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미로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5-11-17 수정일 2015-11-17 발행일 2015-11-22 제 2970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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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을 향한 순례길 상징
프랑스 샤르트르대성당 바닥의 미로. 출처 위키미디어
미로(迷路, Labyrinth)는 복잡하게 얽혀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운 길이다. 오늘날 어린이들의 두뇌 발달을 위한 교재로 흔히 볼 수 있는 미로는 중세시대 교회에서는 신자들의 신심을 고양하는 데 사용됐다.

문명 초기부터 인류와 함께해 온 미로는 신화와 전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발견된 미로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알프스 발 카모니카(Val Camonica)에서 발견된 것으로 기원전 30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크레타 섬의 미로에 살았다는 그리스 신화는 미로를 다룬 유명한 이야기다.

이교도 신화 등의 영향 때문인지 초기 교회에서는 미로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보곤 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지하무덤 카타콤바는 그 모습이 미로를 닮았지만, 카타콤바의 미술 속에 미로의 형상은 등장하지 않는다.

미로는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적인 상징을 담게 된다. 지상에서 천상을 향하는 순례의 길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교회의 미로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막다른 길이 생기는 형태가 아니라, 복잡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길인 형태다. 빠져나올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반드시 목적지에 이르는 미로인 것이다. 복잡한 미로의 여정은 시련과 고난, 죽음 등을 뜻하지만, 미로를 통과해 나가는 것은 부활을 의미한다.

미로가 지닌 ‘순례’의 의미는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대신하게 해주기도 했다. 중세시대 사람들은 성당 바닥에 있는 미로를 무릎을 꿇은 채 따라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이 실제로 있었던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한 것과 같다고 여겼다.

특히 12세기경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성당에서 교회의 미로를 만날 수 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성당의 미로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프랑스 샤르트르대성당에 있는 미로다. 이 미로는 12개의 동심원을 기준으로 추가 왕복하듯이 오가면서 마지막에 중앙에 이르는 길로 이뤄져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