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남수단에서 온 편지] 엠마누엘의 꿈은 대통령

입력일 2015-12-22 수정일 2015-12-22 발행일 2015-12-27 제 2975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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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강그리알에 ‘엠마누엘 릴리 촐 마차르’ 라는 학생이 있습니다. 세례명과 이름 그리고 아버지 이름까지 붙여서 부르는 딩카 문화에 따라 이름은 길지만 학생 한명의 이름입니다. 7년 전 아강그리알에 우리 수원교구 신부님들이 사목을 시작했을 때, 그 학생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작은 아이였습니다. 유난히 똘망똘망한 눈빛에 신부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는 모습에 신부님들 모두 예뻐하고 칭찬을 많이 했었습니다.

힘든 작업을 신부님 혼자 하고 있으면, 곁에 와서 도와드리고 싶다고 말하던 우리 입장에서는 다소 엉뚱한 아이, 혹시나 어떤 보상을 바라고 이러는 것이 아닌가 잠시 고민하고 있으면 “신부님, 제가 그동안 도움을 받기만 했으니 혹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며 기특한 말을 하던 아이가 릴리였습니다. 공부도 잘해서 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은 신발이나 옷을 달라고 저를 졸라댈 때에도 릴리는 영어로 된 성경책을 줄 수 있는지 부탁했었습니다.

‘소는 횡성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이 있듯이 이렇게 영특한 아이는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2년 전 릴리를 남수단 수도 주바에 있는 상급학교로 진학을 시켰습니다. 시골인 아강그리알에는 상급학교도 없을뿐더러 주변에 있는 상급학교들은 학생들을 가르칠 선생님이 부족해서 수업일수조차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소신학교에 진학시키고 싶었지만, 이 녀석은 솔직당돌하게도 “저는 신부님이 되고 싶지는 않고,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을 하길래, 그 포부를 이뤄보라고 일반 학교에 보냈습니다.

부모님과 형제들을 떠나 먼 곳으로 유학을 보내면서, 릴리에게 시골 출신이라고 기죽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학업 성취도가 시원찮으면, 더 이상의 학비지원은 없을 것이니 이를 악물고 공부하라”는 협박도 잊지 않았습니다.

1년이 지나고 돌아왔을 때, 릴리의 성적은 전교 30등 정도였습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기대에는 못 미치는 성적이었습니다. 마음으로는 칭찬을 해주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노력을 게을리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호되게 야단치고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기회를 준다고 다그쳐서 보냈었습니다. 그리고 또 1년이 지나 이제 릴리가 2학년을 마치고 아강그리알로 돌아왔습니다. “신부님!!”하고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저를 보고는 활짝 웃으면서 손에 쥐고 있던 성적표부터 내밉니다. “야 이녀석아, 오랜만에 왔으면 인사부터 하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말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냐?! 성적표는 저기 탁자 위에 올려놓고 가. 내가 확인하고 나중에 부를 테니까 그때 이야기하도록 하자.”

만나자마자 성적부터 확인하고 혼내면 미안한 마음이 들것 같아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릴리가 가고 난 후 성적표를 확인해보았습니다. 학생 162명 중 6등. 정말 잘했습니다. 선생님의 지도란에는 ‘Brilliant’(빛난다, 아주 뛰어나다)라는 찬사가 적혀있습니다. 더구나 성적표와 함께 가져온 상장에는 ‘가톨릭 학생회 부학생장으로 열심히 봉사했다’는 내용까지 적혀있었습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을 누가 비웃을 수 있겠습니까. 릴리가 꿈을 이루어서 남수단 대통령이 되는 흐뭇한 상상을 해봅니다.

내일은 본당 신자들에게 자랑하고 함께 기뻐해야겠습니다. 본당 신자들 모두에게 훌륭한 성탄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 후원계좌 612501-01-370421 국민, 1005-801-315879 우리, 1076-01-012387 농협, 03227-12-004926 신협, 100-030-732807 신한 (예금주 (재)천주교수원교구유지재단)

※ 해외선교사제와 선교지 신자를 위한 기도 후원을 접수 받습니다.

- 해외선교사제와 선교지 신자들을 위해 지향을 두고 묵주기도, 주모경 등을 바치고 해외선교후원회 카페(cafe.daum.net/casuwonsudan), 전자우편(stjacob@casuwon.or.kr), 전화(031-548-0581) 등을 통해 접수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엠마누엘 릴리 촐 마차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