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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주일 특집] 집창촌 벗어난 한 성매매피해여성의 호소

방준식 기자
입력일 2015-12-01 수정일 2015-12-01 발행일 2015-12-06 제 2972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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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파는 여자’ 낙인… 자활의 날갯짓 꺾어
11월 25일 오후 서울 강동구 천호동 집창촌(속칭 ‘텍사스촌’) 입구. 골목 양쪽으로 업소들이 늘어서 있다.
“거기 좀 봐, 놀다 갈려고? 싸게 해 줄게! 두 명 있어, 골라봐.”

11월 25일 오후 2시 서울 강동구 천호동 천호재정비촉진지구 일대 속칭 ‘텍사스촌’. 취재를 위해 찾은 이곳은 낮이라 대부분의 업소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서성이던 기자에게 60대 여성이 연신 손짓을 했다. 호객꾼이다. 대낮에도 ‘장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는 중인데, 낮에도 해요?” 기자가 거절하며 묻자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뭔 순진한 소리여, 우린 그런 거 없어. 8만원. 싸게 쳐주는 거여. 할 거여, 안 할거여?”

그녀가 손가락으로 업소 현관 쪽을 가리켰다. 20~30대로 보이는 여성 2명이 짙은 화장과 짧은 치마를 입고 앉아 있었다. 피곤한 기색으로 아무런 말없이 기자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8만원. 남자의 욕구를 풀어주는 대가로 받는 그들의 몫이다. 아니, 절반 이상은 업주나 호객꾼에게 돌아갈 것이다. ‘선불금’을 갚고 업주의 요구에 따라 치장을 위해 옷과 화장품 등을 사고나면 남는 돈은 거의 없다. 쳇바퀴 돌 듯 업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빚은 늘어만 간다. 돈으로 물건을 사듯 여성의 성(性)을 골라 사는 곳.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천호동 텍사스촌은 서울에서 미아리, 청량리와 함께 ‘3대 집창촌’으로 불린다. 화려한 백화점 뒤편 골목으로 펼쳐진 또다른 세상이다. 성매매피해여성들은 왜 이런 곳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수소문 끝에 ‘자활’에 성공한 성매매피해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30대 중반인 그녀는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저는 어릴 때부터 가톨릭 신자였어요. 노동일을 하던 아버지는 제가 8살 때 공사장 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식구를 맡겨놓고는 떠나버렸죠.”

그녀는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택한 여자들이 무슨 권리를 자꾸 주장하느냐’는 세상의 시선이 제일 두려웠다고 했다. “집안에 빚이 많았어요. 제대로 학교도 다니지 못해 직장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였죠. 아르바이트로 한달 80만원 벌어서 제 한 몸 간수도 못했죠. 식구를 책임져야 하고, 그렇게 택하고 만 곳이 룸살롱이었어요. 한달 300만원 이상은 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업주로부터 생활비와 방세 용도로 받은 ‘선불금’은 미끼이자 족쇄였다. 업주의 강압적인 요구로 전신 성형수술까지 해야 했고 고스란히 빚이 됐다. 결국 수천 만원의 빚을 갚기 위해 집창촌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몸이 아픈 날에도 하루에 10명이 넘는 손님을 받은 적도 있었다. 돈을 제대로 갚지 못하면 업주의 구타와 욕설이 이어졌다. 몸은 피폐해졌고 마음도 만신창이가 됐다. “기도했어요, 오늘은 삼촌(업주)에게 욕설만이라도 안 듣게 해달라고. 제가 잘못했으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게만 해달라고.”

그녀는 결국 관련 기관에 긴급 요청했고 천신만고 끝에 경찰 등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출구를 찾았다고 믿은 순간, 그녀에게 더욱 힘든 상황이 닥쳐왔다.

“어느새 ‘몸 파는 여자’라는 낙인이 제게 찍혀 있더라구요. 두려웠어요.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길인데 제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어요.”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세상의 눈초리 때문에 자신을 또 한 번 망가뜨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관련 기관의 도움으로 자격증을 취득하고 일반 직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했다.

“주변에 저처럼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까막눈 비슷해서 자격증 등은 생각도 못하는 애들이 많아요. 정부 자활 프로그램도 ‘돈’이 안 돼요. 결국 다시 예전의 집창촌이나 룸살롱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손가락질 받는 것도 싫으니까.”

그녀는 종교의 힘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성당 봉사 활동도 열심히 했어요. 노숙자나 독거노인 분들처럼 저보다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죠. 그러면서 차츰 사회와 소통하는 법을 배워 나갔어요.”

세상을 향한 호소도 잊지 않았다. “예수님은 창녀를 감싸셨잖아요. 너희 중 죄 짓지 않은 자가 있다면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전 믿어요, 과거에 어떤 잘못을 지었든 천대받지 않고 멸시받지 않는 세상을요. 이 기사를 읽으실 신자분들 만큼이라도 우리 같은 사람들을 제발 도와주세요. 우리도 하느님의 창조물이니까요.”

방준식 기자 (bj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