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자비의 희년 기획 - 아버지처럼 자비로이] (2)가 난한 사람들 - 서울대교구 무악동 선교본당을 찾아서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6-03-08 수정일 2016-03-08 발행일 2016-03-13 제 2985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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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신앙 공동체
“빈민사목은 특수사목 아냐”
초대교회와 공의회 정신 살아
선교본당은 ‘자비의 얼굴’
교회 가르침 충실히 따르며
삶과 복음 일치 위해 노력
자비의 희년 정신 드러내
서울 무악동 선교본당 신자들이 미사 중 영성체를 하고 있다. 이곳 신자들은 부엌부터 방들과 마루가 뻥 뚫려 사람과 공기가 소통하기 좋은 ㄷ자형 한옥주택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다.
3월 6일 주일 오전, 30여 켤레의 신발들이 마루 아래 옹기종기 모였다. 아파트 단지 옆 야트막한 ㄷ자형 한옥 성당, 부엌에서부터 방들과 마루가 뻥 뚫려 있다. 방들은 커튼으로 나눠질 수도 있겠지만 별로 나눌 일도 없을 듯하다.

사람과 공기가 모두 소통이 쉬우니, 미사를 봉헌하기에도 널찍하고 미사 후 김치전과 국수 등을 나르기에도 좋았다. 사랑도, 은총도 서로에게 흘러가기 딱 좋은 모양새다.

신부님 손은 머슴 손

미사는 국악성가로 꾸며졌다. 한 달에 한 번 봉사하는 우리맥소리 합창단의 창은 한옥 성당에,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봉헌하는 미사에 제격이었다.

미사 후, 어르신 한 분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건네셨다. 누군가 병고에 시달리시나 보다. 사람들에게 기도를 청하고 계셨다. 어르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안쓰러움이 담긴 눈들을 보니 최소한 30회 이상의 화살기도들이 곧 쏘아 올려질 것이 분명했다. 이날 미사에는 30여 명이 참례했다.

서울대교구 무악동 선교본당 주임 남해윤 신부가 뒤뜰에서 따끈하게 데워진 육수통을 들고 마루에 올라왔다. 엊그제 무지개상담센터 마성애 소장이 한 말이 떠올랐다.

“신부님은 거의 머슴이에요. 손을 잡아보면 놀라죠. 이건 뭐 거의 막노동하는 손이에요. 동네 ‘맥가이버’이시기도 합니다. 하하하.”

미사에 이어 모두가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김치전에 국수, 소박한 밥상에 정겹게 둘러앉은 모습이 시골 마을 사랑방이다. 요즘 쑥을 캐다가 먹으면 보약이라는 한 할머님 말씀에 남 신부는 “그 쑥은 양념 안하고 그냥 먹어도 돼요”라고 맞장구 친다. 식사는 언제 한 번 단체로 시골에 쑥 캐러 가자는 제안으로 마무리된다.

빈민사목위 선교본당

무악동 선교본당은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산하 선교본당들 중 하나다. ‘달동네’로 불리던 빈민 지역이 재개발로 철거되고 주민들의 삶의 자리가 해체돼 가면서 빈민사목위는 도시공소체계를 1998년 선교본당 체계로 발전시켰다. 그해 삼양동을 시작으로 금호1가동, 무악동, 봉천3동, 장위1동 등의 선교본당들이 설립됐다.

이 지역 철거가 시작되고 임대아파트 세입자대책위원회가 꾸려지면서, 박문수 신부(예수회)가 독립문 평화의 집 활동가들과 함께 주민들을 위해 헌신하고 나섰다. 박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무악동 선교본당이 시작됐다.

예수회 남해윤 신부는 2005년 본당 관할 한누리공부방을 책임지는 일을 맡았고 4년 뒤에는 주임으로 부임했다. 벌써 7년이 지났다.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지역 환경과 상황도 변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은 곳곳에 있다. 삶은 어떤 면에서는 더 열악해졌다.

“기득권자들이 관심을 전혀 쏟지 않는 사람들의 권익과 인권, 자유를 위해 노력한 예수님의 삶을 지역에서 구현하려고 하지만, 갈수록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나눔과 올바른 분배 정의를 위한 교회의 노력이 더 절실해집니다. 현실은 늘 어렵지요.”

사람들 사이에 울타리가 쳐지고

본당 부설 ‘독립문 평화의 집’ 오병숙(가타리나) 팀장은 독거노인, 한부모, 조손가정 등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아파트들이 들어와 지역 경제는 나아졌지만, 계층 간 격차는 더 큰 문제가 됐다. 일반 아파트 주민들 중에는 수급권자들이 밀집된 임대아파트 주민들과의 격리를 노골적으로 원하기도 한다. 임대와 일반 아파트 사이에 펜스가 쳐지고, 일반 아파트에 거주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이 임대 아파트 아이들과 서로 어울리지 않길 원한다.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도….

마성애 소장은 지난해 본당서 청소년뮤지컬 공연을 하면서, ‘초대권’이 아닌 ‘일반권’을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초대권’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공짜로 주는 표라는 것이 티 나지 않는 ‘일반권’을 받고 기뻐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먹먹했지요.”

‘초대권’은 가난을 낙인찍는 것이었다. 가난한 현실만으로도 서러운데, 무자비한 ‘낙인’은 아이들을 멍들게 한다.

벗어나기 힘든 빈곤의 굴레

오늘날 빈민은 가난과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기가 전보다 더 어렵다. ‘빈민’에는 도시 빈민을 비롯해 주거 취약 계층, 차상위 계층,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이 포함된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비닐하우스, 판잣집, 움막 등에 거주하는 주거취약계층은 약 11만3000가구. 2013년 서울에만 12만 명이 집 없는 취약 계층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2014년 현재 약 135만 명(90만 가구)에 달한다. 게다가 양극화와 빈부격차가 점점 더 심화되고 빈곤층은 가난을 벗어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 중에서도 독거노인 문제는 더 심각하다. 남해윤 신부는 기초생활수급권자 혜택에서 제외돼 눈물을 흘리는 80대 할머니를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무악동에는 매년 줄어드는 수급대상자들이 많다. 그나마 목숨줄인 복지지원에서 밀려난 어르신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제적 불안은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심리적 불안과 고통을 야기한다. 이러한 우울과 불안을 조금이라도 해소해주기 위해 상담센터를 운영한다. 재가복지센터를 통해서는 독거노인 가정 등을 직접 방문해 반찬을 나눠주거나, 목욕 봉사 등을 지원한다.

가난한 이들이 주인으로 성장하도록

본당 부설 독립문 평화의 집은 2014년 6월부터 1년 동안 비전워크숍을 갖고 15년여의 활동을 점검, 새로운 활동 방향을 모색했다. 이를 통해 본당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빈민사목의 정신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가난한 사람들이 온전히 해방되는 사귐, 섬김, 나눔의 공동체를 이루는 운동’이라는 빈민사목의 사명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우리의 활동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복지 혜택을 전해주는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주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고, 삶과 복음을 일치시키고, 가난한 이들이 주인이 되고, 가난한 이들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 이런 것들이 교회가 빈민사목을 통해서 지향하는 원칙들이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 살며, 스스로 가난한 교회가 될 수 있을까?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목은 빈민사목에 맡겨두면 되는 것일까?

빈민사목은 특수사목인가?

남해윤 신부는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 대리 유경촌 주교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현재 빈민사목위원회에서 하고 있는 일들은 사회사목의 특별한 분야가 아니라, 사실은 일반 본당에서 모두 이뤄져야 하는 것들입니다.”

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목은 특수사목이 된 것일까? 평화의 집 사무국장 강경규(프란치스코)씨는 교회의 모습이 변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 곁에 살아야 하는데, 오늘날 교회 모습은 점점 더 중산층 이상을 지향하는 듯합니다. 일선 본당의 사회사목, 사회복지 관계자들 역시 가난한 사람들을 시혜의 대상으로만 인식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편안하지 않은 본당이라면 예수님을 따르는 공동체는 아닌 듯합니다.”

선교본당, 하느님 자비가 드러나는 곳

어쩌면, 아니 확실히 선교본당들은 초대교회의 정신과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을 살아가는 모범적인 공동체이다. 아직 많은 고민과 한계를 품고 있지만 가난한 이들이 주체가 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삶을 나눔으로써 그들의 품위와 권위를 찾아주고 존중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넘쳐난다.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훼손하는 가난과 빈곤은 퇴치해야 할 사회악이지만, 가난한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그들과 함께하려는 교회의 노력은 하느님 자비의 얼굴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악동 선교본당은 자비의 희년 정신을 집중적으로 드러내는 공동체이다.

미사 참례하러온 신자들의 신발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신발들이 정답다.
신자들과 남해윤 주임신부가 미사 후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소박한 밥상에 정겹게 둘러 앉아 식사를 나누는 신자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