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남수단에서 온 편지] 오토바이 가득 짐 싣고 공소 방문 가는 길

입력일 2015-11-18 수정일 2015-11-18 발행일 2015-11-22 제 2970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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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본당 미사를 마치고 나서, 사제관에 돌아오자마자 마음이 급해집니다.

오늘은 공소방문이 있는 날입니다. 배낭에 미사제구와 제대보, 제의, 예식서, 교리서, 세례대장 양식서, 그리고 묵주 30개를 챙기고 나니, 벌써 배낭의 절반이 찼습니다. 그러나 공소에 가서 미사만 드리고 올 수는 없습니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간단하지만 필요한 약을 챙겨가야 합니다. 말라리아약, 감기약, 위장약, 회충약 등은 필수입니다.

약통을 한가득 챙기고 나니, 머릿속에 또 아이들의 기대 어린 눈망울이 떠오릅니다. 제가 공소에 방문하면 늘 영화를 상영하여 보여주곤 하는데, 영화를 시청하는 것이 공소 마을사람들에게는 큰 즐거움입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제가 마을에 방문하면 열렬히 환영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자, 이제 소형프로젝트와 삼각대, 그리고 휴대용 배터리와 스피커까지 챙기고 나니 배낭 무게가 7~8㎏ 가까이 되었습니다.

공소에 가기 위해서는 자전거나 오토바이 혹은 사륜구동차를 이용합니다. 방문하는 공소의 위치나 날씨 그리고 이용하는 길의 상태를 고려하여 때마다 다르게 이용합니다.

오늘은 오토바이를 이용해 갈 생각입니다. 가다가 엔진이 고장날 수도 있고, 타이어에 구멍이 나서 오토바이를 끌고 가야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작은 손 펌프와 타이어 수리도구도 챙깁니다. 혹시 숲에서 밤을 새울 수도 있으니, 비상식량으로 비스킷과 참치통조림 하나도 챙겼습니다. 다행히 이곳은 결코 얼어 죽을 일은 없는 더운 곳이니, 여벌옷은 챙기지 않았습니다. 밤에 추우면 제의라도 덮고 자면 되니까요.

치약이나 비누도 필요 없습니다. 공소에 가면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시선을 받고 있어서 이를 닦거나 몸을 씻는 것도 불편하니 차라리 하룻밤 안 씻는 것이 마음 편합니다.

이제 다 준비했나 생각해 보았더니 아차, 마실 물을 깜빡 잊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주는 대로 물을 마셨다가는 금방 탈이 납니다. 여기서 구할 수 있는 물도 그다지 깨끗하지 못한데, 마을에 가면, 염소도 양도 머리를 박고 물을 마시는 플라스틱 통이 식사 때에는 사람이 마시는 물통으로 그대로 용도 변경되어 나옵니다.

정수기로 정수된 물을 1.5리터 페트병에 나누어 담아 3통을 챙기고 나니 이제 배낭에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할 수 없이 다른 가방을 하나 더 준비하여 물을 담고 식사할 때 사용할 포크 달린 수저와 손전등도 챙겼습니다.

눈부시고 뜨거운 태양을 가릴 모자와 고글을 착용한 후 오토바이를 끌고 나오니, 이제 정말 공소 방문을 떠나는 설레는 기분이 듭니다. 등에는 배낭을 지고, 오토바이 안장에는 물통이 든 가방과 공소에 나누어 줄 노트와 펜이 들어있는 박스를 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공소방문을 떠날 때마다 저의 짐은 항상 잔뜩 준비되어 무거운 걸까요?

아마도 걱정은 많은데 믿음이 부족해서인 것 같습니다. 무거운 짐을 가지고 가지만, 그래도 다행히 마음만은 가볍습니다. 이제 공소로 떠납니다.

※ 후원계좌 612501-01-370421 국민, 1005-801-315879 우리, 1076-01-012387 농협, 03227-12-004926 신협, 100-030-732807 신한

(예금주 (재)천주교수원교구유지재단)

※ 수원교구 해외선교후원회 http://cafe.daum.net/casuwonsudan

※ 선교사제들과 함께할 다음과 같은 봉사자를 찾습니다.

- 사회복지, 의료분야, 영어교육, 태권도교육 등

※ 문의 031-548-0581(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오토바이를 타고 공소 방문에 나선 이상협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