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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테러방지법과 사드 배치, 왜 논란인가

이호중(사도 요한) 교수
입력일 2016-03-29 수정일 2016-03-29 발행일 2016-04-03 제 2988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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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핑계로 기본적 인권 침해되는 일 없어야”
프랑스에서 발생한 테러, 북한의 4차 핵실험 등을 계기로 정부는 안보 위기를 내세우며 테러방지법을 제정했다. 사진은 미국 뉴욕 9·11 테러 추모공원. CNS 자료사진
지난 2월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약칭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면서 ‘국가비상사태’라고 했다. 프랑스에서 발생한 테러사건, 그리고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라는 강수를 던진데 이어 ‘안보 위기의 프레임’을 본격적으로 가동하였다. 2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안보상황 점검 당정협의회’에서 국정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대남 테러, 사이버 테러에 역량을 결집하라고 지시했으며 북한 정찰총국이 이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북한의 테러 가능성을 연일 쏟아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어떠한 근거나 정보도 제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안보 위기 내지 국가비상사태라는 공포정치의 담론은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테러방지법 제정과 사드 배치 논란이 그 중심에 있었다.

국가정보원의 15년 숙원사업인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약칭 ‘테러방지법’)이 지난 3월 3일 국회를 통과하였다. 인권침해 및 국정원의 권한남용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쏟아졌고 야당의 국회 필리버스터가 열흘이나 진행되었지만 소용없었다.

테러방지법이 왜 문제인지는 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테러’의 개념이 지나치게 모호하다. 테러방지법은 테러를 “국가·지방자치단체 또는 외국 정부의 권한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할 목적 또는 공중을 협박할 목적으로” 행해진 살인, 항공기납치, 폭탄테러, 핵물질 사용 등의 행위라고 정의한다. ‘공중을 협박할 목적’이라는 애매모호한 문구를 포함시키고 보니, 대규모의 반정부 집회・시위도 테러로 쉽게 규정될 여지가 생긴다. 실제 여당측 인사들은 2009년에 발생한 용산참사사건을 도심테러라 지칭했으며, 2015년 11월 14일의 민중총궐기 집회에 대해서도 테러라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결국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시위 등 국민들의 정치적 기본권 행사가 테러로 낙인찍히게 될 위험이 매우 큰 것이다.

테러방지 명목의 국정원의 권한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테러방지법 제12조에 의하면 국정원이나 수사기관은 테러를 선전・선동하는 인터넷 게시글을 삭제하도록 할 수 있다. 테러의 개념이 모호하니까 이 권한은 실제 정부에 반대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편, 국정원은 테러를 예비・음모・선전・선동한 자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까지 ‘테러위험인물’로 지정할 수 있는데, 테러의 개념적 모호함에다가 테러위험인물이라는 개념의 모호함까지 더해 보면, 국정원은 사실상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테러위험인물로 지목할 수 있는 지경이다.

테러위험인물로 지정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정원은 그 사람의 출입국, 금융거래 자료 등의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할 권한을 갖는다. 국정원이 테러위험인물로 지목된 사람의 금융거래 자료를 법원의 영장 없이도 손쉽게 수집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통신감청도 가능하다. 통신감청은 기존의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하여 법원의 감청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는데, 테러위험인물이라고 하면 법원이 깐깐하게 영장심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도 국정원은 국가안전보장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통신감청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이에 대한 법원의 통제는 거의 유명무실한 상황이니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단 테러위험인물로 지정되면 국정원은 개인의 노조활동, 정당활동, 사생활에 관한 민감정보 그리고 위치정보까지 모두 들여다볼 수 있다. 여기에 ‘테러위험인물의 추적’이라는 포괄적인 권한까지 국정원에 부여하고 있으니, 국정원의 감시와 사찰 권한은 무제한인 셈이다.

일부에서는 국정원이 한가하게 시민들의 개인정보를 사찰하겠느냐, 진짜 테러에 연관된 사람을 감시하려면 그 정도의 권한을 부여해야 하지 않느냐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착한 국정원’이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역사가 증명한다. 박근혜 정부만 보아도 국정원의 권한남용과 인권침해는 이미 너무나도 심각한 상황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사건으로 시작해서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조작, 마녀사냥식의 ‘종북’몰이, 통합진보당 해산, 그리고 2015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RSC 해킹프로그램 구입 논란에 이르기까지, 그 중심에는 언제나 국정원이 있었다.

15년 전, 그러니까 2001년 11월에 정부가 발의했던 테러방지법을 다시 들여다봤다. 당시에는 ‘테러’의 개념도 지금보다 협소하게 규정되어 있었고 ‘테러위험인물’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이번에 통과된 테러방지법에 비하면 그래도 ‘착한’ 법이었다. 하지만 당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기를 쓰고 테러방지법 제정에 반대했다. 당시 한나라당의 김홍신 의원이 했던 말을 옮겨본다. “과거 권위적 정권 하에서 정보부처에 의해 저질러진 각종 인권침해 사례에 대한 고려와 법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 현행 법체계와 헌법에 배치되는 각종 조항들은 이 법안의 순수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입니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테러방지법이 국정원의 권한남용과 정치적 사찰의 도구가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테러에 무방비한 상태였을까. 그렇지 않다. 테러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기관의 협력체계는 이미 잘 갖춰져 있다. ‘국가테러대책회의’가 있어서 국무총리가 의장이 되고 국정원, 경찰청, 법무부, 관세청 등 국가기관이 참여한다. 그 외에도 통합방위법, 비상대비자원관리법, 국가사이버안전규정 등에서 테러 대응방안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상식적이라면, 테러방지법이 필요하다고 국가비상사태 운운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테러대응기구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보완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법체계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걸 IS도 알아버렸다”면서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국가비상사태에 걸맞은 국가테러대책회의를 한번도 소집하지 않았다.

많은 학자들과 시민사회 진영에서 지적했듯이, 테러방지법은 테러방지를 빙자한 국민감시법에 다름 아니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테러방지법이 아니라 국정원의 권한남용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정원 개혁이다. 국정원이 그동안 불법선거운동이나 증거조작 등의 범죄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것은 국정원이 해외정보 외에 국내보안정보의 수집권한과 공안사건의 수사권 등 과도한 권력을 보유하고 있는 한편으로, 국정원의 권력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겨울 테러방지법과 함께 사드(THAAD) 배치도 밀어부쳤다. 중국의 반대로 주춤하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는 미국과 손잡고 한반도 사드 배치의 기회를 계속 엿보고 있다. 미사일 요격이라는 사드의 시스템 완결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은 별론으로 치더라도, 한반도와 같은 좁은 땅에서 사드가 미사일 방어용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대부분의 시민들도 잘 알고 있다. 사드 배치는 북한 및 중국과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뿐이며 정작 우리의 안보에는 득이 되는 것이 거의 없다.

북한 핵실험을 이유로 하여 개성공단 폐쇄라는 강수를 둔 정부는 테러방지법 제정과 사드 배치까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형국이다. 안보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며, 그렇기에 인권과 평화에 기반하지 않은 ‘안보 위기의 프레임’은 대한민국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보수정권의 안위를 위한 파시즘적 선택일 뿐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이호중 교수는

{{img2}}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으며 대법원 양형위원회 전문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자유권 분야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 운영위원장,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학술위원장, 서강대법학연구소 인권법센터장,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사)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이사, 2015년 9월부터는 정보인권연구소 이사장으로 교회 안팎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호중(사도 요한)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