축하는 등 본당 발전의 기초를 닦았다. 태평양전쟁 발발로 메리놀 외방전교회 성직자들이 일제에 체포되면서 정주본당은 1942년 비현본당의 공소가 됐다. 1944년 4월 강영걸 신부가 제3대 주임으로 부임해 다시 본당으로 승격했지만 강 신부가 그해 11월 전임되면서 다시 비현본당 관할 공소가 됐다. 이후 6.25전쟁이 터지고 더 이상 본당 역사를 이어가지 못했다.

‘북녘 본당 갖기’ 운동 참여신청 02-753-0815 서울대교구 민화위

정리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